跳至主要内容

LG가 청소노동자 상대로 벌인 ‘손쉬운 집단해고’ 막을 해법

 


[손쉬운 집단해고 ③]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새로운 법 규정 없어도, 해석론으로 가능”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1-01-29 17:03:28
수정 2021-01-29 17:26:38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길게는 10년. LG트윈타워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정든 일터였다. 그런 일터에서 이어져온 각종 부당함에 항의하며 노조를 결성하고 처우개선을 요구했더니, LG트윈타워 건물 관리업체 S&I코퍼레이션는 용역업체 교체로 답했다. 용역업체가 교체되면서 청소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됐다. 표면상 청소업체 교체지만, 용역업체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말을 안 들으니 집단해고 한 것이다. 이후 청소노동자들은 LG트윈타워에서 S&I와 신·구 용역업체를 상대로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40일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다. LG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LG가 100% 지분을 가진 LG트윈타워 건물 관리업체 S&I’와 ‘구광모 LG 회장 고모들이 소유하고 배당금을 챙겼던 용역업체 지수INC’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전혀 관련 없다는 듯. 해고 자체는 파견업체에서 벌어진 일이니, 두 다리 건너 LG와는 관련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LG의 계산처럼 흘러갈까.

① 10여년 반복된 노조파괴 공식 ‘노조결성→용역계약 중단→집단해고’
②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탄압이 부당노동행위인 이유
③ 청소노동자 상대로 LG가 벌인 ‘손쉬운 집단해고’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지난 2일 여의도 트윈타워 안에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식사 반입과 난방, 전기 공급 차단을 규탄하는 모습.  2021.01.02
지난 2일 여의도 트윈타워 안에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식사 반입과 난방, 전기 공급 차단을 규탄하는 모습. 2021.01.02ⓒ김철수 기자 

 “가슴이 막막하다”

36년째 복직을 요구하며 싸운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하는 기자회견에서, LG트윈타워 해고 청소노동자 민경남 씨가 한 말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을 보면서 힘을 얻고 간다”며 ‘먹먹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한 말로 보이지만, 대기업 LG를 상대로 앞으로 법정 싸움을 어떻게 전개해야할지 ‘막막한 마음’도 담겨 있지 않았을까.

“막막하다”고 한탄할 만도 한 게, 그동안 수많은 민간 기업은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서 처우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용역업체를 갈아치우는 방식으로 집단해고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법부는 새로운 용역업체가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할 의무가 없다며 사업자 편익을 봐주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용역업체 교체 시 원청과 용역업체 사이에서만 계약이 이루어지고, 신·구 용역업체 사이에 직접적인 계약이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에, 기존 노동자들을 새로운 용역업체가 고용승계할 의무는 없다”는 판례가 지금까지 주류를 이뤘다.

주류를 이룬 판례를 방패삼아 사측은 용역업체 변경으로 번번이 노조를 와해시켰고,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재고용 탈락의 우려로 노동자들은 권리 실현을 포기했다. 이런 이유로 “영업양도시 고용승계를 의무화하는 새로운 법 규정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법 제정 움직임도 있었다. 그런데도, 경영계의 반대 등으로 관련법이 언제 제도화되어 시행될지는 요원한 상황이다.

하지만 꼭 기존 판례 또는 관련 법 규정이 없는 문제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승계 요구를 회의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나온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새로운 법 제정 없이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사건을 유럽사법재판소의 판례처럼 법원이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고용승계를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판단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기존의 판례만 보면 불리해 보이지만, 이번 사건을 담당한 법원이 방향만 잘 잡는다면 충분히 ‘고용을 승계하는 방향이 옳다’는 법리를 형성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27일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법원도 인정 청소노동자 고용승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1.27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27일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법원도 인정 청소노동자 고용승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1.27ⓒ김철수 기자

법적관계 없어도 ‘계약관계망’에 얽혀
고용승계 해야 할 사업이전으로 인정돼

박 선임연구위원이 작성하고 2014년 12월 30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행한 ‘사업이전과 고용보장’ 보고서를 보면, 이번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사건과 비슷한 사례로 ‘템코 사건’이 소개돼 있다. 이는 유명 자동차생산업체 폭스바겐이 청소용역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문제를 다룬 판례로, 유럽사법재판소는 우리나라 법원과는 다른 법리를 적용해 새로운 용역업체가 기존 노동자들을 고용승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폭스바겐은 BMV라는 업체와 건물시설 청소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 그리고 BMV는 재하청업체인 GMC를 통해 청소용역 업무를 수행했다. 재하청업체 GMC는 폭스바겐과 계약을 체결하는 등 어떤 계약상 관계도 맺은 적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폭스바겐은 BMV와 계약을 해지하고, 템코(Temco)라는 용역업체와 새로운 청소업무 계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재하청업체 GMC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을 통해 보호받는 4명의 노동자를 제외하고 모두 해고됐다가, ‘75%의 노동자를 인수해야 한다는 벨기에 업종별 단체협약’에 따라 일부는 템코에 고용됐다. 하지만 GMC에 남은 4명의 노동자는 템코로 고용되지 않았다. 이에, 이들 4명의 노동자는 “GMC와 템코 간에 사업이전이 이루어진 것이기에 자신들의 고용관계도 템코로 이전되어야 한다”며 소송을 전개했다.

