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말 잘하는 사람의 손해

 [시론] 말 잘하는 사람의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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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1-11-30 05:00:21  폰트크기 변경        

색깔이 화려한 꽃은 향기를 자랑하기 어렵고 말 잘하는 사람은 진심을 전달하기 어렵다. 사물의 면목은 다양하여 양과 음이 있으며 강한 면과 여린 면이 있으며 모서리 진 곳과 두루뭉술한 곳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한 쪽이 유별나면 다른 면이 감춰지거나 빛을 잃기가 쉽다.

잘 생긴 배우 디카프리오와 원빈이 연기력을 인정받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 것이 향기가 화려한 꽃잎에 가려진 경우라면, 계륵(鷄肋)에 대한 ’사이다 발언‘으로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언변 좋은 양수(楊修)의 경우는 말 잘하는 사람이 빠진 함정의 사례라 할 만하다. 조조가 유비와 한중(漢中) 땅을 두고 싸울 때 미리 철군준비를 하는 양수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양수가 웃으며 답한다. 오늘 주군이 내린 암호인 계륵은, 남 주기는 아깝고 내가 먹기엔 맛이 별로인 것이니 이는 한중을 일컫는 것이라, 주군께서 곧 철수명령을 내릴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라고. 조조는 입이 가벼운 양수의 목을 벤다.

양수와 함께 조조를 모신 유세가로 가후(賈詡)가 있다. 어느날 조조로부터 조비와 조식 중 누가 후계자로 더 적합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조조가 자신을 많이 닮은 셋째 아들 조식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알고 있는 가후가 아뢴다. 학식과 인품에서 조식이 더 훌륭하다. 다만 원소와 유표의 예가 염려된다고. 큰 아들 대신 동생을 후사로 삼아 내부 분열로 멸망한 원소와 유표의 실책을 슬쩍 끼워넣은 것이다. 요즘 말로 넛지(nudge)와 비슷한 것이다. 가후는 조조에 이어 조비까지 모시며 오래도록 영화를 누린다.

아슬아슬한 스토리는 이어진다. 왕이 된 조비는 똑똑한 동생이 늘 불안했다. 조비는 핑계를 만들어 조식을 죽일 작정을 하고 일곱 발자국을 뗄 동안에 시 한 수를 지어내라는 명을 내린다. ”콩깎지를 태워 솥안의 콩을 삶으니/ 솥안에서 콩이 슬피 우는구나/ 본시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어찌 이리도 급하게 볶아대는가“ 눈물을 글썽이며 읊는 동생의 목소리에 모진 형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들었다. 조식이 자신의 목숨을 구한 칠보시(七步詩)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하이데거의 말이 아니라도 우리는 말에 살고 말에 죽는다. 역사는 검으로 죽은 사람보다 말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 검은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나 말은 수백 수천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기도 한다. 지금도 이 아름다운 지구의 한편에서는 명분 없는 적이 만들어지고 테러와 전쟁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의미없는 죽임을 당하고 있다. 살벌한 싸움이 그렇게 쉽게 빈발하는 것은 그것을 촉발하는 사람이 늘 부담 없는 말로만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만일 싸움을 결정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전장에 나가야 한다는 법이 있었다면, 아이들이 ’일선 장병 아저씨‘가 아니라 ’일선 정치인 나리‘에게 위문 편지를 쓰는 일이 있었다면, 진작에 전쟁은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뒷전의 나리들은 안전가옥에 비스듬히 앉아 세치 혀를 가볍게 놀려서 국가 간, 민중 간에 갈등을 유발하고, 힘 없고 순진한 민초들을 선동하고 자극하고 열받게 하여 사지로 내몬다.

꼭히 전쟁만이 아니다. 전쟁과 다름없는 삶의 질곡, 과연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인가 싶을 만큼 억울하고 비참하고 의욕 잃은 인생도 대부분 말의 장난에 놀아났다. 진실에 기초하지 않은 말, 깊은 성찰과 내면의 동의에서 잉태되지 않은 말, 순진한 사람들을 부추기기 위해 내밷고 보는 진정성 없는 말, 이런 말들은 사기다. 아무리 매끄러운 문장과 화려한 수사, 그럴 듯한 연기로 꾸며대어도, 그것은 선량한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의 마음을 훔쳐가는 도둑질과 진배없다. 때로는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큰 음모를 숨기기 위함이거나 다른 불순한 의도로 행해진다면 마찬가지다.

양수는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앞서 재주를 뽐내다가 죽음을 자초했다. 가후는 나라의 장래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배려심과 겸손함으로 나라와 자신의 안녕을 얻었으며, 조식은 형과의 공감대를 찾아 그의 순정에 호소함으로써 증오를 우애로 바꾸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대단한 재능이다. 그로인해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은 달리기 잘하는 사람이 달리다 엎어져 다치는 경우보다 덕을 보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다. 그러나 현실은 말 잘하는 사람이 입는 손해가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의 그것보다 큰 경우가 종종 있다.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은 있는 진실성과 진정성조차 제대로 표현할 능력이 부족하여 이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그치지만, 말을 잘하는 사람은 그의 언변이 진실성과 진정성을 훌쩍 뛰어넘거나 허세의 유혹에 취하여 자신이 앉아 있는 나무가지를 스스로 잘라내는 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재주가 많은 사람은 덕이 부족하기 쉽고 (才勝薄德), 똑똑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기가 어렵다(難得糊塗)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 요즘 우리가 자주 보고 있는 광경이다.


권재욱 서경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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