▲2017년 3월30일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 앞에서 세월호에서 희생된 기간제교사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의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문재인 대통령이 스승의 날을 맞아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두 명의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절차를 지시했습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3년이 지났으나 제도해석의 문제로 고 김초원, 이지혜 기간제교사의 순직 인정이 아직 안 됐다.”라며 “논란을 끝내고 고인의 명예를 존중하며 유족 위로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윤영찬 수석은 “이들 두분의 교사의 순직을 인정함으로써 스승에 대한 국가적 예우를 다 하려고 한다”며 “문 대통령은 이와 함께 공무 수행하다 사망한 공직자의 경우 정규직, 비정규직 등 신분과 관계없이 순직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숨진 김초원, 이지혜 교사는 담임으로 아이들과 끝까지 함께 있었지만,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4.16연대, 전교조 등이 참여하는 ‘세월호 희생자 김초원·이지혜 선생님 순직 인정 대책위원회’가 무려 3년이 넘게 정부에 순직 인정을 촉구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 때문에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입니다.
‘대통령이 바뀌니 360도 변한 김동극 인사혁신처 처장’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로 숨진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 지시를 내리자, 김동극 인사혁신처 처장은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지시를 내린 만큼 순직을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검토해보겠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김동극 인사혁신처 처장은 불과 두 달 전인 3월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사처에서 순직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법적으로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순직 대상이 아니다”라며 “기간제 교사 숫자는 4만6000명인데 두 교사에 대해서만 공무원연금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었습니다.
김 처장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영호 의원이 “시행령에 따라서 그 권한이, 처장님이 이 문제는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 희생한 선생님을 위해서 내가 내 권한을 한번 써야겠다라고 결단을 하시면 가능한 얘기지요?”라고 간곡하게 요구했지만 “제가 제 재량 범위 내에서 그걸 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불가능하다는 태도만 되풀이했습니다.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법적으로 제도 개선을 한다고 해도 세월호 기간제 교사를 순직처리 하지 않겠다고 하던 분이 이제서야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지시를 내린 만큼 순직을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검토해보겠다.’라고 한다며 ‘격세지감’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법과 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故) 단원고 김초원 선생님의 아버지 김성욱(오른쪽)씨가 지난 3월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 앞에서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마치며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는 내내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의 이야기와 요구에 대해 공무원들이 ‘법과 규정이 없다’라는 이유만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세월호 기간제 교사들의 순직 인정도 법과 규정 때문에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교육부와 인사혁신처가 “상대 부처가 순직인정을 결정해야 한다”라며 미루고 미루다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김동극 인사혁신처 처장은 기간제 교사들의 희생에 대해 ‘안타깝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안타까웠다면 김 처장이 공무원연금법 적용 대상자로 지정했으면 됩니다. 왜 박근혜 때는 ‘절대 불가’를 외치고 문재인 대통령 때는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라며 적극적으로 나설까요?
공무원연금법 시행령 제2조4호에 따르면 인사처장이 정규직 공무원이 아니라고 해도 공무원연금법 적용 대상자를 지정할 수 있다. 공무원이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초원, 이지혜 교사는 탈출하기 쉬운 세월호 5층 객실에 있다가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4층으로 내려갔다가 결국 구조되지 못한 채 숨졌습니다. 두 명의 교사는 기간제라는 신분을 떠나 자신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도 담임으로 스승으로서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법과 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국민이 눈물로 호소하는 일을 외면하는 공무원, 문재인 정부에서는 절대 나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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