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은 1960년대부터 한국 시멘트 생산의 전초기지였다. 한일·현대·성신·아세아까지 주요 시멘트 기업 생산공장이 이곳 단양과 바로 옆 동네 제천에 모여 있다. 정부가 발동한 ‘시멘트 운송사업자·운수종사자 업무개시명령서’를 받아야 하는 수백명이 모여있는 곳이다.
29일 오후 3시, 중앙선 제천역에서 내려 인근 시멘트 공장으로 향했다. 도로변 대형 주차장에 BCT(Bulk Cement Trailer_30톤 탱크로리에 미세분말 완제품 형태 시멘트를 운송하는 대형트럭) 수십 대가 나란히 서 있다. 주차장 관리인은 “평소면 한 대도 없지. 벌써 며칠째 저렇게 서 있네”라고 했다. 주차장 뿐 아니다. 도로변에 위치한 주유소 옆마당, 교각 아래 공터 곳곳에도 BCT는 하릴없이 서 있었다.
시멘트 운송종사자 업무개시 명령이 내려진 29일 오후, 충북 제천의 한 대형 트럭 주차장에 BCT가 가득 주차 돼 있다. ⓒ민중의소리 시멘트 운송종사자 업무개시 명령이 내려진 29일 오후, 충북 단양의 한 주유소에 BCT 여러대가 주차 돼 있다. ⓒ민중의소리
제천역에서 30분쯤 차를 달리면 시멘트 공장이 나온다. 20층 아파트 높이의 거대한 시멘트 생산기 ‘고로’와 고로에서 생산된 시멘트가 이동하는 컨베이어벨트, 시멘트를 저장하는 거대한 사일로(원통형 저장소)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잿빛으로 뿌연 거대 구조물은 묘한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만난 화물연대 충북지역본부 관계자는 “단양·제천을 중심으로 200km 동심원을 그리면 서울·경기·강원·충남북이 모두 포함된다. 여기서 시멘트를 운송하는 BCT가 대략 7~800대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업무개시명령 대상 운송 종사자를 총 2,500여대로 추산했으니 전체 1/3이 이곳에 모여있는 셈이다.
이중 화물연대 조합원은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10%를 넘지 못한다. 오는 길에 찍은 주차장 사진을 보여주자 “내 차를 찍어왔네”라며 웃는다. “여기 남부주차장에 BCT가 40대쯤, 그중에 주황딱지(화물연대 로고가 박힌 스티커) 붙은 건 내 차랑, 내 옆 동생 차 딱 두 대밖에 없어”라고 했다.
이른바 ‘비조합원’ 파업 동참률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화물연대 파업이 시작되자 이곳 BCT는 일제히 운행을 멈췄다. 공급되는 시멘트 생산량이 급감했다. 이날 발표된 관계부처합동담화문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국가 경제가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으며 “피해규모·파급효과 등을 종합 감안하여 물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분야가 바로 시멘트 운송이다. ‘국가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는 이기적인 일부 조합원’만 참여했다면 유례없는 업무개시명령은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충북의 한 시멘트 회사 생산 공장 ⓒ민중의소리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징역 3년이 우습다고 했고, 벌금 수천만원이 낫다고 했다. 30년 가까이 BCT를 몰고 있는 화물연대 조합원 심상목(58)씨의 말이다. 차근차근 설명을 들어보니 괜한 호기는 아니었다.
그의 트랙터(탱크로리를 끌어가는 트럭)는 2014년식 볼보 540(540마력이라는 뜻_일반적으로 1톤 트럭은 133마력)이다. 2억1천만원쯤 한다. 트랙터 뒤에 붙어 있는 트레일러(대형 탱크로리) 가격이 7천만원 정도다. 2억8천만원 들여 BCT를 장만했다.
70개월 할부다. 트럭 할부 이자는 8%, 탱크로리 할부 이자는 10%다. 원금과 이자를 합쳐 한 달 할부만 56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월 기름 사용량은 평균 4,308리터, 리터당 1,900원을 곱하면 818만5천원이 나온다. 고속도로 통행료는 대략 월 110만원,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하는 소모품에 잔고장 수리비까지 하면 월 120만 꼴이다. 보험료는 화물공제회에서 무사고 100% 우대를 받아도 한 달 28만원이 나간다. 밥 안 먹고 숨만 쉬며 25일 일하면, 나가는 돈이 1,636만원 정도다. 그는 지난달 매출로 1,700만원을 간신히 넘겼다.
그나마, 2018년부터 시작된 안전운임제가 있어 나아진 거다. 지금은 기름값이 오르면 3개월에 한번씩 운임도 오른다. 최저단가가 있으니 화주도 운송사도 “가격 덤핑, 후려치기”를 못한다.
몇년 전 만해도 시멘트 회사들은 ‘최저 운송가 입찰’을 했다. 제일 낮은 단가를 내야 일감을 받는다. 운송사가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고 물량을 받아오면 피해는 고스란히 실제 운송하는 차주들에게 전가된다. 대출받아 할부를 막고, 카드 돌려막기로 기름값을 대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운송료가 입금되고 빠져나가고, 입금되고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며 먹고 살고는 있지만, 돈을 버는 게 아니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심씨는 “비조합원들이 왜 파업에 동참하고 일을 안 하느냐고? 지들도 알거든. 다시 돌아가면 진짜 죽을 것 같다는걸. 나도 그래”라고 말했다. 그는 “명령 거부하고 죽으나, 안전운임제 없는 시절로 돌아가서 죽으나…그러니 내가 겁이 나겠나”라고 했다.
