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떠나실 때 강보에 쌓여 울던 어린자식 머리에 하얀서리 내리고 골령골 긴 무덤에 봄이오면 붉은 피로 얼룩진 이 산하 골짜기에 쓰러져 가신 칠천 원혼들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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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8주기 19차 대전 산내 학살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6월 27일 산내 골령골에서 진행되었다. 한 유족이 희생된 아버지의 위패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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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8주기 19차 대전 산내 학살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6월 27일 산내 골령골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위령제에는 대전 인근 뿐아니라 제주, 여수, 순천, 서울 등 각지에서 온 유족과 타지역 유족회 관계자, 대전의 시민사회와 자치단체 관계자, 정치권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제68주기 19차 대전 산내 학살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낭송된 전숙자 시인의 시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에 봄이 오면’은 이 같은 시구로 시작된다. 전숙자 시인은 3살 때 아버지를 잃은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회원이다.
그의 아버지 전재흥 씨는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되어 1951년 3월 4일 산내 골령골에서 죽임을 당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대전형무소 재소자를 비롯해 보도연맹원 등 7천여 명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6일 사이에 집단학살이 자행되었고, 9.28 수복 이후에도 부역 혐의를 받은 이들이 51년 초까지 학살이 지속된 한(恨)이 서려 있는 아픔의 현장이다.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합동위령제가 27일 오전 11시, 산내골령골 임시추모공원(대전 동구 낭월동 산 13-1번지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위령제에 앞서 진행된 추모식에서 유족인사에 나선 김종현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아직도 산내 골짜기 어딘가에서 유해가 나뒹굴고 있다”며, “하루속히 발굴하여 편히 모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6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합동 추모공원이 이곳으로 유치 결정되어 지금 진행 중에 있다”며, “시청과 구청에서는 더욱 노력하시어 우리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시고 역사와 인권을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김종현 회장은 “옳지 않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은 명백히 밝히는 것”이라면서, “그렇게 하기 위해 아직 못다 한 조사와 유해발굴, 위령시설 설치 등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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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병현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회장이 합동위령제에 참석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추도사에 나선 강병현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회장은 “졸지에 지아비를 잃은 어머님은 살길이 막막하여 밤마다 눈물로 지새웠고, 아버지를 잃은 우리도 ‘빨갱이 자식’이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평생을 고통과 피눈물로 살아 왔다”며, “그 아픔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냐?”며 추도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어 다시는 이 땅에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것은 정부의 몫이고, 우리 사회의 몫이고 그리고 여기 모인 우리 유족 모두의 몫이자 책무”라고 덧붙였다.
강병헌 회장은 “지금 국회 행안위에 계류 중인 특별법을 여와 야를 넘어서고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인권의 문제로 해결해 주실 것을 이 자리를 통해 정치권을 향해 간절히 촉구하는 바”라고 강고히 말했다.
이재관 대전광역시장 권한대행도 “유족회에서 오랜 기간 노력해 주신 덕분에 이 사건이 재조명되고, 지원에 대한 제도적 근거가 마련될 수 있었다”며, “잘못된 과거사는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재관 권한대행은 이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겠지만, 진실이 밝혀지고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우리 시에서도 지속적으로 돕겠다”고 말하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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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호 대전동구청장 당선자도 위령제에 참석해 산내 골령골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의 관심과 향후 의지를 밝히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황인호 대전동구청장 당선자도 위령제에 참석해 “산내 골령골에 들어설 추모공원은 을씨년스러워 찾지 않는 공원이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품공원으로 만들 수 있도록 관할지역 구청장으로서 관심을 갖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산내 골령골 일대는 2016년 8월 정부에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전국 추모공원’ 조성부지로 선정해 약 3만평 부지에 추모관과 봉안관, 교육 전시관, 상징조형물, 공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추모공원 조성을 위해 올해는 예산 15억 원을 확보해 설계 작업에 착수했고, 지금의 속도대로라면 2021년경 추모공원이 완성될 예정이다.
제주에서 온 유족들도 추도의 마음에 동참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양윤경 회장은 “골령골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유해발굴 및 수습은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며,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추모공원 조성사업은 더욱더 확대시켜 진정한 평화와 인권교육의 장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양윤경 회장은 “그날의 참상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선행되어야만 하며 공권력의 책임성 있는 공식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과거사 청산의 필수 요소들을 단계적으로 수행해 나가야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윤경 회장의 추도사를 대독한 양성홍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업부회장(전 제주4.3희생자유족회 대전위원회 위원장)은 “3살 때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불러 보지 못했다”며, “위령제에서라도 ‘아버지’를 불러 보고 싶다”며, ‘아버지’를 목놓아 불렀다.
