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자 최저임금, 열자 재벌 곳간”


  • 기자명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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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0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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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함께 살자’ 2020 차별철폐 대행진 – 경남지역 대행진

‘먹고살자 최저임금’, ‘비정규직 철폐’, ‘열어라 재벌 곳간’,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이라는 요구를 내걸고 ‘함께 살자 2020년 차별철폐 대행진’에 나선 민주노총.
지난달 25일 제주지역 대행진에 이어 2일부터 본격적인 전국순회 대행진이 시작됐다.
▲ 출근길 선전전에 나선 차별철폐 대행진단.
▲ 출근길 선전전에 나선 차별철폐 대행진단.
이른 아침 7시, 경남 창원 성산구 성산패총 사거리에서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대행진단과 만난 중앙 대행진단.
‘생존이 걸렸다! 생계소득 보장! 재난기간 해고 금지’
‘먹고 살 수는 있어야지? 올리자 최저임금’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 없애자 비정규직’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보장하라’ 등 형형색색 눈에 띄는 현수막을 들고 출근길을 재촉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함께 살자”고 이야기했다.
▲ 경남도청 앞. STX조선 노동자들의 전면파업 투쟁에 함께 하는 대행진단.
▲ 경남도청 앞. STX조선 노동자들의 전면파업 투쟁에 함께 하는 대행진단.
‘재벌·자본 배 불리기’에 희생된 조선소 노동자를 만나다
출근 선전전을 마무리하고 쉴 틈도 없이 대행진단이 향한 곳은 경남도청 앞이다. 이곳엔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고 있어야 할 조선소 노동자 500여 명이 모여 있다.
2018년 4월,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일방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내놓은 회사를 상대로 구조조정을 막는 대신 6월부터 2년 동안 250명씩 순환무급휴직에 합의하고 2년이 지난 올해 6월1일 일터에 복귀했어야 할 중형조선소 STX조선해양 노동자들. 이들은 ‘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또다시 무급휴직을 강요받았고 다시 거리에 나와 전면파업 투쟁을 시작했다.
‘재벌의 곳간을 열면 최저임금도 올릴 수 있고, 재난 시기 해고 없이 함께 살기 위한 방법도 재벌의 곳간을 여는 것’이라고 말하는 차별철폐 대행진단의 요구와 조선소 노동자들의 요구는 서로 맞닿아 있다. 재벌 배 불리기에 노동자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경남지역 차별철폐 대행진 선포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장섭 금속노조 경남지부 STX조선지회장은 “조선소가 힘들어지면서 정부는 지금까지 3조9천억을 지원했다. 재벌과 대기업만 지원했고, 중형조선소는 외면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기간산업에 40조를 지원한다고 했지만 중형조선소는 또 외면했다”면서 재벌에 집중된 정부지원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류조환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장(왼쪽), 이장섭 STX조선 지회장.
▲ 류조환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장(왼쪽), 이장섭 STX조선 지회장.
그들의 외침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경남도, 그리고 문재인 정부를 향해 있다.
2018년 합의 당시 노동자들은 임금삭감과 무급휴직, 복지 반납을 감수하며 회사 정상화 방안에 합의했지만, 연간 20척 수주를 자신했던 산업은행은 올해 수주 목표를 10척으로 낮춰 노동자들의 현장 복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 노동자들은 산업은행의 정책전환은 물론, STX조선 정상화를 위해 경남도와 정부가 책임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류조환 경남본부장은 경남도 경제부지사와의 면담을 언급하며 “(부지사가) 특별히 경남도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면서 “우리가 경남도청 앞에서 싸우는 이유는 ‘도민을 위해 일하겠다’던 도지사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라고 외쳤다.
대행진단 단장을 맡은 윤택근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동력이었고 기간산업의 핵심 중 하나인 조선업을 살리는데 단 한 푼도 투입되지 않고 있다”면서 STX조선소를 살릴 방안으로 정부, 그리고 재벌의 문제를 지적했다.
윤 부위원장은 “STX조선 회생을 위해선 정부가 긴급자금을 지원하거나 재벌대기업이 조금만 희생하면 된다. 956조나 되는 재벌들의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하고 범죄수익금 환수해 노동자기금을 만든다면 이렇게 STX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곤 “대행진단이 STX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과 재벌 문제, 국책은행과 정부의 역할을 알리고 촉구하겠다”는 말로 조선소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실었다.
▲ 윤택근 민주노총 부위원장. 민주노총 차별철폐 대행진단 단장을 맡았다.
▲ 윤택근 민주노총 부위원장. 민주노총 차별철폐 대행진단 단장을 맡았다.
STX노동자 500여 명과 기자회견을 마친 대행진단은 도청 앞 중앙대로를 지나 창원시청 로터리를 거쳐 더불어민주당 경상남도 당사 앞까지 행진했다.
“먹고 살자 최저임금”… 어떻게 가능한가?
