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사건에 의해 좌우되었던 한국선거들
충격적사건에 의해 좌우되었던 한국선거들
한국 선거부정시비의 유형별 분석
곽동기 기자
기사입력: 2012/04/06 [23:52] 최종편집: ⓒ 자주민보
충격적사건에 의해 좌우되었던 한국선거들
한국 선거부정시비의 유형별 분석
곽동기 기자
기사입력: 2012/04/06 [23:52] 최종편집: ⓒ 자주민보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선거철이면 선거가 “꽃”이니 “축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국민의 입장에서도 선거는 자기의 입장을 옳게 대변해 줄 인사를 선출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마냥 TV 예능 프로그램을 관전하듯 마음 편히 보기 어렵다.
특히나 한국의 선거는 막판까지 부동층이 높은데다가 친미보수와 진보개혁의 첨예한 대결이 펼쳐지는 수도권 상당지역에서 판세를 가늠할 수 없는 박빙의 대결을 보이기 일쑤여서 끝까지 예측불허인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스쳐지나갈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면 표심에 2-3%의 영향을 주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당락결과를 뒤집어버리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전방위적 비리행위에 더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까지 터져 “대통령 탄핵”, “국회 청문회” 여론이 하늘을 찌르는 현 상황에서 집권세력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한국의 역대 선거가 조용히 치러진 사례를 찾기 힘들다. 선거 운동 자체도 치열하지만 박빙인 선거에 즈음하여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들도 선거과열에 한 몫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길지 않은 한국정치사에서 지난 시기 있었던 불법선거행위들을 다시금 각인하고 공정선거 안착을 위해 유권자들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1. 검은 돈이 오고 간 금품비리
선거를 치르려면 돈이 든다. 그러나 선거가 사회 공익을 위한 사업임에도 모든 비용이 국가 세금으로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후보자가 사용하는 선거비용의 경우 그 부담이 일차적으로 후보자 개인에게 돌아가게 된다. 만약 후보자가 선거에서 15%이상의 지지를 받을 경우 선거 비용이 모두 보전되며, 10% 이상인 경우 절반이 보전된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선거비용 보전 제한’에 대하여 “후보자 난립을 막기 위함”이라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1) 결코 있어서는 안 될 후보자 매수
후보자의 선거 자금은 합법적인 범위에서 관리되어야 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다. 충격적이게도 유력 후보자를 돈을 주고 사퇴시키는 이른바 ‘후보자 매수’ 행위도 한국 사회에 비일비재 하다. 대표적 ‘후보자 매수’ 사례는 1989년 강원 동해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벌어진 ‘한나라당 서석재 후보 매수 사건’이다. 서석재 전 의원은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던 인사다. 이 사건은 당시 김영삼 총재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의 서석재 후보가 경쟁 상대였던 신민주공화당 이홍섭 후보에게 후보를 사퇴하는 대가로 1억 5천만 원을 주고 매수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2006년 5·31 지방선거 때는 한나라당 이대엽 성남시장 후보가 이관용 후보를 매수했다는 혐의가 제기돼 파문이 일었다. 당시 이관용 후보는 출마포기 대가로 5억 60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다. 수사결과 이대엽 전 시장은 선거운동 중 돼지고기 편육과 격려금 등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고 당선 무효처분을 받았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도 후보자 매수 사건이 있었다. 전북도의원인 K 씨의 동생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예비후보에게 불출마 대가로 2000만 원을 건넸다가 징역 1년형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후보자 매수 사건은 최근까지 발생하는 심각한 민의 왜곡 사례다.
‘후보자 매수’는 국민의 선택지를 바꿔버리며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심각한 행위다.
2)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
‘돈’이 선거에 개입한 사례들은 각종 선거 비자금 사건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선거 비자금은 상당량이 유권자들에게 다양한 경로를 통해 흘러들어감으로써 선거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에 대한 대표적 사건은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기업들로부터 847억9천만 원에 이르는 대선 자금을 받은 일명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이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측근이었던 서정우 변호사가 엘지그룹에 대선자금 지원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기업이 한나라당에게 대선 자금을 전달한 과정이 기상천외하다. 엘지그룹은 비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150억 원이 넘는 현금을 컨테이너에 가득 채우고 이를 탑차로 옮겨 경부고속도로의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 세워 놓았다. 한나라당은 서정우 변호사를 통해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이 탑차를 직접 운전하여 당사로 옮겼다. 이후 한나라당은 같은 방법으로 현대자동차에 두 차례에 걸쳐 109억 원을 전달받았으며, SK 그룹에 100억 원, 한화그룹에 40억 원, 그리고 삼성그룹에 채권 325억 원과 현금 40억 원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한나라당이 모금한 비밀 선거 자금 중 밝혀진 것이 847억9천만 원에 이르렀으며 정치인 30여명, 기업인 20여명이 기소된 바 있다.
