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보도 뒤 다시 만난 탈시설 장애인 하상윤 3개의 액자 속에 신문기사 담아 집에 보관 “‘자립, 나를 결정할 권리’라는 제목이 좋았어요 자기결정권, 지금까지 그걸 말하고 싶었거든요” ‘장애인 향한 시선’ 겁나 댓글 안봤지만 뒤늦게 확인 뒤 미소 “더 많은 사람들 알고 싶어”
하상윤이 자신의 기사가 담긴 액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얼굴도 모자이크 했으면 좋겠고, 이름도 가명으로 하고 싶어요” 하상윤은 겁을 냈었다. <한겨레>가 장애인자립리포트를 준비하며 ‘48시간 동행취재’를 제안했을 때, 그는 모자이크와 가명을 요구했다. “아버지가 보고 찾아오면 어쩌죠” “혹시라도 활동지원시간이 깎일 수도 있어요” 현실적인 걱정들이었다. 하상윤을 시설에 보내고 그가 시설에서 나온 사실을 알고 불같이 화를 냈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무능력’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시간. 하상윤은 자신이 임대아파트에서 웃으며 살고 있는 모습이 나가면 현재의 삶이 뒤틀릴 수 있다 우려했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었어요. 시설에서 나와서 살 수 있다는 걸”
장애인 자립에 대한 지원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그는 이불 하나와 수납장 하나만 들고 시설에서 나왔다. 부양의무제 때문에 기초수급자도 될 수 없었다. 부양의무가 있는 아버지는 “시설에서 나오면 단 한푼도 지원할 수 없다”고 했다. 당장 거주할 곳이 없어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먹고 잤다. 하지만 지금은 임대아파트도 얻고, 사랑도 하고 꿈도 키우며 산다.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은, 모자이크하고 가명이면 기사에 못 나올 수도 있다고 하니까. 사실 신문에 나오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하상윤은 웃었다.
47일 만에 다시 만난 하상윤의 집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있었다. 집에 액자 3개가 생겼다. 액자에는 하상윤의 이야기가 소개된 <한겨레> 신문이 각 면 별로 담겨 있었다. 1면에서 자신의 사진이 나온 부분만 오려 액자 중앙에 담았다. “아직 벽에 걸지는 못했어요. 떨어질까봐요” 하상윤은 액자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취재 이후 거의 매일 연락을 해왔다. 신문을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도 물었다. “신문 나오잖아요? 신문크기를 알고 싶어요. 액자에 사서 끼우려고 하는데, 그럼 액자 크기를 정해야 하니까” 하상윤은 웃었다. “축하 메시지도 많이 받았어요. 기사 잘 봤다고요”
사실 그가 언론에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6월 비리 장애인 시설인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벗어나 자립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던 ‘마로니에 8인’ 시절 그의 농성과정은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상윤은 대체로 천막에서 농성을 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시청 앞에서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는 투쟁하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불쌍한 장애인도, 투쟁하는 장애인도 아닌 그냥 하상윤의 모습 말이다. “신문 지면에 ‘자립, 나를 결정할 권리’라는 제목이 좋았어요. 권리는 내가 나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거잖아요. 누군가의 동정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것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자신이 불쌍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 좋았다고 했다. “자기결정권, 그걸 말하고 싶었으니까요”
하상윤이 자신의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_________ 기사에 달린 응원 댓글…“새로운 세상이 열렸어요”
상윤은 처음엔 댓글을 읽지 못했다고 했다. 두려웠다.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있잖아요. 그게 무서웠어요” 그가 과거 외출 다닐 때 겪었던 일들을 하나둘 꺼내놨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노인은 상윤을 향해 “장애인이 외출을 뭣하러 나왔냐”고 타박하며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꾸짖었다. 장애인 이동권을 외치며 지하철을 멈춰세우거나 명절에 고속버스·시외버스를 막아설 때면 사람들은 “왜 교통을 방해하느냐”고 쏘아붙였다고 했다. 사실 그는 자립 뒤에도 비장애인들을 만나본 일이 거의 없다. “시설에서만 27년 살았고, 나와서 10년은 자립을 위해 장애인운동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비장애인들을 만나본 일이 별로 없었죠” 그와 관계를 맺었던 비장애인은 시설 직원, 장애인 운동활동가, 센터 직원, 활동지원사가 대부분이었다.
‘댓글에 응원의 말들이 많다’고 알려줬다. 상윤은 조심스레 휴대전화를 켰다. 댓글을 하나둘 읽던 그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번졌다. 화면이 내려갈수록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새로워요. 댓글을 보니까, 비장애인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서로를 알아가는 세상을 꿈꿨다. “서로서로 알아가고 싶어요. 장애인의 삶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고 싶어요”
하상윤이 새로산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 책을 꺼내들고 웃고 있다.
_________ 봄이 오면, 더 넓은 세상으로
상윤은 이번 설에 특별한 일정 없이 집에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최근 체력이 많이 떨어져 병원에도 자주 간다고 했다. 만날 가족이 없는 그에게 설은 어쩌면 다른 날과 비슷한 하루하루일 뿐일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보고싶은 것도 아니니까요. 어머니는 보고 싶지만, 지금은 돌아가셨어요” 그는 휠체어를 태울만한 차량을 구할 수 있게 되면, 꼭 어머니의 산소에 찾아가볼 생각이라고 했다.
