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우울 - 미국을 양분하는 문화 전쟁의 전개와 전망

 

어째서 미국에서는 그런 문제로 격렬하게 다투고 있을까?
김종익 | 2023-02-17 13:03:26



미국의 우울 – 미국을 양분하는 문화 전쟁의 전개와 전망

후지모토 류지藤本龍兒
1976년생. 테이쿄帝京 대학 문학부 사회학과 부교수. 사회 철학․종교 사회학 전공.
『미국의 공공 종교 – 다원 사회의 정신성』, 『Post-Americanism의 세기 – 전환기의 기독교 문명』 등의 저서가 있다.



어째서 미국에서는 그런 문제로 격렬하게 다투고 있을까?

미국을 분단하는 사례를 설명하노라면,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임신 중절과 동성애, 총기 규제와 지구 온난화, 인종 차별 등을 둘러싼 대립은, ‘문화 전쟁’으로 불릴 만큼 격화되어, 미국을 양분하고 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는 민주당의 이념은 물론, 공화당의 이념도 타파하며, 종래의 대립 축을 허물면서, 단숨에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가운데, 보다 깊은 대립 축으로 주목 받게 된 것이 문화 전쟁이다. 이번 중간 선거에서도, 임신 중절 등 문화 전쟁 문제가 커다란 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 문제들이 미국을 양분할 만한 문제가 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성의 권리와 LGBTQ(여성 동성애자lesbian, 남성 동성애자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성 소수자 전반queer 혹은 성 정체성에 갈등하는 사람 questioning -  역주)의 존중, 총기 규제와 온난화 대책 등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세계적 과제이고, 더구나 인종 차별을 바로 잡는 문제는, 이미 과제라기보다 일반 상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꾸로 미국인에게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 경우가 간간히 있다. 왜 일본에서는 헌법 9조 문제가 나라를 양분할 정도로 쟁점이 되고 있느냐고. 국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나라가 군대를 갖는 것은 세계적 상식이고,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특별히 강경파라고 할 수 없는 미국인에게서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한 발 물러나 대답하게 된다.

확실히 군대를 갖느냐 갖지 않느냐로 나라를 양분하며 다투는 것은 세계적으로는 비상식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깊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가 있다. 일본의 역사, 특히 戰前 戰中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비롯해, 그것들을 바탕으로 성립한 일본의 존재 방식, 그리고 세계 속에서의 역할 등, 일본 입장에서는 커다란 문제가 집약되어 있다. 아니, 일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전쟁과 평화’와 같은 보편적인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 거기에 있기 마련이다.

대략 이런 식으로 나는 대답한다. 그러나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런 설명은, 문화 전쟁을 설명하는 데도 적합하다. 문화 전쟁은, 일본에서 보면 특이하게 보여도,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기초한 가치를 둘러싼 대립이며, 나아가서는 보편적인 문제로도 이어진다, 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이미 많이 소개되고, 이해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문화 전쟁의 중요한 핵심에는 사상과 종교가 있으며, 이 사상과 종교가 미국의 가치를 둘러싼 여러 문제를 알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글에서는, 개개의 사례가 아니라, 문화 전쟁의 전체 모습을 널리 사회사상사이나 종교의 관점에서 부상시켜서, 그 기저에 있는 과제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 1960년대의 문화적 변용

문화 전쟁은, 적어도 반세기 정도는 이어지고 있으며, 여러 갈래에 걸쳐 전개되어 왔다. 배경에는, 1960년대의 커다란 문화적 변용이 있다.

하나의 계기는, 1960년대를 석권한 counterculture에 있었다. 기존의 체제와 제도, 규범을 떠받치는 main culture에 ‘대항하는 문화’의 융성이다. 젊은이를 중심으로 한 히피 문화와 성 해방, 마약, 록 등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기대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는, 공민권 운동과 여성 해방 운동, 베트남 반전 운동, 나아가 동성애자의 권리 운동과 환경 운동 같은 사회 운동도 전후해 나란히 일어나서, 1970년대의 흐름을 형성해 갔다.