화물연대 충북지역본부 소속 조합원 심상목씨가 그의 BCT에 앉아 있다. ⓒ민중의소리
새벽 2시에 일어나 화장실도 안 가는 '철의 노동자'
BCT 기사 하루는 새벽 2시에 시작된다. 1시간만 늦어도 시멘트 상차기(시멘트를 탱크로리에 담는 기계) 앞에는 대기 행렬이 장사진을 이룬다. 시간이 돈인데, 40분 걸리는 상차에 기다리는 시간만 2~3시간이다.
BCT가 향하는 목적지 십중팔구는 레미콘 공장이다. 시멘트를 실어가면 물과 자갈을 섞어 레미콘을 만든다. 대게 100~150km 떨어진 서울, 하남, 진천, 괴산 등지에 레미콘 공장에 가야 한다. 2시간쯤 걸린다. 레미콘 공장은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물량을 접수한다. 하루 10시간 동안 몇 번이나 왕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역순 해보자. 새벽 2시에 나와 운 좋게 대기 없이 상차를 마치면 새벽 3시, 체증 없는 도로를 달려 서울에 도착하면 6시쯤, 오픈런으로 7시 첫차를 대주고 출발하면 8시, 3시간 걸려 복귀하면 오전 11시다. 2시간 기다림 끝에 재상차를 마치면 오후 1시, 다시 레미콘 공장으로 2시간 달려 물건을 내리면 오후 5시다. 시멘트 공장으로 복귀하면 저녁 7시. 2회전이 끝난다. 심씨는 “나는 퇴근해 ‘저녁이 있는 삶’이 내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D운송사에서 함께 물량을 받는 그의 비조합원 동료의 하루는 끝나지 않는다. 50~60km 단거리 물량을 또 한번 소화하고 밤 10시쯤 일을 마친다. 4시간 자고 새벽 2시. 지옥 같은 하루는 다시 시작된다. 심씨는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 뒤쪽, 졸음쉼터에서 BCT 많이 봤지? 너무 졸려서, 이러다 죽을 것 같으면 거기서 자는거야”라고 했다. 가급적 2회전만 하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3회전 할 때도 많다. 밤 10시에 일이 끝나 하루 4~5시간 자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렇게 벌어야 1,700만원을 간신히 맞춘다.
BCT 기준 적재량 한계는 보통 26톤이다. 공차 중량이 14톤 정도라 총중량 40톤 한계에 걸리기 때문이다. 40톤짜리 육중한 쇳덩이가 멈췄다 출발하려면 ‘부릉부릉’ 몇번만에 경유 3~4리터, 6,650원이 사라진다. 심씨는 물론, 대형트럭 운전자들은 운행중 화장실에 잘 안 들린다. 한 번 멈추면 6,650원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부아앙’ 유난히 큰 경적을 울리며 노란불로 바뀐 사거리를 위험천만 질주하는 대형 트럭이 괜히 자주 보이는 게 아니다.
국토부는 3개월에 한 번씩 최저운임을 공시한다. 공시가는 화주, 운송사업자, 운송종사자 3자가 참여하는 위원회가 정한다. 여기에 경유가 상승분이 반영된다. 지키지 않으면 처벌 받는다. 만약 유명무실해진다면.
최저운임제가 아니라, ‘안전운임제’라고 부르는 이유가 다 있었다.
화물연대 충북지역본부 소속 조합원 심상목씨 BCT 뒷자석에 마련된 침대 ⓒ민중의소리 “ 홍민철 기자 ” 응원하기
더민주전국혁신회의 강위원 상임대표 고희철 기자 khc@vop.co.kr 발행 2024-06-06 16:14:31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지난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에 전면으로 부상해 4.10 총선 결과 민주당의 한 축을 이뤘다. 대개 언론에는 ‘친명 강경파’ 조직으로 소개된다. 지난 2일 2기 강위원 상임대표가 선출됐다. 한총련 의장을 거친 강 대표는 전남 영광군 묘량면에서 여민동락 공동체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민형배 구청장 시절 광산구노인복지관장 등을 거쳐 이재명 도지사 시절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을 맡았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의 일정을 총괄했고, 그 뒤 당대표 특보와 혁신회의 1기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혁신회의는 국회의원 31명을 배출해 당내 최대 정치세력으로 불린다. 강 대표 본인은 경선에서 사퇴해 국회 입성에 실패했지만 상임대표가 됐다. 그러나 혁신회의와 강 대표는 언론에 대체로 부정적으로 언급된다. 친명, 강경, 팬덤, 개딸 등의 연관어와 함께. 특히 국회의장 후보 경선으로 촉발된 당원민주주의 논쟁은 부정적 보도 증가에 기여했다. 3일 여의도의 오피스텔에 자취방처럼 차려진 혁신회의 사무실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묻고자 한 것은 간단했다. 지난 총선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으로 당을 장악했다는 비판과 극성 팬덤을 앞세워 국회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비판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상임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6.03 ⓒ민중의소리 1시간을 예정한 인터뷰는 2시간 30분을 넘겨 간신히 ‘중단’됐다. 그는 거침이 없었고, 할 말이 많았다. 그의 말은 영광군과 광산구와 경기도를 넘나들었고, 5.18정신과 김대중, 노무현도 수시로 언급됐다. 특히 언론의 당원민주주의 폄하에 강하게 반박했다. 친명만 공천되고 비명은 탈락한다는 이른바 ‘친명횡재 비명횡사’ 논란에 강 대표는 “그게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이어 “작업을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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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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