4.3항쟁으로 죽지 않고 잡힌 사람들 중 2,530명은 불법 계엄 군사재판으로 무기와 20년 이상은 마포와 서대문형무소, 15년은 대구형무소, 7년형 대전형무소, 여성은 전주형무소, 미성년자는 인천형무소 등 전국 14곳의 형무소로 분산되어 수감되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들 대부분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들은 ‘행방불명인’으로 구분되고 있으나, ‘학살당한 후에도 유해를 찾지 못한’ 더 가슴 아픈 사연의 희생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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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희생자유족회 대전위원회 소속 유족들은 위령제 하루 전날인 26일, 산내 골령골을 찾아 제주도 식으로 별도의 위령제를 가졌다. |
산내 골령골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300여명의 희생자 유족들은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에 매년 참가하고 있고, 합동위령제 전에 제주도 식으로 위령제를 지내곤 한다. 올해는 40명의 유족들이 위령제 하루 전날인 6월 26일 대전에 도착해 산내 골령골을 찾아와 제주도 식으로 위령제를 지냈다.
이대식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도 “억울하게 희생되셨던 원혼들의 한과 지울 수 없는 현대사의 슬픔을 가슴에 새긴 채 살아오셨던 유가족분들의 한 많은 눈물이 이제 평화의 강물, 통일의 강물이 되고 있다”고 추도의 말을 시작했다.
이대식 대표는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남과 북, 북과 미국이 남북정상회담으로 북미정상회담으로 만나 평화와 화해와 번영을 말하고 있다”며, “이제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격랑을 이루며 흘러가는 평화와 통일의 강물이 여기 산내 골령골에도 세차게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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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비예술단 전연순 단장이 전통 산조춤 ‘회상’을 공연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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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산내학살사건 희생 위령기도’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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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불교 대전충남교구에서 ‘산내학살사건 희생영가 특별천도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추모제가 끝난 후에는 합동위령제로 이어졌다. 위령제는 금비예술단 전연순 단장의 전통 산조춤 ‘회상’으로 희생자들의 혼을 달래며 시작되었다.
유족들이 헌작을 하기 전에 종교제례가 진행되었는데, 종교제례에는 원불교 대전충남교구에서 ‘산내학살사건 희생영가 특별천도제’를, 천주교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는 ‘산내학살사건 희생 위령기도’를 진행했다.
종교제례 후에 유족들의 헌작이 진행되었다. 헌작(제사 때에 술잔을 올리는 것)은 초헌(첫 잔을 드리는 것), 독축(축문 읽는 것), 아헌(2번째 잔을 올리는 것), 종헌(3번째 잔을 올리는 것) 순으로 헌작이 이어졌다.
위령제에서는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회원들의 시가 낭송되기도 했다. 유족들의 시는 매년 위령제에서 낭송되었는데, 올해에는 신순란 회원이 ‘골령골아’라는 제목의 시를, 전숙자 회원이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에 봄이 오면’이란 제목의 시를 써와 낭송했다. 시 낭송을 들은 참석자들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위령제를 마친 이들은 함께 헌화를 하며 합동위령제를 마쳤다.
이번 합동위령제는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 대전위원회,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대책위원회가 주관했고, 대전광역시, 대전동구청,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가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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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족들이 위령제에서 헌작을 하고 있다. 초헌은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김종현 회장이, 독축은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이계성 이사가, 아헌은 제주4.3희생자유족회 대전위원회 김명훈 위원장이, 종헌은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남지회 김운택 지회장이 맡아 헌작을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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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회원인 전숙자 시인이 추도시를 낭송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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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숙자 시인의 시 낭송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양성홍 전 제주4.3희생자유족회 대전위원회 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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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회장이 피켓을 들고나와 배재대학교 이승만 동상 철거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이날 추모제에서는 마당극단 ‘좋다’가 추모극을 공연했고,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에서도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와 ‘노래여 날아가라’를 부르며, 추모의 마음을 표했다.
대전작가회의에서는 위령제 행사장 주변에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학살 추모 전국문인 시화전’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위령제가 끝나기 직전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김종현 회장은 피켓을 들고 나와 배재대학교 이승만 동상 철거를 촉구하기도 했다. 김종현 회장은 “이승만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학살의 책임자로, 유족에게 있어서는 원흉”이라며, “이승만 동상은 반드시 철거 되야 한다”며, 이승만 동상 철거에 함께 동참해 줄 것을 위령제 참석자들에게 촉구했다.
이날 위령제에 참석한 김창관 대전 서구의원 당선자(현 서구의회 운영위원장)는 “그동안 관심은 있었지만, 위령제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정치권이나 시민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창관 의원은 “젊은 지성인들이 있는 대학 캠퍼스에 이승만 동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시대의 기류에 맞지 않고,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이라며, “(배재대학교가)서구에 있다 보니 임기가 시작되면 의회 차원의 철거 건의안을 내 볼 계획”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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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령제에서 마당극단 ‘좋다’가 추모극을 공연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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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이 노래공연을 하며 추모의 마음을 표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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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령제 참석자들이 임시유해안치소 벽면에 걸려 있는 산내 민간인 학살 관련 사진들을 보며 당시 학살의 처참함에 분노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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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버지 이름이 여기 있네.” 순천에서 온 채성묵(73) 씨가 위패에서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찾고 있다. 채성묵 씨의 아버지 채금동(蔡金童)은 여순사건 이후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명목으로 끌려가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 학살당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수정, 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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