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호칭이 좋을까요 - 박진영 공감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2023년 02월 27일(월) 02:00
우리나라에 살면서 한국어를 익혀 쓰는 외국인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호칭이다. ‘당신’이란 호칭을 상황에 맞게 제대로 쓸 줄 안다면, 우리말을 잘 구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호칭을 사용하기란 참 어렵다. 그래서 나도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제가 어떻게 불러드리면 좋을까요?”

한국인의 호칭 사용법은 상대방을 가능한 높여 부르는 것을 예의로 친다. 언론 보도에 잘 나타나 있다. 사회적으로 가장 인정받는 현재 직책을 우선한다. 공직은 장관, 차관, 국장 등 고위 직책을 우선하고, 그 아래로는 아무개 서기관, 아무개 사무관 등으로 불러 권위를 부여하기도 한다. 민간일 경우 회장, 부회장, 사장, 전무나 본부장 등 힘있어 보이는 직책명을 쓴다. 교수, 변호사, 회계사, 기자 등 하는 일을 호칭으로 쓰기도 하고, 아무개 작가란 호칭도 요즘은 흔하게 되었다. 상대가 윗사람일 때는 끝에 ‘님’을 불인다. 이름은 빼고, 성 뒤에다 직함을 붙여 ‘김 대표님’, ‘윤 변호사님’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전직인 경우에는 맡았던 자리 가운데 가장 고위 직책으로 호칭한다. 언론 보도에선 ‘전 ○○ 국장’ 식으로 쓰지만, 일상에선 그냥 ‘전’을 빼고 ‘○○ 국장님’이라고 부른다. 10년 전에 국회의원을 하고 이후 계속 낙선한 사람도 우리는 ‘의원님’이라고 부른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호칭을 통해 관계 맺기가 이뤄진다.

나를 소개할 때는 겸양의 미덕을 갖춰야 한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할 때, 학창시절 수업을 들었던 선생님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큰소리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 박진영 아나운서입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분은 “뭐라구요? 어떻게 박진영 아나운서라고 말할 수 있어요? 내가 친구인가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선배에게 상황을 얘기하고 설명을 듣고서야 내 호칭이 문제였음을 알았다. ‘박진영 아나운서’가 아니라 ‘아나운서 박진영’이라고 소개해야 했던 것이다. 내가 나를 높인 꼴이었다.

제3자에게 내가 누군가를 소개할 때도 호칭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 언어 예절’은 “직함을 이름 뒤에 넣어 말하면 높이는 것이 된다”고 설명한다. 자신을 소개할 때 ‘직함’ 뒤에 ‘이름’을 쓰는 방식으로 자신을 낮추어 말하는 것이 예절이다. 어느 회사의 부장이라면, “저는 ○○ 부장을 맡고 있는 아무개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게 예의다.

요즘에는 성 뒤에 직함을 붙이지 않고 이름 뒤에 직함을 붙이는 사례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진영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박 선배’라고 하지 않고, 이름에 ‘선배’를 붙여 부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이 같은 직급의 상사를 구분할 수도 있다. 김 팀장님이라고 부르면 여러 사람이 돌아볼 수 있어서 이름에 직급을 부르고 있다는 어느 직원의 말도 일리가 있다.

간단하게 비교해 보자. 회사 대표를 불러보는 것이다. 민식 대표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최민식 대표님이나 최 대표님으로 부르는 게 예의다. 대통령도 국민을 향해서는 ‘○○○ 대통령입니다’가 아니라 ‘대통령 ○○○입니다’라고 하는 게 옳다. 이처럼 호칭이 적절하지 않으면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거부할 수 있는 것이어서 잘 알아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요즘 권위적인 호칭을 파괴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외국계 기업 등에서 시작돼 국내 기업에도 퍼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직원간 수평 호칭을 도입해,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고 있는데, 이번에 경영진과 임원까지 수평 호칭 범위를 확대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사장님이나 상무님이 아니라, 영어 이름이나 이니셜, 또는 한글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른다고 한다. 이재용 회장도 ‘재용님’이나 영문 이름 ‘제이’, 또는 이니셜 제이와이(JY)로 부르는 것이다. 상명하복식 관료주의 문화보다는 수평적 의사소통 문화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보기에 선택한 결정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호칭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문화는 변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런 호칭법도 무리 없이 공존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호칭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표현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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