이 사건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① GMC는 BMV라는 하청업체로부터 재하청을 받은 업체였고 원청인 폭스바겐과는 어떤 계약 관계도 맺지 않고 있었다는 점 ② GMC와 새 용역업체 템코도 아무런 법적 관계가 없다는 점 ③ 청소 용역은 기계·장비 등 물적 자산이 없는 노동력만으로 구성된 사업이라는 점 등이다.

하지만 유럽사법재판소는 GMC와 템코 사이에 사업이전이 이루어졌다고 인정했다. 두 업체 사이에 아무런 법적 관계가 없음에도 ‘4명의 노동자도 고용승계를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럽사법재판소가 고용승계 해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유럽사법재판소는 두 용역업체가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폭스바겐 건물 청소라는 하나의 목적을 둔 ‘계약관계망’(the web of contractual relations)에 얽혀있기에, 고용승계 의무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용역업체간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고용불안 문제를 외면하고 사용자의 편의를 봐주는 우리나라 주류 판례와는 매우 다른 법리이다. 또 용역업체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 건물 청소라는 사업 자체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지를 봤을 때, 청소 사업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고용승계를 해야 할 사업이전으로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청소 사업이) DMC에서 템코로 바뀌었고 폭스바겐은 제3자 위치에 있지만, 그 전체가 폭스바겐 건물 청소라고 하는 목적을 위한 하나의 ‘계약관계망’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고용승계 해야 할) 사업이전으로 인정이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기존(우리나라 사법부)에 쓰이는 ‘영업양도’ 개념처럼 인적·물적 요소 전체가 양도되어야 고용도 승계된다는 접근 방식을 순수 서비스업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며 “양동이, 빗자루를 물적 자산인지 아닌지 보고 (고용승계 의무가 동반되는) 영업양도로 (볼지 말지) 운운하는 것도 웃기지 않나”라고 짚었다.

사업이전과 고용보장
사업이전과 고용보장ⓒ한국노동연구원

아직 국내에서는 이 같은 법리가 적용된 판례가 없으나, 이번 사건에서는 노조를 결성한 노동자들을 집단해고하기 위한 취지로 원청 S&I가 용역업체들과 공모하여 업체를 변경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사정 등을 고려해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대한석탄공사 J광업소 고용승계 인정 판례처럼 앞선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고용승계가 이루어진 점을 근거로 해당 사건의 용역업체 변경에서도 ‘묵시적 계약관계’가 있다고 보고 고용을 승계해야 한다고 본 판례도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용역업체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해고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선임연구원은 새로운 법 규정 또는 지침 없이도 우리나라 사법부가 고용승계해야 한다는 방향의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한국의 상황과는 다르게 유럽은 ‘사업이전지침’을 통해 사업체가 동일성을 유지한 채 다른 사업주에게 이전될 경우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도 승계하도록 정한 점은 다른 지점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입법 없이도 해석론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좀 더 명확히 하려면 해석론을 입법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 선임연구원은 ‘사업이전과 고용보장’ 보고서에서 몇 가지 입법론을 제기했다. 그중 하나는 영국의 사례다. 영국은 사업의 일부가 하청으로 전환되는 경우, 하청업체가 변경되는 경우, 하청으로 전환되었던 사업이 다시 원청으로 귀속되는 경우 등 모두를 사업이전으로 인정하고 고용이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또 영국은 서비스업 사건에서 주로 발생하는 사업이전에 대한 해석상 다툼이 없도록 ‘기존의 서비스 공급 주체가 하던 업무와 동일한 업무를 새로운 업체가 수행하고 있는가’ 여부만을 요건으로 삼았다.

이승훈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评论

此博客中的热门博文

[인터뷰] 강위원 “250만 당원이 소수 팬덤? 대통령은 뭐하러 국민이 뽑나”

‘영일만 유전’ 기자회견, 3대 의혹 커지는데 설명은 ‘허술’

윤석열의 '서초동 권력'이 빚어낸 '대혼돈의 멀티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