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500년 역사 중 청백리는 단 218명에 불과할 정도로 조선시대는 부정부패가 심했다.
‘청백리’는 조선시대 청렴하고 강직한 신하를 뜻합니다. 의정부 및 사헌부, 사간원 등의 추천을 받아 임금의 결재를 받아 내리는 칭호입니다. 청백리는 후손들에게 벼슬을 할 수 있는 특전을 줄 만큼 명예롭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공무원에게 주는 상의 이름을 ‘청백리상’이라고 할 정도로 그 의미를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청백리로 인정받은 사람은 단 218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조정에 청백리의 자손을 등용하라는 명은 있으나, 오직 뇌물을 쓰는 자들이 벼슬을 하고 청백리 자손들은 모두 초야에서 굶주려 죽고 만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왜 조선시대에는 청백리가 그토록 적었고, 뇌물과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 많았을까요?
‘월급을 받지 않았던 조선시대 공무원’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관청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하급관리를 ‘아전’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공무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엄밀히 따지면 정식 공무원보다는 대를 이어 지방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명예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앙관청에서 일하는 이들을 가리켜 ‘경아전’, 지방관아는 ‘외아전’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세금 징수나 지방의 잡무, 수령의 둔전을 관리하는 업무 등을 맡았습니다.
▲ 황구첨정, 백골징포 등의 폐단이 조선 시대에 만연했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군포나 공납의 폐단을 없애려고 했지만,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오늘의조선왕조실록 유튜브 화면 캡처
조선시대 지방행정이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유 중의 하나가 아전입니다. 왜냐하면, 아전에게는 월급이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아전’은 원래 녹봉이 지급됐지만, 나라에서 지급하지 않거나 생활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습니다. 지방 아전은 아예 월급 자체가 없었고, 오히려 관아에서 쓰는 비용 등을 자신의 돈으로 채워야 할 때가 잦았습니다. 고정적인 급여가 없다 보니, 아전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부정부패와 비리를 통해 모자란 급여를 대신했습니다.
아전의 비리가 제일 심한 것이 ‘세금 착복’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세금은 ‘군포’와 ‘공납’이 대표적입니다.
군대에 가야 하는 장정이 농사 등의 생계를 위해 일 년에 베 2필을 내면 ‘군역’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전들은 성인이 되지 않은 어린이에게 군역을 물리는 ‘황구첨정’,이미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둔갑해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 군역을 피해 도망간 사람의 군포를 이웃이나 친척과 이웃에게 물리는 ‘족징’과 ‘인징’을 통해 세금을 착복했습니다.
공납은 원래 세금을 지방 특산물로 내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수확한 농산물이나 특산물 대신에 방납업자의 물건을 구입해 내도록 했습니다. 당연히 아전들은 상인과 짜고 시가보다 수십 배 비싼 물건을 사도록 했습니다. 당연히 아전은 상인으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겼습니다.
조선시대 세금을 거둬들이는 행정 실무를 맡은 아전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각종 세금을 착복하면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조정의 재정은 약해졌습니다.
‘양반까지 무시했던 아전의 권력’
▲조선시대 고을 관아의 모습. 수령과 아전이 서 있고 백성이 앉아 있다 ⓒ구글이미지
근래 아전의 풍속이 나날이 변하여 하찮은 아전이 길에서 만나도 절을 하지 않으려 한다. 아전의 아들, 손자로서 아전의 역을 맡지 않은 자가 고을 안의 양반을 대할 때 맞먹듯이 너나하며 자(字)를 부른다. (정약용, 목민심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보면 아전이 얼마나 위세가 높았는지, 중인 계급임에도 양반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전이 이토록 권력을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역 사정과 실무에 밝아 수령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령이 아전을 무시하면 태업이나 파업 등으로 수령을 골탕 먹이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지방 관아로 내려오는 수령은 지방 사정을 잘 몰라 아전에게 실무를 맡겼습니다. 아전들은 수령에게 뇌물을 바치고 뒤로 더 많은 세금을 빼돌려 자신들의 곳간을 채우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수령은 임기를 떠나면 그만이니, 백성들은 직접 세금을 징수하는 아전을 더 무서워했습니다.
요새도 공무원 사회에서 선출직 시장이나 도지사는 선거 때면 사라져도, 공무원은 평생 그 자리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담당 공무원의 입김에 따라 인허가 업무가 지연되느냐 마느냐를 놓고 본다면, 시민 입장에서는 시장보다는 오히려 말단 공무원이 더 껄끄럽습니다.
‘더 강력해진 박원순표 공직쇄신안, 부정부패 뿌리 뽑을 수 있을까?’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시 공무원 부정비리 차단 종합대책 ⓒ라이브서울 화면 캡처
지난 7월 19일 서울시는 ‘부정비리 차단 6대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동일 인‧허가 업무 5년 이상 담당 공무원의 전보 의무화로 부정부패를 사전 차단하는 등의 공직쇄신안을 담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차단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있습니다. ‘박원순법’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최근에 버스업체의 노선 신설 조정과 증차 등과 관련해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전‧현직 공무원이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박원순법 (서울시 공무원 행동강령): 서울시 공무원이 직무와 관계없이 단 돈 천 원만 받아도 중징계, 한 번만 걸려도 ‘원 스트라이크 아웃된다. 고위공직자와 가족 보유 재산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지도 심사받는다.
