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일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89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 적자 국채를 발행하며 올해보다 8.5% 증가한 555조8,000억 원의 2021년 예산안을 확정했다. 이는 재정적자 규모가 31조3,000억 원에서 72조8,000억 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가 더욱 강화됐다는 뜻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내년 재정과 예산문제에 대한 대논쟁의 시기를 겪게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계열언론은 “초슈퍼 예산”, “나라살림 거덜”, “나랏빚 눈사태”, “재정 만능”, “정책 땜질”, “초팽창 예산” 등의 용어를 거론하며 적자재정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시장이 마비되고 정부의 역할이 막중함에도 시장의 성장을 지원하지 않고 재정만능주의에 빠져있다는 식의 한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피할 수 없다. 개혁성향의 언론들은 적자확장재정의 필요성은 불가피하다고 보면서도 “재정건전성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증세 논의 더 미루지 말아야”하는 등의 재정적자 해결대책에 대해서도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예산안에 대한 설명에서 지금까지는 △ 재정이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코로나19 위기극복에 강한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며, △ 과감한 재정투자로 국정과제를 달성하고, △ 늘어나는 국가채무에 대처한 중기적 재정건전성을 관리하는 노력을 강화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해 예산에서는 △ 강하게 경기회복을 견인하는 예산, △ 한국판 뉴딜을 뒷받침하는 예산, △ 확장적 재정기조하에서 전략적 재원배분과 함께 과감한 지출구조조정, 협업예산 등 재정혁신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내놓은 예산안이나 정부의 의지를 놓고 본다면 재정구성과 운영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주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재정구성과 운영에서 큰 혁신을 하는 거야 언제나 환영할 일이지만 실제 방향과 내용이 어떤 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특히 상당한 적자재정을 편성하여 투입하는 예산인 만큼 그 쓰임새에서 개혁과 평화, 민생기반을 강화하는 확고한 담보가 있어야 할 갓이다. 그러니 사실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먼저 정부의 재정투입의 핵심은 한국판 뉴딜이다. 디지털, 그린 뉴딜로 명시된 것만도 21조원을 포함 유관예산을 따져보면 거의 뉴딜예산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판 뉴딜에 대한 공론화가 너무 없이 벌써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현재 정부가 제출한 한국판 뉴딜안으로는 한국경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경제개혁이 될 수 없다. 노동권확대, 경제민주화 전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본의 힘을 강화시켜주는 방향에서 신성장동력을 회복하는 데 치중되어 있다. 이렇게 해 가지고서는 대외의존적 경제, 초국적 자본과 재벌에 의한 이중착취구조, 취약한 내수기반, 노동기본권 등 민중의 기본권의 악화, 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의 확산 등을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한국판 뉴딜에는 박정희식 산업정책류의 ‘성장’만 있지, ‘개혁’이 없다. 그 성장은 모두가 고용을 약화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성장이다. 그리고 그 성장도 세계적 장기침체하에서 장담할 수도 없다. 한국판 뉴딜에는 개혁이 없다. 때문에 이번 예산도 전혀 개혁적이지 않다.
다음으로 국방부는 내년 국방예산을 올해보다 5.5%나 증액 편성하여 52.9조 원에 달한다. 국방부는 그 주요 명분으로 “전방위 안보위협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고, 사이버‧우주‧테러 등 비전통적 위협에도 적극 대응” 하기 위한 것임을 내세우고 있다. 평통사 논평에 의하면 이러한 국방부의 위협인식은 북한은 물론이고 주변국까지 잠재적 위협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지적이다. 이런 위협인식은 미국의 초 공세적 대북 전략과 작전, 전력 구축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주변국과의 군비경쟁의 본격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우리 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방위력개선비는 17조 738억 원으로 국방예산 중 33.4%에 달하는데 주로 무기체계 획득 비용으로서 사실상 ‘미국 퍼주기’ 예산이다. 북한의 핵·WMD 위협 대응을 명분으로 한 3축 체계 구축 예산을 비롯해 한국형 전투기 개발, 차세대 잠수함 도입 등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참여연대는 이러한 군비증강예산은 남북 간 신뢰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나아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동력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진보당 지고부와 시도당 대표들은 벌써 국방비예산 삭감하고 재난지원금을 늘릴 것을 요구하며 1인 시위에 들어갔다.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는 이미 차고 넘치는 최첨단 무기 대신 한정된 재원을 코로나19 위기 대응, 사회안전망 확충,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청해야할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코로나19위기 대응,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으나 막상 민생당사자들은 차가운 반응이다. 예를 들어 농업예산은 전체 8.5%증액된 2021년 국가 예산중 2.3%증액에 불과하다고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적한다. 이 예산이 과연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식량위기가 거론되고 탈탄소 영농의 중요성이 다시금 긴급하게 제출되는 현 시기에 적합한 예산인지 농정당국과 예산당국에 농민들은 묻고 있다. 특히 2019년 농가 평균소득은 전년 대비 2.1% 하락했고, 최근 태풍과 홍수 피해를 포함하지 않고도 이미 농업소득 감소폭이 무려 20.6%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농가소득, 경영안정 분야 예산은 도리어 전년대비 7.4%가 감소한 예산을 편성했다.
이런 방식의 민생예산편성이 어디 한두 경우이겠는가. 보건⋅복지⋅고용 분야의 예산의 규모는 전년대비 10.7% 증가한 199.9조 원이다. 참여연대는 이 예산은 사회안전망 강화정책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급여 폐지, 국민취업지원제도, 고용보험 대상 확대 등을 반영한 예산일 뿐이고 긴급복지지원제도, 아동돌봄시간 및 지원 등의 예산 등은 그 수준이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그간 지켜지지 않던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국고지원 법정비율과 건강보험 국고지원 비율의 일부 인상을 두고 보장성 강화라고 하는 것 역시 과도한 생색내기라는 것이다. 특히 공공의료의 필요성이 그 어느때보다 요구되는 상황에서 공공의료와 공공의료인력 확대는 미흡한 반면, 의료 산업화 정책 추진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강력하게 비판한다. 특히 전국민 고용보험 조기 도입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 추진과 예산 확대를 주장한다. 어럽게 결심하고 있는 확대적자재정 예산이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지출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리라는 뚜렷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징표들이다.
한국판 뉴딜의 대표사업인 학교뉴딜과 관련한 교사들의 목소리도 간단치가 않다. 2021년도 교육부 예산안은 2020년 대비 0.8% 증가한 76조 3,332억 원이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교육 분야 한국판 뉴딜의 차질 없는 추진을 통해 학교를 미래형 교수학습이 가능한 유연한 학습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을 강조하며, 비대면 원격교육 운영 지원에 824억, 한국판 뉴딜사업에 2,625억 원을 편성하였음을 밝혔다. 전교조는 이러한 예산편성이 본말이 전도된 예산안이며, 본질적 처방인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은 반영되지 않아 실망스럽다고 지적한다.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은 수도권 과밀학교와 과밀학급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을 위한 예산을 증액하여 교사와 학생의 대면 상호작용이 가능한 학교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교사들은 말한다. 그런데 경제 논리에 사로잡혀 시설과 기자재에 쓰는 예산은 투자라고 여기며 마구 늘리고, 정작 교원을 확충하여 교육이 가능한 교실 환경을 만드는데 투입하는 예산은 비용이라 여기며 줄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개혁과 평화, 민생의 디딤돌을 놓는 예산편성을 요구하는 주권자들의 목소리는 이제 시작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 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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