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이, 성인이 되다

버려진 아이, 성인이 되다

원철 스님 2019. 0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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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太湖)물가에서 육우(陸羽)선생 흔적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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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고전을 좋아하는 20여명과 함께 어울린 78초의 89일 중국 안휘성 절강성 답사과정은 그야말로 다반사(茶飯事 차를 밥 먹듯이 하는 일상사)’였다식사자리에는 하루 세 번 반드시 대형 차 주전자가 함께 올라왔다밥먹기 전에 한 잔밥을 먹다가 한 잔식사를 마친 후에 또 한 잔이 자연스럽다그 이유는 모든 요리가 기본적으로 기름에 볶은 익숙지 않는 음식들인 까닭에 느끼한 속을 달래는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마지막 일정은 절강성 호주(湖州)동아시아 모든 다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는 고장이다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육우(陸羽733~804)선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그런 연유로 호주는 차 애호가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육우선생 묘소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짙고 푸른 대나무 숲 사이의 가파른 경사길이 구비를 돌며 이어지는 계단이 까마득하게 보인다더위 때문에 빨리 걸을 수도없다계단이 끝날 무렵 평평한 작은 마당이 나온다. 3단으로 된 시멘트구조물과 돌 난간을 잡고서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그제서야 봉분이 나타난다바닥에서 다섯겹으로 쌓아올린 벽돌이 무덤전체를 두른 원형분묘다묘 위를 덮고 있는 눈에 거슬리는 잡목도 비석글씨가 주는 이름자의 위엄 앞에 그대로 묻혀버린다중심에 검은 큰 글씨 대당육우지묘(大唐陸羽之墓당나라 육우의 무덤)’가 새겨진 비석이다. 1995년 겨울 호주(湖州)육우다문화연구회가 세웠다는 기록까지 붉은 색 작은글씨로 좌우의 가장자리에 나누어 썼다봉분과 2미터 가량 사이를 두고서 무덤을 보호하듯 뒤쪽에는 검은색 석판을 둥근 병풍처럼 이어붙여 다경(茶經)’을 새겼다배례석의 촛대와 향로는 일상적인 풍광이지만 다신(茶神)의 무덤답게 참배하는 사람들이 차를 올릴 수 있도록 작은 다완 몇 개를 큰접시 위에 얌전하게 엎어 둔 것이 그동안 찾았던 유명문인들의 무덤과 차별화된 모습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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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선생은 중국다도의 시조로 불리운다최초로 차에 관한 종합적인 전문서이며 또 다인의 필독서인 불후의 명작 다경(茶經)3권을 저술했기 때문이다단순한 차 마시는 행위가 이 책으로 인하여 다도(茶道)는 학문과 예술의 경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수행차원까지 승화될 수 있었다차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완벽한 고전으로 저술에만 10여년이 걸린 역작이다차를 끓이고 마시는 법에 정신적 가치를 두고 미학적으로 기술한 것은 육우선생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였다.

당신은 호주땅에서 수십년을 살았다호주는 물맛이 좋은 곳이다차맛은 결국 물맛이다물맛이 좋아야 장맛도 좋고 술맛도 좋다따라서 물맛을 제대로 구별하는 능력은 전문다인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그의 품천(品泉 물 품평능력)솜씨는 타고난 것이다차를 달이기 위해 준비된 양자강 가운데로 흐르는 맑은 물이라고 떠온 것을 맛보고는 그 물이 아니다라고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나중에 알고보니 지게꾼이 넘어지면서 물을 엎질러버린지라 할 수 없이 남은 물에 다른 물을 섞은 것이였다.

육우인생의 시작도 물가였다호북성 복주(復州경릉(竟陵 현재지명은 天門이다서호(西湖주변에 버려진 아이였다기러기들이 떼지어 우는 소리를 이상하게 여긴 지적(智積)스님이 핏덩이인 그를 안고서 돌아 온 용개사(龍盖寺)에서 다동(茶童 차 심부름하는 아이)생활을 하면서 차와 인연을 맺었다현재 서호공원(일명 육우공원인근에는 선생이 처음 차를 만난 서탑사(西塔寺 옛 용개사)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청년시절 안록산의 난 때문에 피난 온 강남 땅에서 술과 함께 은자처럼 숨어지냈다그러던 중 태호(太湖)호수 자락에 있는 저산(杼山묘희사(妙喜寺)에서 다인인 동시에 학자인 14살 연상의 교연(皎然720~803)스님을 만나게 된다이로부터 차로 술을 대신(以茶代酒)’하며 오랜 세월동안 승속(僧俗)의 경계를 넘어 망년지교(忘年之交나이를 잊고 지내는 친구)가 되었다두 사람은 함께 시와 문장을 짓고 불교를 이야기하고 차를 마시면서 차의 정신을 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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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남은 육우인생의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이를 계기로 육우는 다예의 중심지역에서 차문화를 전반적으로 조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그 결과물이 다경(茶經)’이다서호에 버려졌던 아이가 드디어 태호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호주라는 지명은 태호에서 비롯되었다.) 물가에 버려졌지만 물가에서 활동했고 결국 물가에서 출세를 한 것이다당나라 대종(代宗)이 그의 명성을 듣고 태자문학(太子文學 태자를 가르키는 스승)’이라는 벼슬을 내렸지만 끝까지 사양했다.

차문화가 일상화된 지역이라 그런지 커피는 흔적조차 없다차나무를 매일 만나고 다닌 덕분인지 일주일이 지나도 커피생각이 나지 않는다물론 금단현상도 없다보이지 않으니 마실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것인가이것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

여행 마지막 날 밤 태호(太湖)를 찾았다관광지로서 갖추어야 할 인프라를 모두 갖춘 엄청난 규모의 호수공원이다갖가지 조명으로 수놓은 야경을 감상하다가 발견한 커피숍에 앉았다그동안 커피를 굶은 몸이 빨아들이듯 흠뻑 스며들줄 알았는데 그냥 무덤덤했다차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인가하긴 나 역시 커피를 마신 기간보다는 차를 즐긴 세월이 더 길지 않았던가여행안내 자료집에 실린 교연스님의 음다가(飮茶歌)’를 읽었다.
일음척혼매(一飮滌昏寐한 모금 마시자 혼미함이 씻겨나가고
재음청아신(再飮淸我神두 모금 마시자 정신이 맑아지고
삼음변득도(三飮便得道세 모금 마시자 도를 이루니
하수고심파번뇌(何須苦心破煩惱)번뇌를 없애고자 마음 쓸 일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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