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위기에 처한 한글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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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퇴계학연구원장
입력 : 2022-10-24 04:04
![](https://image.kmib.co.kr/online_image/2022/1024/2022092521230344629_1664108583_0924269759.jpg)
지난 9일은 576돌을 맞은 한글날이었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한글은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기념비적 유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이 자랑스러운 유산을 잘 가꾸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최현배 선생도 ‘한글날 노래’ 가사 1절에서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은 과연 한글을 자랑스러운 문화의 터전으로 여기고 있는가? 또 한글로 우리나라의 힘을 기르려 하고 있는가? 실망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듯하다. 한글은 지금 천대받고 괄시받으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에 처한 한글의 현주소를 한 번 살펴본다.
먼저 인터넷상에서 청소년들이 주고받는 문자들을 보자. “왜 글케 운동 열씨미 하세요?” “다 같이 술 먹고 놀고 넘 재미써” “금욜에 만나자” “담에 굴 머그러 오자”. 이쯤 되면 한글 맞춤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맞춤법이란 글을 쓸 때 지켜야 할 일정한 규칙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아무렇게나 글을 쓴다면 사회적으로 커다란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맞춤법이 만들어진 것인데 이런 맞춤법을 청소년들은 아예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대화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일상이 돼 있다. 이것은 한글을 학대하는 행위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뜻을 받들어 모름지기 한글을 사랑하고 가꾸어야 할 터인데 이렇게 한글을 무시하고 학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글의 현주소다.
한글이 처한 위기의 또 다른 국면은 무분별한 ‘외국어’ 남용이다. 외국어와 외래어는 다르다. 외래어는 컴퓨터, 버스, 피아노, 커피처럼 외국으로부터 들어와 한국어에 동화돼 한국어처럼 사용되는 단어인 반면에 외국어는 한국어와 이질적인 생경한 다른 나라 언어이다. 지금 우리는 이 외국어를 남발하고 있는데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경우이다. 며칠 전 모 일간지에 SK의 전면 광고가 실렸는데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우리에게도 스윗, 지구에게도 소-스윗” “플로깅으로 지구에 달콤하게 줍줍” “라벨은 떼고 스윗함은 남기고” 등인데 이것은 SK가 펼치는 ‘어스윗어스 캠페인’의 문구다. ‘어스윗어스’가 무슨 뜻인지는 조그맣게 써놓은 영문을 보고 알았다. ‘Earth with Us’로 ‘우리와 함께하는 지구’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광고문 표기는 한글로 돼 있지만 이것을 한글 문장이라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테이크아웃’ ‘드라이브스루’ ‘키오스크’ ‘빅스텝’ ‘도어스테핑’ 등과 같은 외국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다. 공공기관도 ‘경기도 헬프라인’ ‘서울 런’ 등의 외국어를 남발하고 있다.
둘째는 외국어(주로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이다. 현대자동차가 어느 일간지에 낸 전면 광고를 한 번 보자. 상단의 “CASPER The Essential”이란 영문 밑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은 최적의 케이스 탄생” 문구가 있고 중앙의 자동차 사진 세 군데에는 “Convenience” “Safety” “Design”이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미국에서 발간하는 신문에나 게재될 광고가 아닌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이름이 ‘DMC 롯데캐슬 더퍼스트’이고 관리 사무소 입구에는 ‘control office’라고 쓰여 있다. 이밖에도 거리의 간판이나 안내판을 보면 온통 외국어투성이다. 어느 상점의 창문에는 ‘Monday Closed’라 쓰여 있기도 하고, 우리나라 영화 제목을 ‘리멤버’라 붙이기도 한다.
언어는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거꾸로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 양식을 지배한다. 우리가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쓰는 행위가 빈번해지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우리도 모르게 미국인을 닮아간다. 그리하여 점차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갈 것이다. 세종대왕이 오늘의 이 현상을 본다면 뭐라고 하실까?
한덕수 국무총리가 한글날 기념식에서 “우리의 말과 글의 힘이 곧 우리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언론과 함께 공공언어에서 불필요한 외국어 사용을 줄이고 쉬운 우리말로 바꿔 나가겠다”고 한 말이 일회적인 행사용 발언이 아니기를 바란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부와 언론에서 일 년에 꼭 한 번 한글날에만 한글 사용을 강조하고 일 년 내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퇴계학연구원장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69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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