그리고 1973년, 연방최고재판소에서, 임신 중절의 권리는 헌법으로 보장된 사생활권privacy rights에 포함된다는 Roe vs Wade 판결이 내려졌다. 이 판결은, 여성의 권리를 크게 전진시키는 확실히 획기적인 판결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보수파에게는, 미혼 출생률의 증가와 빈곤한 모자 가정single mother family의 증가, 오래된 좋은 가족상의 파괴, 더욱이 치안 악화와 약물 중독 확대까지, counterculture가 야기한 사회적, 도덕적 황폐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Roe vs Wade 판결
“임신을 계속할까 말까에 관한 여성의 결정은, 사생활권privacy rights에 포함된다”고 하여, 미합중국 헌법 수정 제14조가 여성의 낙태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처음으로 판시해, 인공 임신 중절을 규제하는 미국 국내법을 위헌 무효로 한 1973년의 미국 연방최고재판소의 판결. - 역주

2022년 6월, 이 Roe vs Wade 판결이, 대략 반세기 만에 연방최고재판소에서 번복되어, 중간 선거에서 커다란 쟁점이 되었다. 매스컴의 보도로 여러 번 다루어졌기 때문에, 중절과 젠더,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대립이 문화 전쟁의 중심이 되었다는 인상을 갖게 된 사람도 많으리라.

다만, 문화 전쟁의 배경에 있는 문화적 변용에는 또 하나, 1965년의 이민법 개정이라는 계기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 사회에서는 유럽계를 우대하는 인종주의적인 이민 선발에 비판이 높아졌다. 국내에서도 공민권 운동으로 인종 차별에 대한 의식이 고조되어, 출신 국가별 할당 제도가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이민의 출신 지역 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와 중남미로 바뀌어, 문화의 다양성이 늘어 갔다. 이민은 경제적으로는 필요로 하는 경우도 많고, 값싼 노동력으로 환영하는 공화당원도 있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위협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문화 전쟁의 일부가 되어 갔다.

이리하여 문화 전쟁은 1970년대에 인종과 성, 이민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가치관을 허용하는 리버럴파와 전통적인 가치관을 사수하려고 하는 보수파 사이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는, 보수파가 공화당과, 리버럴파가 민주당과 결속을 강화하며, 대립이 깊어졌다. 1988년에는, 교육 영역에서 커다란 논쟁이 야기되었다. 스탠포드 대학을 비롯하여, 대학에서 서양 중심주의적인 교육이 비판을 받아, 커리큘럼을 다양한 문화와 민족에 적합한 것으로 개편하라는 요구가 확산되었다. 특히 그런 고등교육에 관련된 이러한 논쟁 가운데에는, 편견과 차별을 지니지 않은 중립적인 말이나 표현을 사용하는 ‘politically correct’, 바로 ‘정치적 올바름’이 폭넓게 추궁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말부터는, 뒤에서 보듯이 ‘다문화주의’가 논의되게 된다.  
 
이런 동향을 발판으로 1991년, 종교사회학자인 James Davison Hunter가, 그때까지의 대립을 ‘문화 전쟁’으로 규정했다.(『Culture Wars : The Struggle to Define America』, James Davison Hunter, 1994년)

이 말은, 이듬해인 1992에는, 이미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공화당 전국대회에서, Pat Buchanan이 문화 전쟁을 강조한 기조연설을 했기 때문이다. 뷰캐넌은, 닉슨 정권과 레이건 정권의 보좌관을 지내고, CNN 프로그램에서 사회자를 역임하는 등으로 유명세를 얻어, 공화당의 지명 후보 선거에 가담했다. 기조연설에서는, 인공 임신 중절과 동성혼, 포르노 등을 공격 대상으로 삼고, 거기에 더해 기독교적 가치관을 내걸고, “우리의 문화를, 그리고 우리의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고 격렬하게 호소했다.

