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나오셨어요
음식 나오셨어요(존대법2)
- 최태호 교수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10.18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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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백화점에 가서 생선구이를 먹자는 아내의 말에 흔쾌히 달려갔다. 나이 먹을수록 생선을 먹어줘야 한다는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맛있는 것만 골라서 먹었다면 이제는 건강에 좋은 것만 찾아서 먹는다는 것이 과거와 다르다. 당수치도 점차 높아지고, 고혈압이나 고지혈도 있어서 아침에는 계란 두 개만 먹고, 점심은 포식하고, 저녁은 밥 반 그릇만 먹는다. 주말부부의 특권은 함께 있을 때 가능하면 그동안 못 먹었던 것 골라 먹는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걷기 위해 일부러 차를 가지고 가지 않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백화점에는 손님도 무지하게 많다. 콜레라가 백화점에는 없는 모양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겨우 한 자리가 있어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식당 종업원의 말투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법에 맞는 것은 “어서 오세요.”와 “안녕히 가세요.”만 맞는 것 같았다. 어제 점심 시간에 갔던 곳에서도 “음식은 20분 정도 기다리면 나오실 것입니다.”라고 해서 아내와 투덜거렸다. 도대체 누구를 높이는 것인가 모르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웃으면서 넘어가라고 한다. 음식은 사람이 아닌데 높이고, 손님은 기다리라고 하니 뭐를 높여야 하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예전에 “커피 나오셨어요.”라는 말이 잘못됐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존대법을 잘 몰라 ‘커피’에는 높임말을 쓰고 사람에게는 평어를 쓰고 있다. 틀린 줄 알면서도 손님들에게 실수할까 봐 그렇게 표현한다는 핑계도 무색하기만 하다. 음식을 펼쳐 놓고 “음식 나오셨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하고 가버린다. ‘음식’는 사람이 아닌데 ‘나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음식이 맛이 있어야 맛있게 먹는 것이지, 대뜸 맛있게 먹으라면 되는 것인가? 사실 과거에는 어른(손님)에게는 명령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요즘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표현하지만 예전에는 그것도 명령어라 사용하지 못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라고 표현하였다. 음식을 전해 주면서 맛있게 먹으라고 명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식당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는 일상이 돼서 그것이 모두 맞는 표현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 바른 표현은 아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특히 우리말은 외국어에 비해 존대법이 발달해 있어서 외국인들이 학습하기에 어렵다. 밥이라는 단어만 해도 내가 먹으면 ‘밥’이지만, 귀신(제사상)이 먹으면 ‘메’라고 하고, 어른이 드시면 ‘진지’라고 하며, 임금님 상에 오르면 ‘수라’가 된다. 하나의 의미에 많은 단어를 가지고 있으니 외국인들에게는 얼마나 어려울까 상상할 수 있다. 이제는 ‘메’나 ‘수라’라는 말은 쓰지 않지만 대신 ‘식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주로 “식사하세요.”라고는 표현을 많이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에게는 반드시 “진지 잡수세요.”라고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요즘의 아이들은 “아버지 식사하세요.”라고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진지’라는 표현은 찾기 어려워졌다.
언어는 사회성이 있어서 언중들이 두루 사용할 때 언어로서 자격을 지닌다. 언중들이 무시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사어(死語)가 되고, 재미있는 말이라고 두루 사용하면 유행어가 되었다가 표준어로 등재되기도 한다. ‘왕따’라는 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언중들은 ‘왕따돌림’을 줄여서 ‘왕따’라고 했고, 이것이 한때 유행어가 되어 ‘은따(은근히 따돌림)’등의 용어로 확장되기도 하였다. 비표준어로 유행어에 불과했던 것이 언중들이 하도 많이 사용하다 보니 국립국어원에서도 손을 들고 표준어로 등재하기에 이른다. 요즘은 비속어가 과거에 비해 더 많아졌다. 방송에서도 ‘먹방’과 같은 알 수 없는 단어로 도배하였고, 영어와 한국어를 합성한 용어들이 즐비하게 등장하기도 했다. 언어가 국적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특히 한국어의 특징은 존대법에 있는데, 갈수록 틀리게 쓰는 경우가 많아져서 걱정이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한국어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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