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단체 ‘집단이기주의’의 극치...풀무원 주가가 갑자기 오른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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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의사 면허박탈, 수술실 CCTV 설치, 비의료인 문신 허용 법안 번번이 폐기돼

ⓒ최민 논설위원·시사만화가
“그들만 이해할 수 있는 사정이 있겠지”라며 이 같은 비판이 과도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으나, 사실 그간 대한의사협회 등 일부 의사단체들이 국회를 압박하면서 막아선 수많은 법안을 보면 오히려 ‘집단이기주의’ 등의 시선이 자연스럽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간 의협 등 의사단체들은 의사들의 권한이 조금이라도 위축되는 법안이 나오면 강하게 반발해 왔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로 이루어진 국회에서 대다수 의원의 동의를 구했던 법안도 의협이 반발하면 여지없이 폐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법안과 상관도 없는 기업의 불매운동·주가폭등 등의 우스운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원혜영 전 국회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이다.

풀무원 주가가 오른 사연
번번이 좌절된 의료법 개정안
지난 2015년 5월 풀무원 주가가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다. 19일 주당 21만2500원하던 풀무원 주가가 20일 23만9000원으로, 21일엔 24만4500원으로 뛰었다.
사연은 이랬다.
의사가 마취 상태의 환자를 성추행하는 사건이 반복해서 발생하자,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원혜영 현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의사가 성범죄로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박탈해 영원히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의사들이 “처벌이 과도하다”며 들고 일어났다. 전국의사총연합은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들은 분노를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한다”라며 원 의원을 저격했다. 전국의사총연합은 그해 5월 20일 성명을 통해 원 의원에게 의료법 개정안 발의를 철회하라고 촉구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낙선운동을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항할 것”이라고 했다.
의사들의 풀무원 불매운동도 벌어졌다. 풀무원 창업자가 원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37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노환규는 당시 페이스북에 “요새 의사들 사이에 풀무원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의사가 진료 중 성범죄와 관련해 벌금형만 받아도 면허가 취소되는 법안을 발의한 원 의원이 풀무원의 창업주이기 때문”이라는 글을 올리며 의사들의 풀무원 불매운동을 부추겼다.
그런데 그가 부추긴 것은 의사들의 불매운동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의사들의 불매운동에 반발하는 시민들의 행동도 부추겼다. 네티즌들은 “유치하다, 성추행을 안 하면 될 것 아니냐”라며 의사들의 행동을 비판했다. 또 의사들이 풀무원 불매운동을 벌이는 동안, 트위터 등에서 풀무원 구매 운동을 벌였다.
그러면서 주식시장에서 풀무원 몸값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풀무원 사례를 통해 비판을 받았음에도, 일부 의사들의 입장은 변함없었다.
2016년 또다시 비슷한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자, 당시 전국의사총연합 비대위원장이던 최대집 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막말과 욕설을 서슴지 않으면서 국회의원들을 공격했다. 막말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최 회장은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었던 강석진 현 미래통합당 경상남도당 위원장에게 “미쳤나”라며 “남의 인생이 그렇게 우스워 보여? … XX들이 국회의원이라고 이따위 법을 내놓고 있어”라고 야단치듯 비난했다.

잇따라 좌절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도 19·20대 국회 때 발의된 바 있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못 해보고 폐기됐다.
2016년 경기도 성남시 한 대형병원에서 신생아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2019년 들어서야 이 사고가 의료진의 과실로 발생했으며, 병원에서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게 경찰수사로 드러났다. 이에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해 5월 수술실 내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안 의원은 “의료분쟁 관련 재판의 약 30%가 외과적 수술을 수반하는 의료행위에서 기인하고, 의사면허가 없는 자의 불법대리수술 적발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환자나 보호자들이 수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수술실 CCTV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 역시 의사단체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충북의사회는 수수실 내에 CCTV를 설치할 경우 환자의 수술 부위가 노출된다는 이유 등을 들며 “헌법이 규정한 자유와 권리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또 충북의사회는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의료인의 직업 수행의 자유’, ‘수술 집중도’ 등을 떨어뜨리고, 그에 따라 환장의 건강과 생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논리를 앞세웠다.
의협은 이보다 한발 더 나갔다. 지난 2018년 9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수술실 CCTV 설치 시범 운영 정책을 비판하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여 의료인을 압박하고, 수술하는 내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 환자 인권을 위한 것이라면, 오히려 민생의 최전선에 서서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공공기관, 정부기관, 국회 등의 사무실에 CCTV 설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21대 국회에서도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이 법안은 다시 발의됐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올해 7월 국회의원 전원에게 편지를 보내 “수술실 CCTV 설치는 환자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어 결국 환자와 병원, 의료진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이라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법제화해달라고 호소했다.

17·18·19·20대 국회서 좌절된 ‘문신사 법안’
국내 경험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대중화된 미용문신·타투와 관련된 ‘문신사 법안’ 또한 의사단체들의 반대로 10년 넘게 발의·폐기만을 반복했다.
이 때문에 ‘타투문신 작업을 의료행위라고 판단했던 1992년 대법원 재판’ 이후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타투이스트들의 타투·문신 행위가 불법으로 취급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국내 타투이스트들과 소비자들은 별다른 법적 안전 가이드라인조차 없이 타투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미용문신 등이 매우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판례대로라면 의사가 직접 문신작업을 해야 하지만, 외부 문신사를 부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은 17·18·19·20대 국회에서 발의됐다. 법안이 발의될 때마다 의사단체들은 법안 통과를 막아섰다.
타투유니온에 따르면, 법안에 대해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타투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의원들도 타투이스트들의 활동을 법으로 막을 일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매번 법안이 국회에 올라가고 통과될 순간이 오면 의협 등에서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의원들을 압박하면서 고배를 마셔야했다.

박근혜 정부도 포기한 공공의대 설립
최근 의협과 대전협의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공공의대 설립 법안 또한 의사단체의 반대로 여러 차례 좌절을 맛본 법안이다.
이 법안이 처음 화제가 된 건 2015년경이다.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순천대 의대유치를 1호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49명의 같은 당 의원들의 서명을 받고 그해 5월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 통과여부는 민주당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호남에서 새누리당 의원의 재선 가능성으로도 연결되기 때문에 큰 관심을 끌었다.
이른바 ‘순천대 의대법’이라고 불렸던 이 법안은 현 정부가 세운 계획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으나 ‘국가가 대학 등록금 등을 지원해주고 졸업 후 10년간 공공보건의료기관에서 복무하는 것을 의무화했다’는 점에서 큰 취지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한참 전인 그때에도 지방의료원 의사 수 부족은 심각한 문제였기에, 박근혜 정부도 이 법안에 찬성하는 분위기였으며,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도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이때도 의사단체들의 반대로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의협은 이 의원이 법안 발의하기도 전인 그해 5월 15일 성명을 통해 “국회 입법발의 예정인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병원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비현실적인 대안으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공공의대 설립을 통한 의료취약지 의료접근성 문제는 해소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의사들이 의료취약지 의료기관 근무를 꺼리는 근본 원인부터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성명에서 드러내진 않았지만, 사실상 이는 많은 환자들이 찾아오지 않는 지방에서도 의사들의 수익이 보장될 수 있도록 의료수가(환자 부담금+건강보험공단 부담금)를 높이라는 요구와도 연관돼 있다.
최근 전공의와 의사들이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정원 확대 정책을 반대하면서 공식적이진 않지만 말끝마다 덧붙이는 대안도 의료수가 조정이다. 수술비 등 의료수가를 대폭 높여야만 기피분야에 병원 투자와 의사들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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