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은 통일운동가” 서상호 선생 추모의 밤 열려
- 获取链接
- X
- 电子邮件
- 其他应用
통일애국인사 서상호 국민주권연대 고문(아래 고인)이 지난 10일 타계하고 다음날인 11일, 오후 5시 10분께 ‘추모의 밤’이 열렸다. 추모의 밤은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동두천시 예드림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정종성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상임대표는 “오늘 윤한탁 선생님 49재도 있었는데, 선생님들이 이렇게 저희들 곁을 떠나신 게 참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라면서 “우리들은 서상호 선생님의 뜻을 이어서 기어이 자주·민주·통일 세상을 안아올 마음으로 오늘 추모식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추모의 밤 시작에 앞서 참가자 80여 명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고인을 떠나보내는 묵념을 했다. 추모의 밤에는 고인과 함께 활동해왔던 통일 원로 김영옥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고문, 국민주권연대 고문인 권오창·홍갑표·이건 선생,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도 함께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김성일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 집행위원장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선생님은 20대 청년 시절부터 민주화와 자주·통일 실현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헌신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투쟁하는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라면서 “선생님은 애석하게 눈을 감으셨지만 후배들이 선생님의 뜻을 이어 통일조국을 앞당기기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남영아 국민주권연대 운영위원장은 추모사 「통일애국인사 서상호 선생님을 떠나보내며」를 통해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항상 투쟁의 현장을 찾으셨고 변화하는 정세에 앞서 나가기 위해 연구와 교양도 쉬지 않으셨던 서상호 선생님께서는 구순이 되는 올해 병석에 누우시고 끝내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라면서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후배들이 힘차게 투쟁하는 소식에 기뻐하시며 힘과 용기를 주시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라고 전했다.
남 위원장은 “선생님께서 바라시던 자주와 통일,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이제 마지막 고개를 넘어 눈앞에 펼쳐지려 할 때 조금만 더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라며 “저희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국민이 주인 되는 새 세상을 하루빨리 안아 와서 선생님 영전에 바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는 고인이 살아생전 후배인 자신한테도 항상 따뜻하고 친절했다며 고인을 20여 년 동안 지켜본 소감을 전했다.
권 대표는 “후배가 선배를 뛰어넘어야 하고 제자는 스승을 뛰어넘어야 하고 자식은 부모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뛰어넘지 못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면서 “산자들이 가장 부끄러운 자리는 망자들 앞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상호 선생님도 그렇고 윤한탁 선생님도 그렇고 주변에서 떠나가신 선생님들에게는 분단시대를 살면서 얄팍한 손익계산을 하지 않고 부지런히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라면서 “다시 한번 여러분이 선생님의 삶을 생각도 하고 투쟁하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혼자가 아니고 우리라는 큰 틀을 바라보셨으면 합니다”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은 고인이 살아생전 ‘통합’을 당부했다며 추모사를 이어갔다.
한 처장은 “우리는 이런 중차대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윤석열을 퇴진시키기 위해 다함께 뭉쳐야 합니다. 다 같이 통합하고 차이를 뛰어넘어야 합니다”라면서 “서상호 선생님이 후배들을 위해 상당히 많은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투쟁을 통해서 선생님이 가신 자주·민주·통일의 그 길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라고 발언했다.
이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과 함께 고인이 가족들, 동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황선 시인이 지은 추모시 「행복」이 낭독됐다.
“나는 통일을 보았습니다. 나의 직업은 ‘통일운동가’ 통일을 일군다는 것은 통일을 산다는 것. 일생 통일을 믿은 나는 여한이 없습니다.”(시 「행복」의 일부)
권오혁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개인명의 추모사를 통해 고인과의 ‘25년 인연’을 추억했다. 권 공동대표에 따르면 고인은 우리 민족의 통일을 끝까지 확신했고, 늘 사색하고 조국의 미래를 고민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다.
권 공동대표는 “선생님은 최근까지 몸이 아프셔서 촛불집회를 와보시지는 못하셨지만 늘 촛불을 지켜보며 응원하셨습니다”라면서 “사랑하는 서상호 선생님, 후대들이 가야 할 길을 먼저 걸으신 선생님의 삶의 자취, 역사의 길을 따라 더욱 성실하게 투쟁하겠습니다. 언제나 후배들의 투쟁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승리의 그 날을 함께 맞이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조두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연대사업위원장은 “한반도의 허리가 끊어진지 70여 년이 됐지만 지금까지도 접경지역인 포천에서는 같은 민족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게 하고 민족을 갈라놓은 미군이 훈련을 벌이고 있습니다”라면서 “대학생들은 지금 훈련이 진행되는 훈련장 바로 곁에서 농성투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승리를 확신하시며 실천하신 선생님의 뜻을 이어 대학생들이 투쟁하겠습니다. 선생님이 바라시던 자주·민주·통일 세상을 반드시 안아오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인생을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사셨던 선생님의 뜻을 여기에 있는 많은 동지들이 꽃을 피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서 더 열심히 국민을 위해서 자주·민주·통일을 최대한 빨리 앞당기겠습니다.“
추모 공연을 이어간 노래패 우리나라는 이같이 강조하면서 노래 「이 나무와 함께」를 불렀다. 우리나라가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 정상의 기념식수를 보며 만든 노래다.
유가족을 대표해 고인의 부인 박영숙 여사는 “정말 고맙습니다. 제 남편 서상호는 한평생 깨끗하게 사신 것 같습니다”라면서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인의) 가시는 길이 꽃길”이라고 말하며 울음을 삼켰다.
이 말에 장내도 울음바다가 됐다.
“부고 소식을 들으면서 통일애국이라는 네 글자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통일애국은 선생님의 한생이셨고 그리고 저희들이 가지고 가야 할 신념이기도 합니다. 통일과 애국을 위해서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운명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시려는 마음으로 한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사회자가 이렇게 말하며 고인이 살아온 삶을 따라가자고 당부하면서 추모의 밤이 마무리됐다.
아래는 국민주권연대 추모사와 황선 시인의 시 전문이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获取链接
- X
- 电子邮件
- 其他应用
评论
发表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