과거보다 현저히 줄었지만, ‘김영란법’보다 더 강하다는 ‘박원순법’이 있음에도 서울시 공무원들의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 업무를 맡았던 퇴직공무원이 현직 공무원에게 뇌물과 압력 등을 통해 비리를 저지르는 사례도 발생했습니다.
서울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직 공무원이 퇴직 공무원과 골프, 사행성 오락, 여행, 행사 등의 사적 접촉을 제한하고, 만약 만났다면 서면보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박원순법’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근절하려고 노력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아전처럼 실무에 밝은 공무원들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무원들이 비리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이중,삼중의 감사 시스템을 구성하는 일입니다.
다행히 서울시는 이번에 안전, 토목, 소방, 수도 등 기술 감사 분야 전문가 21명으로 구성된 ‘시민감사자문단’과 시민들의 제보와 제안을 받을 수 있는 ‘시민 감사요청란’을 홈페이지에 개설할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지금은 조선시대 아전처럼 비리를 저지르는 공무원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퇴근하라고 해도 퇴근하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공무원도 많습니다.
문제는 소수의 비리 공무원 때문에 대다수 공무원이 더 힘들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을 놓고 본다면 비리 공무원은 더 철저하게 처벌하고,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에게는 진급 등의 혜택을 줘야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아전들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방안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이 부정부패를 발견하면 신고할 수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불법 민원이나 단순 불평불만이 아니라 서울시민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감시 활동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서울시도 이번 기회를 통해 법과 시스템을 한층 강화해 부정부패를 원천 차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고발뉴스 브리핑] 6.27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특조위 강제종료 저지’ 농성 세월호 유가족 등 4명 연행 류효상 특파원 | balnews21@gmail.com 1. 새누리당 친박계 일부 의원들이 당 대표 권한을 강화하는 단일 지도체제를 무효화 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친박계의 이런 움직임은 당 대표-최고위원 분리 선출 시 당권도 잡지 못하고, 비박계에 최고위원의 상당수를 내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친박의 수명이 다해가는 모양이네... 어쩌냐 이도저도 안 돼서~ 2. 더민주당이 공천 과정에서 서영교 의원의 가족 보좌진 문제 등을 알고도 공천을 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더민주당 관계자는 서 의원 문제가 위법이냐 도덕적 문제냐의 경계선상에 있었고, 본인 소명을 듣고 난 뒤 공천이 최종 결정됐다고 밝혔습니다. 도덕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하지 않았었나? 이렇게 앞뒤가 안 맞아서야~ ▲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지난 23일 딸 인턴채용 논란과 논문표절 의혹, 친오빠를 회계책임자로 임명해 인건비를 지급했다는 등의 추가 의혹이 거듭 제기된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서 의원 사무실에 적막감이 돌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3. 국민의당이 ‘누구도 옹호하지 않겠다’고 불관용 원칙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이미 가속도가 붙은 검찰 수사에 속수무책인 형국입니다.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박선숙 의원의 소환 조사까지 임박하자 국민의당은 거듭 고개를 숙였습니다. 말로만 새정치, 새정치 하다가는 진짜 새되는 수가 있다는 거... 알랑가 몰라~ 4.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농성을 하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경찰과 충돌을 빚다가 연행됐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416연대는 세월호 조사특위 종료 반대 등 세월호 특별법 개정 등을 요구하며 이곳에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2년이 훌쩍 지났는데 변한 ...
[e사람] '21세기 대한민국 국부론' 펴낸 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의 고언 16.06.17 20:27 l 최종 업데이트 16.06.17 20:27 l 글: 김종철(jcstar21) 편집: 장지혜(jjh9407) ▲ 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그가 또 화두를 꺼내 들었다. '국부론'이다. 그것도 21세기의 '대한민국 국부론'이다. 고전경제학자 애덤스미스는 자신의 책 '국부론'에서 '정치경제학'을 내세우며, "국민과 국가 모두를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 그의 고민도 여기에 맞닿아 있었다. 최근에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나 그와 다시 소주잔을 기울였다.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사실 그와 마주 앉기가 쉽지 않았다. 몇해 째 전국을 다니며 '독일 전도사'로 강연을 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 초에 '광주세계웹콘텐츠페스티벌' 추진위원장까지 맡았다. 오는 23일부터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이번 페스티벌은 세계에서 처음 열리는 행사다. 인터넷상의 다양한 '웹 콘텐츠'는 이미 청소년과 젊은층 사이에 폭발적인 관심거리다. '양띵', '도띠' 등으로 일컬어지는 유명 1인미디어 크리에이터와 관련 콘텐츠 등은 정보통신업계에서 가장 핫한 산업으로 떠오를 정도다. 그가 이런 최신 산업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티케이(TK, 대구 경북)출신인 그는 스스로 '전형적인 보수 우파'라고 말한다. <중앙일보>에서 미디어전문기자로 오래 활동한 그였다. 이른바 잘 나가는 <조중동>기자였다. 전형적인TK와 보수언론 출신 그가 '광주'에서 첨단산업 페스티벌을 주관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웃으면서 '혹시 그쪽(광주)에서 일하기 껄끄럽지는 않았나...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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