뷰캐넌은, 이밖에도 미국 제일주의, 보호무역주의, 이민 배척, 反정치적 올바름 등을 호소하고 있어, 돌이켜보면 ‘트럼프의 선구자’로 규정할 수 있다. 이른바 ‘트럼프 현상’이, 근년에 나타난 일과성 현상이 아니라, 문화 전쟁에 뿌리를 둔 긴 조류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는 2020년, ‘cancel culture’(주로 저명인을 대상으로 과거의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행동이나 발언을 고발하고 거기에 비판이 쇄도함으로써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잃게 만드는 소셜 미디어 상의 현상이나 운동 – 역주)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인종과 젠더, 이민 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지닌다는 이유로, 미국 문화와 역사를 ‘cancel(취소)’하려는 리버럴파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워싱턴과 제퍼슨, 링컨 등의 동상을 잡아 당겨 쓰러뜨리거나 철거하거나 하는 움직임이다. ‘건국의 아버지’든, 노예 해방을 행한 역사적 위인이든, 실제로는 노예를 소유하고, 혹은 차별 의식을 지녔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리버럴파는, 역사와 문화 속에 있는 ‘차별’이나 ‘차이’를 의식하는 것을, ‘woke(깨어 있다)’고 하며 높게 평가한다. 여기에 반해 보수파는, 역사의 교훈마저도 취소해버리자며 그것들을 비판한다.

■ ‘문화 다원주의’에서 ‘다문화주의’로

빠르게 반세기를 뒤돌아보았는데, 이 밖의 쟁점도 적지 않다. 수많은 문화 전쟁의 쟁점을 개개의 쟁점으로 보고 있자면, 그것들에 ‘문화 차원에서 격렬한 대립’이라는 것 이외의 공통항은 있는 것일까, 라고 헷갈릴 때가 있다.

다만, 공통하는 것은 분명히 있는 데, 그것은 ‘미국의 정의定義를 위한 싸움’(James Davison Hunter 책의 부제목)이라고 여겨도 좋을 듯하다. 문화 전쟁이란, 미국의 중심적인 가치란 뭔가, 미국을 미국답게 하는 것이란 뭔가와 같이, national identity와 이념을 둘러싼 이상적 차원의 대립이다. 

실제 문화 전쟁에서는 ‘건국의 이념’이 참조되는 일이 많다. 예를 들면, 독립 선언에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고 있는데, 여기에 있는 ‘인간’이란 누구일까. 백인만일까, 남성만일까. 헌법 수정 2조에는 “인민이 무기를 소유하고, 또 휴대할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있는데, 여기서는 ‘총기 규제’를 비롯해, ‘자위’와 ‘자치’, ‘반체제’, ‘폭력’ 등을 둘러싼 사상이 추궁된다. 가령, ‘건국의 아버지’와 역사상 위인의 업적을 재검토하고 하는 쪽이라 해도, (과격한 폭력에 호소하는 사람들과는 별도로 하고) 목표로 하는 것은 국가 전복 같은 것이 아니라, ‘미국(史)’를 마이너리티 입장에서 재검토 하는 것일 뿐이다.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한 ‘공유된 이념’ 또는 ‘미국의 자화상’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고 해도 좋으리라. ‘미국이란 뭔가’라는 물음은, ‘분단의 원인’임과 동시에 ‘연대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문화 전쟁을 건국 이후의 역사 속에서 자리매김해보면, 국민을 통합하기 위한 ‘미국의 자화상’은, 移民과의 관계에서 몇 번인가 다시 그려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미국은 앵글로색슨을 중심으로 한 국가라는 자화상이 그려졌다. 건국 당시의 미국은, 영국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고, 공용어는 영어이며, 생활양식을 비롯한 정치와 경제, 법률까지, 대부분이 앵글로색슨 스타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移民이 ‘美國人’이 되는 데는, 기본적으로 앵글로색슨화가 요구되었다. 이것은 ‘Anglo Conformity론’으로 불리며, 주로 1890년대 이후, 동구와 남미에서 비앵글로색슨계의 ‘새로운 이민’이 증가했던 때 높아졌다.

다음으로, 미국은 ‘인종 융화’라는 자화상이 그려졌다.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미국이라는 그릇 속에 용해되어, 문화적으로 새로운 인간이 형성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융화론融和論amalgamation theory(일명 용광로melting pot라고도 한다. 일본어로는るつぼ論 - 역주)으로 불리며, 1908년에 브로드웨이에서 「Melting Pot」이라는 희곡이 장기 흥행한 일로 확산되었다.

나아가 미국은 이민이 각자의 특성을 지닌 채 혼재하는 국가라는 자화상이 그려졌다. 이민은 변함없이 자신이 속한 민족 집단의 전통 문화를 지니고 있어, 미국은 이질적인 문화가 모자이크처럼 조합된 사회라는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salad bowl theory’로서 알려졌으며, 사상적으로는 ‘문화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로 논해진다.

