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민주 국가에서 ‘독재’를 말하고 ‘퇴진’을 부르짖는 아이러니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노동개악·노조파괴 분쇄! 윤석열 정권 퇴진! 금속노조 총파업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5.31 ⓒ민중의소리

요즘 거리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 “검찰 독재 정권”, “윤석열 정권 퇴진하라”,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는 시민들의 외침이다.

얼마 전 필자와 대화를 나눈 한 정부 인사는 최근 건설노동자의 분신 사망 이후 확산되고 있는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을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을 겨냥해 ‘독재’라고 칭하고, ‘퇴진’을 부르짖는다는 게 맞는가? 투표로 탄생한 정권에 ‘독재’라는 딱지를 붙이고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건 어떻게 보면 반헌법적이지 않은가?”

충격적인 언사였다. 그는 확인되지도 않은(보수진영에서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의 도덕적 결함, 건설노조의 반정부 시위 행태를 열거하며, “민주주의 국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여전히 정치 권력과 대립하며 탄압받는 민중들이 있다는 것도 현실이다.

투표로 정권이 탄생했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인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건 아니다. 통치 과정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지도자는 민중들에 의해 끌어내려질 수도 있다. ‘독재’, ‘퇴진’과 단어를 꼬투리 잡아 민중들의 저항을 폄훼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지금 불고 있는 저항 물결이 뜬금없고 막연한 것일까?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곳곳에서 민주주의 동력을 억제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그중 상당수가 실제 집행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현직 검사였던 사람이 대통령이 된 뒤에 벌어진 검찰 수사권 조정 복원 작업으로 막강한 검찰 권력을 분산시키고자 했던 시민 권력의 수십 년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일부터, 정적들을 겨냥한 전방위적인 수사,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활동의 정당성을 무력화시키는 각종 음해 공작,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공격 등이 그렇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 노조법 2조3조 개정 등을 촉구하는 1박 2일 노숙투쟁 집회를 하자 경찰이 강제 해산 시키고 있다. 2023.05.25. ⓒ뉴시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당성이 취약한 정치 권력일수록 민중들의 목소리를 무자비하게 억눌렀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원리다. 민중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아야 정권의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을 몽둥이로 두들겨 패거나 감옥에 넣고 고문하며 눈·귀·입을 막았고, 때로는 특정 정당이나 세력을 간첩이나 빨갱이로 몰아 궤멸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군부독재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독재 시절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정치 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 역시 그러했다.

‘독재’니 ‘퇴진’이니 하는 말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정신 나간 사람들이 읊어대는 말이 아니다.

민중들은 실제 독재 치하를 겪었던 트라우마가 있기에 언제든 독재의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보통 이런 트라우마는 정치 권력이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민중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극명하게 발현된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도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실정에 저항하는 민중들에 대한 탄압이 무자비하게 자행됐고, 그때마다 “독재 정권 퇴진하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민중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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