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권영대 - 딜레마에 빠진 UDT 대대장
지난주 목요일(2010. 2. 16) 천안함 항소심 제3차 공판이 서울고등법원 서관 312호 법정에서 열렸습니다. 항소심으로는 세 번째 공판이었지만, 이전 두 번은 인신청의 범위를 논의하고 확정하는 준비공판이었고, 이번 3차 공판이 실질적인 항소심 첫 증인이 출석하는 공판이었습니다.
항소심 첫 증인으로 출석한 권영대 대령, 그는 천안함 사고 당시 UDT 대대장의 직을 맡아 초기 천안함 수색과 관련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가진 실질적인 지휘관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침몰한 천안함 수색을 위한 잠수, 수색, 인양을 위한 준비 업무 및 UDT(수중폭파대), SSU(해난구조대), EOD(수중폭파대) 인원을 통제하는 업무를 총괄하였습니다.
따라서 그가 관여한 업무는 함수 및 함미 최초발견시 부이설치, 수중 접근로 확보를 시작으로 제3의 부표 논란, 한주호 준위의 죽음, 함미/함수 인양 및 시신 수습, 쌍끌이어선 수색, 1번 어뢰의 인양 등 업무 전번에 걸쳐져 있어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어 대단히 비중이 높은 증인인 셈입니다.
그런 그가 작년 봄 (2016. 3) 책을 한 권 출간합니다. '폭침 어뢰를 찾다' (부제: 천안함 수중작업 UDT 현장지휘관의 56일간 사투 | 조갑제닷컴) 제목으로 출판한 그의 저서에는 그가 작업했던 내용이 일자별로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도 적지 않아 천안함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에(진실이든 거짓이든) 도움이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의 천안함 수색과 수습업무에서 비중있는 역할 뿐만아니라 그가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저서로 출판하였다는 점이 국방부와 검찰로 하여금 항소심에서 그를 첫번째 증인으로 출석케 한 주요 배경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즉, 생생한 기록과 증언으로 피고인이 주장하는 것을 탄핵하겠다는 초강수를 둔 셈이지요.
그러나 과연 그들의 뜻대로 순조롭게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입니다. 책을 펼쳐 낸다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말로 주장하는 것과 글로 주장하는 것은 무게감 자체가 다릅니다. 말은 허공 속에서 흩어져 사라질 수도 있고, 잘못 전달될 수도 있고, 잘못 들을 수도 있지만 글은 있는 그대로 활자로 남아 보는 이들에게 정확하게 각인시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책(출판물)이 갖는 힘은 매우 큽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실만을 담았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효과가 극대화 되기 때문입니다. <책까지 내었는데 설마 거짓을 활자로 찍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책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이야말로 절대 피할 수 없는 족쇄가 됩니다. 발목이 잡히게 되는 것이지요.
권영대 대령의 저서 '폭침 어뢰를 찾다'가 진실의 기록이 될지, 아니면 거짓의 기록이 될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여러 검증과정을 거쳐 그 속살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제3차 공판 법정 스케치
검찰이 권영대 증인에게 질문한 주요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재판장 : 침몰의 원인을.. 잠수사들이 접근하면 알 수 있는 상황인가요?
증인 : 알 수 없습니다. 인양할 때까지 알 수 없습니다. 수중 2~3미터 들어가면 거의 안보입니다. 시야도 겨우 30센티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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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검사는 제가 썼던 칼럼을 문제 삼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검사 : (공소사실 일부를 읽어주며) 다음은 피고인이 2010. 3. 31 피고인이 운영하는 '서프라이즈'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잠수사가 접근하는 순간, 침몰의 원인은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파손된(절단된) 부위의 형태, 절단면만 보면 폭파인지, 절단인지 전문적 감정 결과가 나옵니다... 따라서 결론은 이미 나왔을 터인데, 원인발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어느 쪽으로 사건을 몰고 갈지, 혹은 어떻게 이용해 먹을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잠수사가 접근하는 순간 침몰의 원인을 곧바로 밝힐 수 있었는가요?
증인 : 알 수가 없습니다. 확인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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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제가 인터넷에 올렸던 글이 허위임을 입증하기 위해 권대령에게 물었고, 권대령은 알 수 없다고 부인합니다. 검찰이 이 부분을 문제삼는 이유는, 잠수사가 최초 접근을 한다고 해도 사고원인을 알 수가 없는데 피고인이 마치 잠수사가 접근하면 사고원인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허위주장을 하여 해군과 UDT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질문에서 권대령은 모순된 답변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사고원인이 궁금하지 않았겠느냐, 왜 천안함이 이렇게 됐는지 잠수사들 얘기는 없었느냐"라고 재판장이 물었는데도 "따로 그런 얘기는 없었다"라고 부인하던 권대령은 이후 "침몰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대해, 잠수사들에게 함수의 절단면을 촬영해 오라는 지시를 했다며 이전의 답변과는 배치되는 증언을 합니다.