주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걸친 공민권 운동과 이민이 다양화되기 시작한 1970년대의 ‘ethnic revival’ 등으로 제창되었다. 문화다원주의는 ‘Anglo Conformity론’과 ‘융화론’과는 다르며, ‘동화’를 수반하지 않는 형태로, 다문화 사회를 사상적으로 기초로 한 것이다. 이것으로 겨우 다양한 문화가 수용될 뿐만 아니라,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문화 사회의 좀 더 발전된 진전은, 그런 사상을 허물어 갔다. 1980년에 들어서자, 미국은 다양성 그 자체를 national identity로 하는  나라라는 자화상이 그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문화다원주의와는 다른 사상으로, 1980년 말에 ‘다문화주의multi culturalism’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두 가지는,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공통하고 있어 혼동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사회사상으로서는, 오히려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문화다원주의는, 다양한 문화의 존재를 존중하지만, 연대와 통합을 지탱하는 것으로 국민에 공유된 문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국민 문화 중심에는 서양의 전통 문화가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다종다양한 샐러드를 담는 ‘그릇’ 쪽은 서양 문화로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화다원주의는, 공사를 구별하고, 사적 영역에서는 다양성을 용인하고, 공적 영역에서는 공통성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여기에 반해 다문화주의는, 서양 문화가 국민 문화의 중심이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상정은, 다양한 문화를 억압하는 서양 중심주의라고 여겨 비판하는 것이다. 이 사상의 형성은, 1965년의 「수정이민법」이 계기가 되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1960년대의 문화적 변용에는, 또 하나의 커다란 계기가 있었다.

■ ‘차별 시정’에서 ‘차별 승인’으로

다문화주의 논쟁의 주요한 논자이며, 근대 아이덴티티 형성을 연구해 온 사회철학자   Charles Margrave Taylor는, 1960년대에 ‘개인화 혁명’이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현대에 특징적인 ‘실재’(원문은 ほんもの本物. ほんもの는 영어로는 주로 reality, real thing으로 번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가짜’에 대응하는 ‘진짜’의 의미로 통용된다 - 역주)라는 도덕적 이상이 있으며, 그것이 문화 전쟁을 낳게 했다고 한다.

이것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선택한다는 근대 개인주의에 새로운 기축을 더한 ‘자기실현 개인주의’와 ‘표현적 개인주의’로 불리는 사상의 확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사상은, 대략 다음과 같은 전개로 생겼다.

근대가 되자 공동체가 무너지거나, 한정적으로 고정되어 있던 사회적 역할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이리하여 개인의 선택지가 늘어나고, 또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늘어나기도 하여, 자신은 누구인가, 라는 아이덴티티 문제가 생겼다. 근대적 개인은, 선악을 판단할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존엄이 깃든다고 여겼는데, 특히 루소는 도덕적 판단력을 이성만이 아니라 직관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이어진 18세기 후반의 낭만주의 시대 이후, 개인은 각자 독특한 감정의 핵을 가지며,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자기실현을 이룬다는 표현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은 지적 혹은 예술적 엘리트층의 전유물이었던 표현주의도, 점차 대중에게까지 확산되어 갔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근대 개인주의 가운데에서도,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계산에 따라 인생을 조립하는 공리적 개인주의가 지배적이었다. 1960년대에는, 그것에 대한 반발 또는 보완으로 ‘표현적 개인주의’가 요구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표현적 개인주의의 배후에 있는 ‘내 안의 본래적 나에 충실하라’는 도덕적 이상이, ‘Authenticity(확실성, 本來性)라는 윤리’다. 이로써 현대인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충족을 찾아내어, ‘나답게 살’도록 촉진되게” 되었다. 그리고 자유는, 사회로 인해 소외되어 있는 “내 안의 ‘진정한’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이러한 표현적 개인주의를 보수 쪽은 자신보다 상위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 상대주의와 원자론atomism, 자기애narcissism 등으로 추락했다고 비판한다. Taylor는 그런 형태들로 전락한 개인주의 가운데에서 ‘Authenticity’ 윤리가 지닌 도덕적인 힘을 살려내려고 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문화 전쟁에 대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표현적 개인주의는, counterculture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며, 사회 운동의 변질과도 연동했다. 자유의 표현을 위해서는, 기존 체제에 대항하고, “‘진정한’ 자신”을 승인하도록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인종 차별을 둘러싼 운동도, 킹 목사가 지적했듯이, 백인과 동등한 공민권을 취득하려고 하는 것에서, Black Panther(흑표범단원. 1966년에 결성된 전투적 흑인 해방 운동 조직 – 역주)처럼, 흑인의 독자성을 인정하게 하려고 하는 것으로 변해 갔다. 최근의 Black Lives Matter도 ‘Black’을 자신들의 아이덴티티의 핵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1960년대부터는 서서히 사회 운동의 목표가, 말하자면 ‘차별 시정’에서 ‘차이 승인’으로, 중심을 이동해 갔다.

