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산 ‘한 달짜리 노동자’ 정혜경, 첫 여성 비정규직 국회의원 되다

 

22대 총선 진보당 정혜경 당선자


근로 계약기간은 한 달이었다
그달이 차면 종례할 때 이름을 불렀다
부르는 이름 속에 해고되는 사람과 해고되지 않는
사람이 분류되었다
이름들이 박스와 같았다
나갈 박스와 안 나갈 박스

그날이면 허름한 식당에서 환송식을 했다
우리끼리였다 해고된 언니들은
울었다

‘한 달짜리 인생’ 중(정혜경 시집 ‘을들의 노래’에서)


1975년생 정혜경은 대학을 졸업하고 2001년 마산수출자유지역(이 유서 깊은 지명을 인터뷰 첫머리에 들으며 약간 전율이 왔다)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취업했다. 일본계 기업의 카오디오 조립라인에서 일했는데 막 비정규직이 확산되던 시기라 법도, 룰도 없었단다. 같은 라인에 정규직, 비정규직이 섞여 일했는데 임금은 천지 차이고, 비정규직에겐 750%의 상여금은커녕 명절비도 일절 없었다. 근로계약 기간은 겨우 한 달이었다. 시에 담긴 그대로 매달 비정규직의 생사가 갈렸다. 그는 회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 5년 동안 60번의 근로계약서를 쓰며 살아남았다. 얼마나 진심으로, 악착같이 노동했는지 느껴졌다.

정혜경 더불어민주연합 당선자가 17일 서울 용산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회의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4.17 ⓒ민중의소리

마산 수출자유지역에서 한 달짜리 근로계약서 60번 쓴 정혜경 당선자

“김진숙 지도위원님이 대학 4학년 축제 때 오셨어요. ‘여대생들 가방 고를 때 뭘 보고 고르냐’ 하셔서 당연히 디자인을 보고 고르지 생각했는데, 그분 말씀이 ‘이 가방이 예쁘냐 안 예쁘냐 고를 때, 너희와 똑같은 나이 여공들이 가방 만들면서 손이 찢겨나가는 걸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냐’라고. 저는 그게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그가 늘 말하는 노동 현장에 들어간 이유다. 5년간 제조업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한 뒤 다시 지역의 여성노조에 들어가 당시 막 시작되던 학교비정규직 조직사업에 뛰어들어 십수 년 세월을 함께한 그는 이번 총선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진보당 국회의원 정혜경이 됐다.

정혜경 당선자는 창원의창에서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이었다. 조직력도 탄탄하고, 주민 반응도 상당히 좋은 것으로 평가됐다. 진보당에서도 초반부터 지지율 두 자릿수 이상 지역구로 분류됐다. 그러나 비례연합정당의 파견 후보에 대한 보수언론의 색깔론 공세가 집중되자 진보당은 후보를 교체하며 응수했다. 준비하던 지역구가 아니라 비례후보로 출마해달라는 갑작스러운 당의 요청에 정혜경 당선자는 “솔직히 지역에서 뛰느라 중앙 상황을 잘 몰랐다”면서 “연합정치와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대의 앞에 당의 깊은 고심이 느껴졌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민들 중에는 아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경남 지역 특성상 진보당 정혜경은 좋은데 민주당이랑 같이하는 곳으로 갔다니 안타까워하는 보수적인 분들도 많았다”고 그는 전했다.

정 당선자는 “노동자가 주인이고 국회의원은 명령을 실행하는 일꾼”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꾼이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는 자신이 노동운동을 시작했던 초기 비정규직 운동을 떠올리며 “민주노총 안에서도 비정규직은 고용이 불안해서 노조를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정규직이 이들의 근로조건 등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비정규직들은 희생을 감수하며 여러 업종에서 노조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가 몸담은 학교비정규직노조 등을 통해 민주노총 조합원 증가를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노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정 당선자의 결론이었다. 그는 “노조를 만들면 초반에는 단결력과 투쟁력이 올라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지나면 이것도 ‘체제 내화’ 된다”며 “결국은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노조만으로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정치권력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의 급식실’ 폐암 문제를 보면 사람이 죽어가는데 사회가 별로 생각을 안 합니다. 파업을 해도 애들 밥 굶기는 것에 초점이 있단 말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밥 한 끼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동자 생명을 갈아 넣고 있는가를 만천하에 알려야 됩니다. 학부모들도 놀라고 시민들도 깨닫고, 그래서 급식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법과 예산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정혜경 더불어민주연합 당선자가 17일 서울 용산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회의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4.17 ⓒ민중의소리

“노동자가 주권자이자 주인이고, 국회의원은 명령을 집행하는 일꾼이죠”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특히 민주노동당 시기 권영길, 단병호, 심상정 의원 등은 노동자 의원으로서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얻기도 했다. 그로부터 20여년 흐른 지금 정 당선자가 생각하는 노동자 정치, 노동자 국회의원은 무엇일까. 그는 ‘노동자 직접정치’를 설명하며, 그것이 진보당이 세 석에 불과하지만 진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근본이라고 강조했다.

