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운완, 표준어가 될 수 있을까?
[알쓸문잡] 오운완, 표준어가 될 수 있을까?
- 최혜정 기자
- 입력 2023.11.20 01:25
- 수정 2023.11.20 02:12
- 호수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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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표준어가 표준어로 등재되는 과정을 톺아보다
바야흐로 신조어의 시대입니다. ‘오늘 운동 완료’의 줄임말인 오운완, ‘저녁 메뉴 추천’의 줄임말인 저메추 등 다양한 단어들이 새로이 탄생해 유행어가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에서는 표준어로 등재된 단어보다 신조어들이 더 많이 사용될지도 모릅니다. 신조어가 범람하는 시대 속에서 표준어의 현주소를 살펴봤습니다.
표준어, 헷갈리지만 쓴다
(장작을) 빠개다 vs 뽀개다
둘 중 어느 것이 표준어일까요. 정답은 ‘빠개다’입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살펴보면, ‘빠개다’는 ‘작고 단단한 물건을 두 쪽으로 가르다’라는 의미로 수록돼 있습니다. 이 외에도 ‘꼬린내’가 아닌 ‘고린내’와 ‘코린내’가 표준어인 것처럼, 다소 헷갈리는 표준어가 몇몇 있습니다. 김다영(국문·20)씨는 “국어를 전공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표준어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며 “그럴 때마다 사전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표준어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역사적 맥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 일제강점기부터, 자국어를 지키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언어 표준화 과정에서 강하게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조태린 교수(문과대·국문)는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라는 위기 상황에서 자국어를 지키기 위해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공표하는 등의 표준화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국민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산대 언어정보학과 서민정 교수는 “언어 속에 민족의 혼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남아 있는 것 같다”며 “이 때문에 맞춤법 규정을 잘 지켜야 한다는 강박도 생긴 듯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미디어가 표준어 중심주의 강화에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방송사에서는 사용해야 하는 단어에 대한 자체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데, 이는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조교수는 “방송사의 경우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더라도 기존에 사용하던 것만 일관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아나운서밖에 없을 듯합니다.
표준어가 되려면
지난 2011년, ‘짜장면’이 복수 표준어로 인정됐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아주 오랫동안 ‘자장면’만을 단독 표준어로 인정했지만, 실제 언어생활을 반영해 표준어 규정을 확대한 것입니다. 1988년 한국어 어문 규정이 만들어진 이래로 실제 언어생활을 반영해 표준어를 개정한 것은 2011년이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본래 단독 표준어였던 ‘개개다’와 함께 ‘개기다’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는 등 실생활을 반영한 개정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주 사용되는 단어라고 해서 쉽게 표준어로 등록되는 것은 아닙니다. 표준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조 교수는 “기존 어문 규정의 원칙을 위반하는 게 없는지, 다른 사례와 충돌하는 것은 없는지를 우선으로 본다”며 “이후 자체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하는 등 사용 빈도를 확인한 후 국어심의회에서 심의를 거쳐 표준어로 인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변화하는 언어 생활,
지금 우리 표준어는
그렇다면 신조어가 표준어로 등재될 가능성도 있는 걸까요?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사용된 신조어 938개 중 2015년까지 그 사용이 이어진 단어는 250개에 불과했습니다. 10개 중 7개의 신조어가 10년 안에 소멸한 것입니다. 조 교수는 “신조어는 대부분 유행의 성격을 갖고 있다”며 “신조어가 살아남아서 표준어로 등재되는 비율은 낮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신조어는 어떨까요? 원칙적으로, 오랜 기간 살아남은 신조어는 표준어로 등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표준어 규정」 제20항에 따르면 현재 널리 사용되는 단어를 표준어로 삼도록 규정합니다.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양명희 교수는 “표준어가 갖는 우월의 기능 때문에 ‘대박’ 같은 단어들을 표준어로 올려야 하는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면서도 “‘왕따’ 같은 비속성이 있는 단어도 사전에 등재된 기록이 있는 것처럼, 신조어의 표준어 등재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서교수는 “표현이 이상한지와는 상관없이 언중(言衆)이 선택한 표현에는 이유가 있다”며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표준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표준어는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상정되기 때문에 대중의 언어생활을 즉각적으로 반영하기란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표준어와 실생활에서 쓰는 언어의 차이는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양 교수는 “언중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언어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전했습니다. 결국 표준어와 실생활 언어의 괴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 괴리를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는 사전의 활용이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지난 2016년 개방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을 정식 개통했습니다. 이 사전에는 누구나 뜻풀이, 발음 등의 어휘 정보를 올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메추’를 검색해 보면 참여자 제안 정보에 ‘저녁 메뉴 추천을 줄여 이르는 말’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조 교수는 “심의나 고시 절차를 거치는 것이 아닌 사전을 활용함으로써 표준어로 상정되는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며 “표준어 규정에 언급되지 않은 많은 단어가 새 단어로 등록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언어는 권력자가 아닌 만인의 소유입니다. 표준어로 등재됐다 한들 사용되지 않는 단어는 힘이 없으며, 반대로 비표준어지만 널리 사용되는 단어는 막강한 힘을 지니게 됩니다. 건강한 언어생활을 북돋기 위해 실생활을 반영한 유연한 표준어 제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글 최혜정 기자
culture_shoc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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