"최초 침몰에 여러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처음에 내부폭발 얘기가 나와서.. 저도 같은 유형의 함장을 해봤는데 (내부폭발로) 그렇게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증빙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부수색할 때 수중카메라로 찍을 수 있으면 찍어봐라. 그래서 근접거리에서 찍어온 것을 보니 폭발로 탄 것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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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뜨악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앞에서 답변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권대령은 최초 접근시 수중촬영을 지시했고, "무엇이든 잡히는 것이 있으면 하나만 갖고 나오라"는 지시를 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최초 접근시 생존자 수색등의 업무에 앞서 사고원인을 위한 업무지시를 하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실토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재판장이 다그칩니다. "아까 사고원인 조사는 임무를 부여받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뭘로 침몰했는지를 카메라로 찍었다는 건 말이 안맞지 않느냐"고 지적하자 권대령은 "최초 위치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하라는 것으로 사고원인 조사와는 다르다"고 얼버무립니다.
저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내심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유는 그때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권대령 스스로 자신이 출판한 책에 소상하게 적었었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신문이 끝니고 변호인단의 반대심문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피고인 저의 질문시간이 주어졌을 때 저는 권대령 그가 쓴 책을 프로젝터게 올려놓고 스크린 화면에 띄웠습니다.
피고인 : 증인이 출판한 책 '폭침 어뢰를 찾다' 43~52 페이지를 보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증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3월 29일) 19:50분경 저녁 잠수가 시작되었다. (중략) 이준수 중사가 찍어온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절단면이 불에 탄 흔적이 없고 굉장히 날카롭게 찢어져 있었다. 보고용 동영상 편집을 박수철 대위에게 지시하고, 대원들이 있는 함수 상륙군 침실에 들렀다. (중략)
(3월 30일) 총장님(해군참모총장)이 이틀째 지휘를 하시면서 매우 예민해지신 것 같다. 역정을 내시는 일이 잦아졌다. 편집된 동영상을 새벽 1시경 보고드렸다."절단면 확인결과 그을음 흔적도 없고, 회수된 물건 자체도 탄 흔적이 없어 내부폭발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중략)
이명박 대통령 현장 방문 - 천안함은 내부폭발 아님을 보고 총장님이 설명을 이어나가는 도중에 (이명박 대통령이) "내부에서 폭발한 것이 아닌가요? 아니면 이렇게 동강이 나겠어요? 내부에서 폭발할 소지가 충분히 있잖아요?"하셨다. 총장님께서 아니라는 답변을 쉽게 하지 못하였고 어느덧 궁지에 몰리시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옆에 있던 윤공용 제독에게 급하게 말씀드렸다. "아니라고 말씀하십시오." "니가 말씀드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UDT 대대장 권영대 중령입니다. 내부폭발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초 잠수시 절단면과 내부에서 불에 탄 흔적을 우선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확인 결과 절단면 부근과 근처에 있었던 모든 물건들에서 불에 타거나 그을음 자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내부폭발은 없었습니다!" 단호히 잘라서 답변을 해버렸다. 순간 분위기는 싸늘했지만 덕분에 대통령님의 송곳같은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다.
피고인 : 자, 어떻습니까? 증인은 스스로 자신의 책에 최초로 접근할 당시 수중촬영을 지시하였고, 그 영상을 편집할 것을 지시하였고, 스스로 분석하여 내부폭발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상부에 보고하였으며, 이명박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증인은 최초에 촬영한 동영상 원본을 보관하고 있습니까? 그 동영상을 상부에 보고하였습니까? 합조단이 구성된 후 해당 동영상을 제출하였습니까? 피고인도 합조단 조사위원이었는데 그런 동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증인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천안함 사고 직후 최초의 동영상인데 그 동영상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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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의 질문에 대해 권대령은 얼버무리듯 답변을 하였는데 요지는 해당 동영상은 편집하여 보고하였고, 상부나 합조단에 제출하지은 않았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내용의 답변이었습니다.
결국, 권영대 증인의 증언을 통해 제가 썼던 글 (잠수사가 처음 접근하면 사고의 원인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던 검찰의 노력은, 실제로 최초접근시 원인을 밝히기 위해 촬영하고, 편집하고, 분석하고, 보고했다는 권대령의 증언에 부닥쳐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권대령은 자신의 책으로 자신의 눈을 찌른 결과가 된 것이지요.
제가 그러한 주장을 하였던 배경은 제가 항해사 출신이었고, 해군장교 생활의 경험을 통해 해군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접근해야 하고 그렇게 조치했으리라는 추정을 바탕으로 글을 썼을 뿐인데, 그것을 <허위주장 적시 및 유포>라는 유죄의 틀 속에 가두려 시도했던 검찰과 국방부의 행위가 애당초 무모했던 것이지요.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하였던 권영대 대령에 대해 피고인측의 질문내용이 방대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재판장께서 "그렇다면 권영대 증인에 대해 피고인측이 궁금한 것을 심문할 수 있도록 별도로 증인신청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대해 피고와 변호인단이 동의함으로써 제3차 공판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진실을 찾아 가는 길이 고난하고 힘들지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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