대신 그는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봄이 오면, 새로운 복지관에도 나갈 거예요. 이사 온 뒤에 이곳 복지관은 가보질 못했거든요. 야학도 2개를 다니려고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상윤의 표정이 지난 번보다 밝아진 것 같았다.
상윤은 최근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공부하기 위해 640쪽짜리 책을 1권 샀다. 매주 2회 듣는 컴퓨터 수업도 평소보다 더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이제 신문에도 나왔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죠. 그래서 책도 새로 샀어요” 그가 책을 들어보였다.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유난히 따뜻했다. 어쩌면 상윤에게는 벌써 봄이 찾아온 것도 같다.
상윤은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기사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기사가 나올텐데, 자립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세요. 자립을 통해서, 장애인들도 부모나 시설의 보호가 아니라 혼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7일 전 취재가 끝난 뒤 마지막 자기소개를 할 때처럼 그가 수줍게 말했다. 상윤은 이제 ‘자신만의 공간’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 강위원 상임대표 고희철 기자 khc@vop.co.kr 발행 2024-06-06 16:14:31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지난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에 전면으로 부상해 4.10 총선 결과 민주당의 한 축을 이뤘다. 대개 언론에는 ‘친명 강경파’ 조직으로 소개된다. 지난 2일 2기 강위원 상임대표가 선출됐다. 한총련 의장을 거친 강 대표는 전남 영광군 묘량면에서 여민동락 공동체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민형배 구청장 시절 광산구노인복지관장 등을 거쳐 이재명 도지사 시절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을 맡았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의 일정을 총괄했고, 그 뒤 당대표 특보와 혁신회의 1기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혁신회의는 국회의원 31명을 배출해 당내 최대 정치세력으로 불린다. 강 대표 본인은 경선에서 사퇴해 국회 입성에 실패했지만 상임대표가 됐다. 그러나 혁신회의와 강 대표는 언론에 대체로 부정적으로 언급된다. 친명, 강경, 팬덤, 개딸 등의 연관어와 함께. 특히 국회의장 후보 경선으로 촉발된 당원민주주의 논쟁은 부정적 보도 증가에 기여했다. 3일 여의도의 오피스텔에 자취방처럼 차려진 혁신회의 사무실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묻고자 한 것은 간단했다. 지난 총선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으로 당을 장악했다는 비판과 극성 팬덤을 앞세워 국회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비판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상임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6.03 ⓒ민중의소리 1시간을 예정한 인터뷰는 2시간 30분을 넘겨 간신히 ‘중단’됐다. 그는 거침이 없었고, 할 말이 많았다. 그의 말은 영광군과 광산구와 경기도를 넘나들었고, 5.18정신과 김대중, 노무현도 수시로 언급됐다. 특히 언론의 당원민주주의 폄하에 강하게 반박했다. 친명만 공천되고 비명은 탈락한다는 이른바 ‘친명횡재 비명횡사’ 논란에 강 대표는 “그게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이어 “작업을 한 ...
우드사이드 사업 철수 과정 해명 석연치 않아, 경쟁입찰 했다는데 공개된 기록 없어…검증 과정도 불투명 홍민철·조한무 기자 발행 2024-06-07 15:16:28 미국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7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06.07. ⓒ뉴시스 동해 영일만 석유·가스 탐사 사업과 관련한 여러 의혹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석유공사, 사업성 분석업체 액트지오가 해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 대형 석유회사가 사업성 없다고 판단한 사업을 재추진한 이유, △ 사업성 분석 주체로 영세 업체인 액트지오를 선정한 이유, △ 매장량 및 성공 가능성을 추산한 근거 등 핵심 쟁점에 대한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과학적 근거는 없었다. 그 흔한 그래프, 도표 한장 제시하지 않았다. 원론적 설명에 그쳤다.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을 쟁점별로 정리했다. 15년 탐사한 대형 업체 우드사이드와 액트지오 판단, 왜 달랐나? 이번 사업은 당초 석유공사와 함께 탐사를 진행했던 호주 대형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가 철수한 뒤 사실상 재추진됐다. 때문에 ‘경제성 없는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우드사이드는 지난 2007년부터 2022년까지 15년간, 동해에서 석유공사와 공동으로 탐사를 진행했다. 2D 광역 탐사를 시작으로 시추공 2개를 뚫고, 3D 탐사로 자료를 구체화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7월, 돌연 사업 중단을 통보했다. 이와 관련 곽원준 한국석유공사 국내사업개발처 수석위원은 “배경을 보면 우드사이드가 다른 회사와 합병 후 글로벌 탐사 전략 변경 과정에서 사업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사업 중단이 동해 영일만 탐사의 사업성이나 경제성 문제라기 보다는 우드사이드 자체 사정이라는 취지다. 추가 설명도 내놨다. 우드사이드가 실시한 대규모 3D 탐사 결과를 충분히 평가하지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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