이른바 ‘제2의 차떼기 사건’으로 불리는 2011년 ‘옥매트 차떼기 사건’도 있다. 이 사건은 당시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인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이 체육회 후원업체로부터 7억2000만원 상당의 옥매트 900개를 기부 받아 한나라당 권택기, 권영진, 김성태, 주광덕, 김영우 의원에게 일부 선물로 전달했으며, 나머지 500개 지역구 관리에 유용한 사건이다. 이처럼 ‘후보자 매수’ 이외에도 거액의 선거 비자금이 조성되어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3) 이명박 대통령의 96년 총선비리
선거과정에서 불법적으로 쓴 돈을 축소 신고하여 합법으로 가장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 사례는 1996년 당시 이명박 국회의원 후보의 선거비용 허위신고를 들 수 있다.
1996년 4·11 총선 당시 서울 종로에서 이명박 후보가 민주당 노무현, 자민련 김을동 후보 등을 누르고 당선됐다. 그런데 당선 직후 공개된 선거 비용이 문제였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스스로 밝힌 재산규모가 262억 원 가량의 재력가였고, 그가 후보 중 가장 공세적인 선거운동을 전개했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가 공식선거비용보다 더 적은 선거비용을 신고하자 뒷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명박 후보의 선거비용 축소 의혹은 곧 사실로 밝혀졌다. 총선 당시 이명박 선거본부의 선거기획을 담당했던 김유찬이 1996년 9월 10일, 국민회의 당사에서 “이명박이 총선 당시 전화홍보 및 각종 행사비용 등으로 6억8000만원을 썼다”고 폭로한 후 가족들과 홍콩으로 출국한 것이다. 결국 이명박 후보는 당선 후 김유찬을 회유하여 해외로 도피시키고 선거비용을 허위 신고한 혐의로 1996년 10월 9일 불구속 기소되고 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할 위기가 불거지자 사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거기서 BBK로 유명한 김경준을 만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례처럼 ‘돈’과 관련한 선거비리들이 많다는 것은 선거 결과가 ‘돈’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좌우될 소지가 많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2. 선거 결과 흔드는 ‘북풍’ 사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것은 ‘돈’ 뿐만 아니라 ‘북풍’도 있다. 군사적 충돌이 ‘북풍’으로 비화 된 대표적 사례는 1996년 총선을 일주일 남짓 남겨놓은 4월 6일경, 판문점 부근 북한군의 일련의 군사적 움직임을 ‘판문점 무력시위’라고 이름 붙여 언론에 대대적으로 유포한 1996년의 이른바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이다. 김영삼 정부 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한 ‘96년 4월 15대 총선 직전 발생한 판문점 북풍사건 관련 보고’가 밝혀지면서 진상이 드러났다. 보고는 해당 사건은 과장·왜곡해 공포와 불안 및 긴장을 조성해 15대 총선에 이용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신동아’는 이 사건을 두고 2000년 6월호에서 “총선을 앞둔 시점에 청와대와 국방부 및 합참이 안보상황을 표와 연결시키기 위해 북풍을 조작했다는 것”이 보고서 내용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북풍’에는 재야, 야권인사들을 북한의 간첩으로 몰거나 특정 사건의 진상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사건을 북한에 의해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하는 ‘조작사건’도 있다. 1992년 대통령 선거 두 달 전에 기획된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 결과 각종 고문으로 인해 확대, 과장된 사건임이 밝혀졌다.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은 ‘조작사건’과 ‘색깔론’까지 결합된 전형적인 선거용 ‘북풍’이었던 것이다.
3. 충격적 테러의혹
각종 선거비리가 즐비하다보니 한국정치에서는 선거에 나선 유력 후보를 암살하여 제거하거나 혹은 제거를 시도함으로써 선거결과에 치명적 영향을 주었다는 의혹도 존재한다. 이른바 선거에 ‘테러’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1) 신익희, 조병옥 후보 독살의혹
한국의 경우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의 유력 후보가 사망한 사건은 1956년 5월 15일 치러진 제3대 대통령 선거 직전 발생한 바 있다. 바로 1956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신익희가 선거 열흘 전에 사망한 사건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신익희는 진보당 창당을 준비하던 조봉암과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후 현직 대통령이자 후보로 나선 자유당 이승만의 막강한 대항 후보로 등장한 상황이었다.
