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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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어디로 가나
나는 죽어서 어디로 가나
김 형 태 (<공동선>발행인,변호사)
몇 년 전 일입니다. 한 밤중에 술에 잔뜩 취해 집 안 2층 나무계단을 오르다가 우당탕 퉁탕 1층 거실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집에 들어온 것도 계단을 구른 것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거실 바닥에 머리가 부딪히면서 비로소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그때 더 세게 머리를 박았더라면 정말 나 죽는 줄도 모르고 아주 갔겠지요.
‘아주 간다니’누가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요? 어느 새 이순(耳順)을 넘겨 몸은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마음은 날로 소심해져 가는 데, 이‘내’가 이 모습, 이 마음 그대로 지닌 채 ‘다음 세상’으로 가는 건가?
그럼 배가 난파되어 그리스 해안에 시신으로 떠밀려 온 다섯 살 난민 아이는 그 순진한 마음과 다섯 살 앳된 모습으로 천국엘 갔을까. 만일 그 아이가 노인이 되어 죽었다면 노인의 모습으로 다음 생을 누리는 걸까.
그럼 국회의원 노회찬은 수천만원 정치자금 받아 신고 안하고 쓴 걸 괴로워 하다가 죽었으니 지옥엘 갔을까. 아니, 옛날 노동자로 위장취업 했을 때 산재사고로 죽었더라면 청년 노회찬으로 천국에서 살고 있을 건가.
실제로 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직후 아직 의식이 남아있을 동안 그가 듣고 생각이 정화되어 좋은 곳에 갈 수 있도록 열심히 경전을 읽어주고 기도를 하고 여러 의식을 행합니다.
하지만 내가 계단 아래로 꽝 하던 순간을 돌이키면, 당시의 생각, 외모, 성격 등 ‘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죽는 순간의 마음가짐에 따라 천국이나 지옥 같은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 개체‘나’는 죽는 순간 마치 촛불이 꺼지듯 아주 사라지지 싶습니다. 그 뒤는 없이.
기독교 표현으로 하자면 이 세상 모든 개체는 하느님의 피조물일 뿐이니 언감생심 피조물이 영원할 수가 없을 터이고, 불교식으로 말하자면‘나’도, 이승이나 저승이란 생각도 다 공(空)하니 그렇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무렵을 모셨던 신부님의 회고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이런 허무가 있나. 내가 이런 무지의 세계로 가야하나. 그것을 겪을 때는 ‘정말로 하느님 없으신 것 같아. 배반하게 될 것 같아.’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고독해 하시고 힘들어 하시고 신앙적으로 좀 흔들리는 그런 말씀을 하시다가, 그 다음에는 그런 말씀을 안 하시는 거죠. 그냥 기도하시고...”
아마도 이 회고 글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는 이들도 많을 겁니다. 특히 가톨릭 신자들은. 누구보다 하느님을 잘 알고 누구보다도 당신 가까이 가신 분이라고 믿었던 추기경께서 죽음을 그렇게 힘들어 하셨다니, 하느님을 배반할 생각까지 하셨다니..
나이 먹어 죽음을 향해 가면서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겪는 고통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걸 못견뎌하고 힘들어 하는 걸 두고 무어라 할 일은 전혀 아닙니다.
다만 이‘나’가 사라진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추기경께서 ‘김수환’이라는 개체에 매여 그 개체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순간에는 자신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허무한 생각과 회의가 밀려왔을 겁니다. 그러다가도 ‘흙에서 나온 자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전체이신 당신의 말씀을 떠올리면 피조물의 처지를 받아들여 신앙을 돌이키셨겠지요.
모든 종교는 누구나 쉽게 알아들으라고 이렇게 가르칩니다. 네가 착한 일 하면 죽어서도 천당, 극락에 가고 영생 복락이나 열반의 경지를 누리리라. 이 가르침의 핵심은 ‘착한 일을 하라’는 거고, 착한 일하라는 건 내 욕심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우리는 이 가르침을 내가 영생이나 열반의 지복을 누리는 수단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개체‘나’의 소멸을 인정하기 어려워 그러는 거라 여겨집니다.
이 개체가 부활한다거나 열반에 든다는 종교의 표현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비유요, 은유, 역설입니다.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개체에 불과한 내가 이 모습 그대로 영원히 산다고 받아들이는 건 그 말의 뜻과 정반대 결과를 가져옵니다. 모든 종교의 알짬은 이 개체 ‘나’로부터 해방되어 이웃과, 전체이신 당신과 하나 되라는 건데, 정반대로 이 ‘나’를 향해 무한히 집착하고 영생까지 바라니 그렇습니다.
개체인 우리는 전체이신 당신 피조물에 불과하고, 그래서 모든 합성된 것은 공(空)합니다..
그러나 개체‘나’가 흔적도 없이 소멸한다 해서 이 세상에서 내가 행했던 착한 일, 못된 일, 내가 이 세상과 지었던 여러 관계들이 같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고 이 전체의 관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그런 면에서 이 개체 ‘나’는 전체의 품 안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개체 노회찬은 불행하게 소멸했지만, 노동자와 약자들을 위해 울고 웃던 그의 노력은 이 세상 힘든 이들에게 도움과 위로와 법제도로 남을 거고, 그의 생각은 그를 기리는 이들의 마음에 남아 길이길이 이어질 겁니다.
너른 바다 저 물결은 잠시 바다위로 솟구쳐 일렁이며 제가 물결임을 뽐내다가, 다시 스러져서 제가 나왔던 바다로 돌아갑니다.
나는 저 바다위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잠시 이 세상에 나와 이런 저런 생각과 말과 행위를 짓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 사라지지만, 한 때의 물결이었던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의 결과는 바다인 이 세상에 남아 있을 겁니다.
김수환 추기경도, 노회찬도 다 한 때 바다 위를 일렁이던 물결로 그렇게 일어났다 스러져갔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아름다운 생각과 말과 행위들은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전체이신 당신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겁니다.
이글은 <공동선 2018. 9, 10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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