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매도 벼랑 끝에서 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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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 벼랑 끝에서 나를 보다
작년 가을 남쪽 바다 관매도에 갔더랬습니다. 몇 시간만 걸으면 마을들을 다 둘러 볼 정도로 작은 섬이었습니다. 사는 이들도 얼마 안 되었습니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산에 올랐습니다. 능선에서 바라본 섬 남쪽은 무수한 물결들이 하염없이 몰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벼랑들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벼랑과 파도.
조선시대 함허 스님의 금강경 해설 한 대목 풍광이 거기 그대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금강경 가르침을 한마디로 줄이면 ‘무상(無相)’입니다. 세상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그런 것이 정말로 확고하게 실체로 존재하는 양 여기지 말라. 상(相)을 가지지 말라.
‘나’라는 상, ‘너’라는 상,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는 상, 내가 깨달았다는 상, 내가 보시를 베푼다는 상... 상(相)을 내지 말라.
함허는 이 무상의 반야지혜(般若智慧)를, 어디 손잡을 곳을 허용하지 않는 가파른 수미산 벼랑 꼭대기와 수없이 해안에 몰려와 부서지는 파도에 비유했습니다.
“須彌頂上(수미정상) 외외묘난반(嵬嵬杳難攀); 수미산 꼭대기 가파르고 아득하여 부여잡고 오르기 힘들어라”
“大海波心(대해파심) 浩浩沒涯岸(호호몰애안); 너른 바다 파도 구비구비 끝없이 물가에 몰려와 스러지고”
스님이 이 남쪽 섬에 오셨더랬나?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스님은 벼랑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무상(無相)’의 반야지혜를 떠올렸고, 그 후 몇백년이 지나 시인은 무인도에서 화장도 해탈도 없이 햇빛과 바람에 살을 말리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나 나는 머나먼 남쪽 섬 관매도 산 정상에서 스님의 ‘무상’과 시인의 ‘풍장’을 떠올립니다.
그러고 보면 저 옛날 스님이나 엊그제 시인이나 지금 나나 다 같은 바다로 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 시간을 달리해 잠시 일어난 물결이요, 저 벼랑에 부딪쳐 하얗게 포말이 되어 또 같은 바다로 돌아갑니다. ‘같은 바다.’
작년 가을 관매도에서는 바다 멀리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그 사이로 깊은 바다 속에 잠긴 세월호를 꺼내려는 해상 크레인의 육중한 기둥이 어렴풋이 보였더랬습니다.
그리고 올 봄. 곡절 끝에 육지로 끌려올라온 배 객실에서 옷에 쌓인 백골이, 복도에서 어금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함허가 돌아간,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시인과 내가 돌아갈, 저‘같은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바다로부터 잠시 일어난 물결로 바닷가 벼랑을 향하여 일렁이며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저 아이들을 죽게 만든 책임도 물어야 할 게고 돈이면 만사형통이라는 우리 사고방식과 자본주의 체계도 바꾸어 나아가야 할 터입니다. 하지만 왜 이런 끔찍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언제나 늘,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타고르 시인은 ‘바닷가에서’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더군요.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여듭니다. 폭풍우는 길 없는 하늘을 헤매고, 배는 길 없는 바다에 난파하여 죽음이 넘치는데 아이들이 장난을 합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의 크나큰 모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100년 뒤에나 바닷가에 가면 늘 아이들이 뛰어다닙니다. 마치 바다에 늘 파도가 일렁이듯이 말입니다.
벼랑으로 몰려드는 파도를 보던 스님이 바로 시인이고 또 나입니다.
그러니 바다에서 잠시 인 물결이 ‘내가 나다’하는 상을 내지 말고, 그저 ‘바다에서 잠시 일어나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거다’라 여기면, 저 백골로 돌아온 세월호 아이들이 좀 덜 가여울까요?
<공동선> 발행인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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