올해 차별철폐 대행진의 특징은, 각 지역본부별로 시기와 내용이 달랐던 지난 시기 차별철폐 대행진과는 달리 민주노총 중앙에서 시기와 의제, 내용을 정해 전 지역 순회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간 대행진의 주요 의제 중 하나였던 ‘최저임금’. 올해 대행진단의 최저임금 투쟁은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투쟁으로 만들고 있다. ‘먹고살기 위한 최저임금’을 위해선 ‘재벌 곳간’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차별철폐 대행진단은 ‘재벌 곳간에 얼마만큼의 돈이 쌓여있고, 재벌이 어떻게 곳간을 지키고 있으며, 이 곳간은 또 어떻게 열 것인가’에 대해 각 지역노동자들과 토론하는 시간도 갖는다.
이날 경남본부 운영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장현술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은 “롯데 계열사에서 7개의 월급봉투를 받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연봉은 172억 4천만 원이며 이를 시급으로 환산하면 687만 원으로, 최저임금 노동자의 시급 8,590원의 800배에 달한다”며 재벌총수의 연봉을 짚은데 이어 “삼성 이건희 회장의 2019년 배당수익은 4748억으로 시급으로 환산하면 1억 8929만 원, 최저임금과는 2만 2036배나 차이가 난다”며 재벌에게 집중된 경제력과 최저임금 노동자와의 간극을 꼬집었다.
재벌 사내유보금 역시 어마어마하다.
장현술 국장은 “정권과 재벌의 결탁, 그리고 보수 정당·관료·언론, 경제단체(전경련·경총), 사법적폐로 연결된 재벌특혜동맹이 재벌 곳간을 지켜주고 있다”면서 ‘재벌곳간을 여는 방법’으로 민주노총은 “현재 ‘투자상생협력촉진세’에 따라 적용되는 재벌 사내유보금 과세의 대상을 늘리고 일몰 규정을 삭제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기금법을 제정하고, 재벌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세금으로 재원을 만들어 이를 노동조건 개선과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 등이라고 설명했다.
간담회 참가자들은 “재벌은 아무런 책임 없이 ‘최저임금이 올라 자영업자들이 힘들어졌다’며 을들의 갈등만을 부추기는 여론을 어떻게 깰 것인가”, “중소영세자영업자들이 감당하고 있는 최저임금 부담을 재벌이 감당하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했다.
▲ 창원 의창구 정우상가 앞. 창원시민들에게 스티커 설문을 통해 최저임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 창원 의창구 정우상가 앞. 창원시민들에게 스티커 설문을 통해 최저임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재벌 곳간 열어 최저임금 올려야”
시민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간담회를 마친 대행진단은 의창구 정우상가 앞에서 창원시민들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최저임금을 올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요?’라는 스티커 설문에 대부분의 시민들은 ‘재벌의 곳간을 열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유를 묻자 “지금처럼 코로나 19로 더 어려워진 때에 국민들은 서로 돕고 있는데 충분히 많이 가진 재벌들이 희생해 함께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것처럼 최저임금도 공약대로, 재벌 바꾸는 것(개혁)도 공약대로 해야 한다”는 단호한 답변을 내놓는 시민도 있었다.
차별철폐 대행진단은 이날 늦은 오후 “차별과 불평등을 넘고, 모든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자”고 호소하며 경남지역 차별철폐 문화제를 열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민낯에도 ‘재벌’ 문제가 거론됐다. 안석태 경남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재벌자본은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도 모자를 판에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려 하고, 세금을 깎아달라고 이야기 한다”면서 “코로나19 이후 한국사회가 더이상 재벌 중심의 약탈 사회가 되지 않도록, 노동자·농민·서민이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위해 불평등·양극화 해소에 함께 나서자”고 말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차별’과 ‘불평등’의 경험을 증언했다.
“임신, 출산으로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고 업무배치에서도 차별받는 직장 내 성차별”을 증언한 여성 노동자, “정규직이 아닌 하청에 또 하청, 이제 해고자 신세”가 된 경남도시가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발언에 이어, “빵집, 약국, 패스트푸드점, 과일가게, 서빙 등 안 해 본 알바가 없지만 ‘주휴수당 줄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 사장님, 손을 만지는 등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시도하는 사장님 때문에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는 청년 노동자의 증언도 이어졌다. 이들은 “차별하지 않는 사회, 비정규직이 없는 사회, 불평등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싸우고 스스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결심을 내비쳐 큰 박수를 받았다.
▲ 알바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증언하는 청년.
▲ 알바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증언하는 청년.
이날 경남지역 대행진을 마친 민주노총 중앙 대행진단은 울산(3일), 부산(4일)을 거쳐 23일까지 전국 15개 지역에서 열리는 차별철폐 대행진을 이어간다.
한편, 경남지역 차별철폐 대행진단은 3일 경남 곳곳의 현장을 순회하며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민주노총 핵심요구를 알리고 다음달 4일 열리는 ‘해고금지·생계소득 보장, 사회안전망 전면 확대, 비정규직 철폐’ 10만 노동자대회를 조직한다. 대행진 마지막 날인 4일엔 ‘최저임금 UP, 재벌개혁 자전거 대행진’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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