“주인이고 주권자인 노동자들이 명령하는 것을 집행하는 일꾼으로서 저는 국회의원인 것이죠. 이런 원리로 의정활동을 하고 새로운 정치운동과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 조합원들을 만나면 ‘이제 나에게 부탁하지 마라, 명령을 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저를 국회로 보내신 것이고 저는 여러분의 명령을 집행하는 사람이라고.”

민주당과 연합을 하며 진보당이 독자성을 잃었다는 일각의 주장에 그는 “윤석열 정권의 검찰독재나 거부권 행사 등을 심판하는 부분에서는 앞으로도 협력해야 한다”며 “그러나 노동자, 농민 등을 대변하고 진보적인 입법을 하는 데서는 진보당이 적극적으로 견인하고 비판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12석을 차지한 조국혁신당에 대해서도 “검찰개혁 이슈 등에서 조국혁신당의 역할이 있었던 게 분명하고, 거기에 국민들께서 환호해서 12석을 얻으신 것”이라며 “그러나 노동자, 농민 등 기본계급이나 현장 문제는 잘 모르셔서 실수도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조국혁신당이 공약으로 내세운 사회연대임금제 비판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3명이 당선된 진보당과 법조인, 교수, 전문직 위주의 조국혁신당이 대비된다는 물음에 “그래서 진보당이 더 목소리를 높이고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당선자는 시 ‘일과 꿈에서’에서 “이제 거창한 꿈은 / 꾸어지지 않아 / 우리가 꾸는 꿈은 / 동일노동 동일임금 / 고용안정 / 노동조합 할 권리 / 이 세 가지이다”라고 적기도 했다.

윤석열 정권 2년은 노조 죽이기 2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화물연대에 이어 건설노조 때려잡기가 전방위로 이뤄졌고, 집회 제한, 노조 회계공시와 전임자 제한, 최저임금제 개악 등에 행정력이 총동원됐다. 그 과정에서 양회동 열사의 희생도 있었다. 정혜경 당선자는 한국노총 출신을 포함한 노동계 국회의원들이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양대노총과도 적극 연대해 반노동 폭주와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선 전후 진보정치를 새롭게 재편 또는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모두에서 나오고 있다. 정혜경 당선자도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선거연합이 이뤄지지 못한 것에 여러 번 아쉬움을 나타내며 앞으로 반드시 이룰 과제라고 재삼 강조했다.

“저는 창원 사람인데 우리 금속 노동자들이 너무 가슴 아파하거든요. 제발 하나가 돼서 오라는 게 그분들 말씀입니다. 진보정당이 하나가 돼야 집권하는 날도 오겠죠. 지금은 진보당이 세 석 됐지만, 이것을 초석으로 해서 전체 진보진영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민주당하고도 연합정치 하는데... 조금 차이가 있고 정파가 달라도 민주노총이 하나인 것처럼 진보정당이 하나가 돼야 대중이 지지하고 희망을 걸 거 아닙니까. 전략적 과제이고, 무조건 해야 됩니다.”

정혜경 더불어민주연합 당선자가 17일 서울 용산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회의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4.17 ⓒ민중의소리


정 당선자에게 마지막으로 지난해 전주을 보궐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으로, 특히 울산북구 승리와 부산연제 선전 등을 통해 진보당을 새롭게 보게 된 국민들이 꽤 있을 듯하다며 진보당이 제일 내세울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아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진보당은 당원의 3분의 2가 노동자고, 50% 이상이 비정규직입니다. 저는 주변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만든 당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언론에서는 통합진보당 후신이라고 막 프레임을 씌우지만 통합진보당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저는 진보당이 약자들의 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 농민, 일하는 서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당을 만든 것이죠. 평범한 사람들이 주권을 가지고,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에게 명령하는 정치를 하는 게 제 꿈이고 진보당의 정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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