이 경우 아이덴티티의 기반으로 여겨지는 것은, 인종과 섹슈얼리티, 민족성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있다. 게다가 ‘흑인 여성’ 등, 복합적인 아이덴티티도 대두된다. 다문화주의에 있어서 문화도 아이덴티티에 준거한 문화, 특히 마이너리티 문화로 세분화해 간다. 백인 문화를 필두로 한 서양 문화는, 다양한 문화를 억압하는 것으로 비판을 받고, 나아가 마이너리티 문화도, 억압 상태에서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보다 ‘본래의 것’을 탐구해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오고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는, 복지 국가의 막다른 행선지가 밝혀진 점도 있어, 리버럴파는 주요한 관심과 목표를 경제에서 문화로 옮기고, 거점도 노동 운동 현장에서 대학으로 옮겨 갔다. 게다가 이 시기 대학에는, 유럽에서 ‘근대적 주체’와 ‘차이’를 논하는 포스트모던 사상이 유입되어, 복잡하게 얽힌 철학적 논의도 전개되었다. 이리하여 문화 전쟁에서 리버럴파는, 주로 다문화주의와 ‘아이덴티티 정치’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많은 마이너리티가 승인되게 되고, 이런 의미에서의 자유가 실현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특히 최근에는 그 폐해도 많이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면, 다문화주의는 새로운 공통의 장소를 형성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는 “아이덴티티 정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거의 위협이 되지 못 했다. 오히려 반대였다”는 반성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포스트모던 사상에 정통하면서, 그 정치적 영향을 두려워했던 Richard Rorty에 의해 일찍부터 지적되고 있었다. 1980년대 이후, 말하자면 네오 리버럴리즘과 글로벌리즘 정책으로, 선진 여러 나라의 중간층 몰락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이것을 좌파가 경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으리라. 미국의 좌익은 어디에 있었냐고. 노동자에게 글로벌화를 초래한 결과에 대해 말을 거는 것이, 어째서 뷰캐넌 같은 우익뿐인가. 왜 좌익은 직업을 빼앗기고, 새로 분노를 더해가는 사람들을 이끌 수 없었던 걸까, 라고. (Richard Rorty, 「Achieving Our Country : Leftist Thought in Twentieth – Century Americ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p91)

Rorty는 이 상태에서는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포퓰리스트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경고했다. 문화 전쟁과 얽힌 글로벌 자본주의의 진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트럼프 현상이 뿌리 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Rorty의 경고

아이덴티티의 정치를 원동력으로 하는 문화 전쟁으로 변질된 것은, 좌파만이 아니다. 백인은,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처럼, 가령 민주당 지지자라 해도, 다양성과 관용과 같은 리버럴한 가치가 거꾸로 자신들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면 손에 넣기 마련인 수입도 긍지도, 상실했다.

그렇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 것이 트럼프다. 엘리트는 당신들을 시대에 뒤쳐진 쓸모없는 인간으로 ‘잊힌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자신들과 다르고, 마이너리티에게 이해를 표하지 않는 ‘차별적인 사람’이라고 딱지를 붙이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이야말로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양육하고, 지역에 공헌하고, 세금을 내고 풍요를 나누어 주고,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어 온 ‘자랑할 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며 백인의 분노에 이해를 표하고, 백인의 긍지를 되찾으라고 호소한 것이다.

