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하나 잡았다고 끝난 게 아니다


김희진·이보라 기자 hjin@kyunghyang.com
입력 : 2020.03.24 06:00 수정 : 2020.03.24 06:02

텔레그램서 활동하던 피의자들, 플랫폼 옮겨 또 다른 ‘n번방’
표현의 자유·IT 장려 명분에 피해자 보호 ‘뒷전’·범죄 방관
체계적 대응 시스템 필요…“영상 소지·유포 협박도 처벌을”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영상을 유포한 ‘박사’ 조모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영상을 유포한 ‘박사’ 조모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박사’ 조모씨가 구속되고 경찰 수사가 확대되자 ‘제2의 텔레그램’이 등장했다. ‘n번방’ ‘박사방’ 등에서 활동하던 피의자들은 또 다른 온라인 메신저 ‘디스코드(DISCORD)’로 이동했다.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플랫폼만 바꿔가며 범죄를 이어왔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할 체계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박사’는 언제든 또 다른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박사’ 조씨 검거 이후에도 성착취 불법촬영물이 활개친다. 23일 텔레그램을 보면 여전히 수많은 파생방이 남아 있다. ‘대피소’란 이름의 채팅방엔 7000여명이 모여 피해자 실명을 거론하며 농담을 하고, ‘야동방’ 링크를 요구한다. 관전자들은 “영상을 돈 주고 사지 않았으면 안전하다”고 말한다. 조씨 검거 보도 이후 성인사이트에는 “ㅂㅅㅂ(박사방), n번방 풀팩(풀패키지) 받고 싶습니다” 등 게시글이 다수 올라왔다. 
이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법과 제도가 미흡한 틈을 타 더 악랄해지고 치밀해졌다. 1990~2000년대 초반에는 성매매 유흥업소 후기를 공유하는 ‘밤문화 기행’ 사이트가 있었다. 2000년대 초 나온 불법촬영물 사이트 소라넷의 회원 수는 100만명을 넘었다. 2016년 소라넷이 폐지되자 불법촬영물은 ‘웹하드’에 올라왔다. 2018년 웹하드 카르텔 수사가 시작되자 다시 도피한 이들은 온라인 사이트 ‘텀블러’와 ‘다크웹’을 거쳐 텔레그램에 자리 잡았다.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은 신원을 숨기기에 적합하다. 
여성단체는 그동안 수차례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과 법령 도입을 요구해왔다. 그때마다 ‘표현의 자유’와 ‘IT 개발 장려’라는 명분에 아동·청소년 등 피해자의 인권과 안전이 뒷전으로 밀렸다고 했다. 이용자 수가 이익과 직결되는 플랫폼은 범죄를 방관했다. 그사이 피해자가 늘어나고, 온라인 다운로드·스트리밍을 거치며 피해 정도도 심각해졌다.
‘박사’ 하나 잡았다고 끝난 게 아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과거 소라넷 내 디지털 성범죄를 신고할 때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직접 신고하지 않으면 고발 자체를 안 받아줬다”며 “성범죄자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최소한 아동·청소년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방어막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가 늘어날 때까지 그냥 내버려둔 것”이라고 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n번방 사건이 등장하기 전까지 유사한 범죄가 수도 없이 발생했다”며 “‘성착취’의 법적인 개념을 정의하고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기준 등 입법을 논했어야 할 시기를 다 지나쳐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의 디지털 성범죄자를 추적해 오프라인 현실에서 검거한 후 제대로 된 처벌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단체는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이 모니터링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를 단속하지만, 해당 사용자의 온라인 계정을 차단하는 정도에서 끝난다고 했다. 조 대표는 “‘박사’ 하나 잡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박사는 계속 있어왔고 처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또 나올 것”이라며 “디지털 성범죄가 진화하는 것처럼 방어하는 체계도 같이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대체로 여성이고 피해 정도가 매우 심각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사법기관과 국회가 디지털 성범죄를 소수의 문제로 여겼다”고 말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상담센터 대표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뿐만 아니라 불법촬영 피해물도 소지만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유포 협박’도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240600045&code=940301#csidxa5d975c167ae1a2ab1ccc655a0fe1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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