황당한 것은 1960년 선거에서도 야권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 후보가 선거를 한달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사망하였다는 점이다. 신익희, 조병옥이 갑자기 사망함으로 이승만은 단독후보로 출마해서 대통령직에서 낙마할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중앙정보부 창립 멤버 조웅 목사는 ‘신익희 독살설’에 대하여 2003년 충격적인 증언을 하였다. 조웅 목사는 “경무대(현 청와대) 비서실장 이기붕이 엄00과 최0을 통해 김지웅으로 하여금 해공 선생(신익희)을 제거토록 한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은 해공이 탄 열차에 같이 있었습니다. 엄과 최가 김지웅을 시켜 열차 안에서 먹을 것을 파는 장사꾼을 매수해서 해공에게 독을 탄 물을 마시게 하는 수법으로 암살했습니다.”고 증언하였다. 조웅 목사는 자신의 주장이 “이승만 정권 시기 미 방첩대(CIC) ‘3총사’라고 불리던 최0, 조00, 엄00의 증언에 기초한 것”이라 하였다.
2) 자작극으로 드러난 ‘이승만 암살 미수 사건’
유력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자작극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1955년, 한국전쟁 관련 기념행사장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이 나재하의 권총 총격을 받은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나재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등 뒤 2미터 거리에서 방아쇠를 당겨 암살을 시도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사건 이후 대통령 권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었다.
중앙정보부 창립 멤버 조웅 목사는 당시 이 사건도 “이승만 정권 시기 미 방첩대(CIC) ‘3총사’라고 불리던 최0, 조00, 엄00이 관여한 사건”으로 증언하고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 사건이 자작극이었다는 것이다. 조 목사에 따르면 최 모 등 “미 방첩대(CIC) 3총사”가 김시현에게 권총과 총알을 건넸으며 다시 김시현이 나재하에게 권총과 총알을 건넸다고 한다. 그런데 조 목사는 당시 총알이 실제 발사되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실제로 총알이 발사됐다면 큰일 나는 것 아닙니까? 최0이 이들과 접촉해서 한 달 동안 물에 담가 둔 권총 알을 제공해 고의로 불발사건을 일으키고 이승만 권력을 한층 강화하는데 이용한 것이죠.”라고 증언하였다.
3) 박근혜 커터 칼 피습사건
선거 국면에서 벌어지는 정치인을 향한 피습은 2006년에도 발생했다. 바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한 커터칼 피습사건이다.
선거를 열흘 앞둔 2006년 5월 20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7시25분쯤 서울 서대문구 신촌 현대 백화점 앞에서 열린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 도중 지충호 씨에게 커터칼로 피습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는 “지충호씨는 범행에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사무실을 직접 찾아 유세 일정을 확인하고 지리를 잘 아는 신촌 현대백화점 앞을 범행 장소로 택했다”면서 이 사건을 ‘준비된 테러’로 규정했다. 이와 더불어 세간에는 박근혜 대표에 대한 테러가 자작극이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승만 암살 자작극’처럼, 과거부터 선거 국면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해왔기 때문이다.
2006년 지방선거는 박근혜 대표의 커터칼 피습사건 이후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되었다. 문제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한 원인이 박근혜 대표의 피습사건이었다는데 있다. 당시 주요 언론들은 이 사건이 선거막판 부동층이 한나라당으로 몰리는 현상을 불러온 것으로 일제히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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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국의 정치사에는 선거시기마다 각종 충격적인 사건들이 없지 않았다.
선거가 외부적 돌발 변수에 의해 휘둘리는 것은 국민과 국가의 미래에 백해무익하다. 사건의 진상을 떠나서, 선거 국면에서 충격적인 사건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집권세력이 유권자들을 얼마나 우롱하였나를 확인해준다.
국민의 삶을 결정할 각 정당의 정책이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고 ‘돈’과 각종 ‘사건, 사고’에 묻혀버리는 것은 민주주의에 재앙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극명히 드러낼 뿐이다.
민감한 선거 정국에서 실제 이와 같은 사례가 다시 발생한다면 그 여파는 가늠하기 어렵다. 시민사회는 이번 총선이 그야말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거가 될 수 있도록 지대한 관심 속에서 끝까지 예의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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