아이덴티티 정치는 감정을 핵으로 삼아, 그 승인을 구하기 때문에, ‘분노’와 ‘긍지’가 자극을 받아, 과격화하기 쉽고, 타협하기도 어렵다. 이리하여 일부에서는, 인종주의와 백인 지상주의, 자국 제일주의 등이 점점 더 심해졌다. 동시에 엘리트와 마이너리티를 적대시하게 하고, 중간층에 의한 포퓰리즘과 반글로벌리즘, 배외주의 등을 비대화시켰다.

그리고 아이덴티티 정치는, 문화 전쟁에서 가장 큰 세력인 종교 보수를 보다 융통성 없는 고집쟁이로 만들었다. 애당초 문화 전쟁의 배경이 되었던 1960년대는, 종교에 ‘급진적인 전환’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했다.

내면의 자기를 찾는 젊은이는, 교회 조직에서 이탈해 ‘영성spirituality’로 향한다. 연방최고재판소에서는, 마이너리티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여, 1962년에는 공립학교에서 기도가, 1963년에는 성서 낭독이 위헌이 되었다. 신학에서 ‘신의 죽음’이라는 언설은, 1966년에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기까지 되었다. 확실히 교회에서는 신도 감소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리버럴파 교회의 일이고, 복음파는 세력을 늘여갔다. 1976년에는 복음파인 것을 처음 공언한 지미 카터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 타임지 표지는 일변해 ‘복음파의 해’라는 말이 장식하게 된다. 그리고 1980년에 공화당이 복음파를 수중에 넣는 데 성공한 이후, 종교 보수가 문화 전쟁의 한쪽 당사자를 대표하고, 현재도 트럼프 지지 기반이 되고 있다.

문화 전쟁과 트럼프 현상의 향방을 판별하려고 하면, 중요한 것은 종교 보수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 보수는, 간단히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종교 보수의 중심인 복음파 안에서도, 중절 전면 금지 찬성은 26%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가정 위탁 양육이나 모친 지원 등의 대안을 모색도 하고 있다. 또한 동성애 커플에게 결혼과 동일한 권리를 보장하는 ‘civil union’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를 지지하는 복음파는 대략 40%에 이른다.

물론 그 정도로는 문화 전쟁을 해결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은 극단적인 사상의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종교 보수는, 반세기에 걸쳐 세력을 계속 유지해 온 것이다. 그런데도 문화 전쟁 와중에 즈음해서는, 일부 과격 그룹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거기에 또한 트럼프가 말을 건다. 세속주의자인 엘리트는, 당신들을 시대착오이고 위험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이야말로 기독교 국가 미국의 초석이다, 라고. 그런데도 사실은,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종교 보수는 반수 이하다. 다만, 대부분이 완고해지고, 일부가 과격해지는 것은 틀림없다.

지금 Rorty의 경고는 보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틀림없다. 사람들은 묻는 것이다. 미국의 보수는 어디에 있었던가. 국민에게 글로벌 자본주의를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 말을 걸었던 것이, 왜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 뿐이었을까. 왜 보수는, 문화 전쟁 속에서 분노에 사로잡히고, 배타적이 되어 가는 국민을 이끌 수 없었던 것인가, 라고.

이것은 결코 미국의 일만은 아니다. 문화 전쟁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분노에 떨며, 긍지를 되찾으려 하는 국민에게, 세계 각지의 미니 트럼프가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미 문화다원주의가 갖추어져 있었던 서양적인 공통성이라는 그릇에는 금이 가고, 근대에 생긴 아이덴티티는, SNS상의 virtual community에 의해 증식되고, 파편화되고 있다. 아이덴티티 정치에서는 ‘분노’와 ‘긍지’가 착종되어, 단순한 대립 도식에 따라 동원과 離反이 반복되고 있다. 2024년의 대통령 선거를 목표로 가능한 것은, 점점 증가하기 시작한 문화 전쟁에 대한 반성을 정성껏 주워 모아서, 우선은 깨지기 직전의 그릇에라도 담아, 신중하게 음미하는 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世界』, 202301월호에서)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1001&table=ji_kim&uid=195 

评论

此博客中的热门博文

[인터뷰] 강위원 “250만 당원이 소수 팬덤? 대통령은 뭐하러 국민이 뽑나”

‘영일만 유전’ 기자회견, 3대 의혹 커지는데 설명은 ‘허술’

윤석열의 '서초동 권력'이 빚어낸 '대혼돈의 멀티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