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존대, 도를 넘다
과잉 존대, 도를 넘다
- 등록일 2021.12.21 19:59
- 게재일 2021.12.22
- 18면
- 댓글 0

수필가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는 말을 “신발 벗고 올라가실게요.”라고 하고, 이쪽으로 누우라는 말을 “이쪽으로 누우실게요.”라고 하는가 하면, 치료가 끝났다며 내려오라는 말을 “끝났습니다. 내려오실게요.”라고 했다. 듣기가 영 민망했다.얼마 전에 한 달 가까이 한의원에 다닌 적이 있다. 매일 가서 침을 맞고, 찜질과 전기자극 같은 물리치료까지 받았다. 다행히 한 달 만에 완치가 되었는데, 치료는 잘 되었지만 조금 불편했던 것은 간호사의 괴상한 말투였다.
‘-실게요’의 형태소는 ‘시+ㄹ게+요’로 나누어지는데, 여기에 쓰인 ‘-ㄹ게’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을 약속하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어미이다. 그러니 간호사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써야지, 환자인 상대방의 행동에 대하여 쓰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다. 그냥 “신발을 벗고 올라가세요,”하고, “이쪽으로 누우세요.”하고, “끝났습니다. 내려오세요.”하면 된다.
이 병원에서만 이런 표현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환자나 손님에게 명령하듯 하기보다는 좀 부드러운 존대를 써야 한다는 의도가 잘못 반영된 결과에 의해 이런 표현이 생겨났고, 그것이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은 높임법이 아주 발달된 언어다. 우리말 높임법은 높이는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듣는 이를 높이는 상대 높임법, 문장의 주어를 높이는 주체 높임법, 문장의 목적어나 부사어에 해당한 대상을 높이는 객체 높임법이 그것이다. 높임법이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이라도 모르고서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앞의 명사에 높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인 ‘-분’도 오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방송을 보면 사람들은 인터뷰 중에 예사로 ‘한국분, 시민분, 팬분’이라는 어색한 표현을 쓰는가 하면, 이에 한술 더 떠 ‘손님분’이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이 있다. ‘손님’이 높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높임의 의미가 들어있는 접미사 ‘-분’이 결합한 ‘손님분’은 과잉 존대다.
과잉 존대의 사례는 의외로 많다.
“고객님, 커피 나오셨습니다.”, “지금 자리가 없으십니다.”는 따위의 말은 요즘 카페나 식당에 갔을 때 흔히 듣는 말이다. ‘-시’는 주체존대선어말어미로 주어인 사람을 높이는 말이지 ‘커피’나 ‘자리’ 같은 사물을 높이는 말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다. 인사치레로 쓰는 말인 “즐거운 하루 되세요”나 “가족과 함께 행복한 명절 되십시오”도 맞지 않다. 듣는 상대를 높이는 게 아니라 사물인 ‘하루’를 높이고, ‘명절’을 높이는 인사가 되고 만다.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라고 해야 하고, “가족과 함께 명절 행복하게 보내십시오.”라 해야 맞다.
틀린 것도 자꾸 보다 보면 맞는 것인 양 인식하게 되어 너도나도 따라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거리에 붙는 현수막이 우리말을 혼탁하게 하는 주범이 될 때가 많다. 말이나 글에는 쓰는 사람의 교양과 품격이 담겨 있다. 그것은 곧 우리 사회의 품격이 된다. 곧 2022년 새해가 다가온다.
다른기사 보기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评论
发表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