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주의·조합주의에 갇힌 한국 노동운동
[디지털 경제와 서비스산업] (6) 디지털 전환과 노동운동의 혁신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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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디지털경제에 대한 한국 노동조합의 대응은 매우 취약하다. 몇 개 산별노조가 연구보고서, 토론회 등을 조직한 바 있으나, 노조 차원에서 대응기조와 지침 등을 제시한 사례는 없다. 노조 대응이 느린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4차 산업혁명은 자본의 이데올로기라고 폄하하면서 기술변화를 일부러 무시하는 경향이다.
일부 의견그룹은 4차 산업혁명은 실체가 없는 거품이라고 주장한다. 근거로 세계적으로 생산성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수치를 제시한다. 거품론자들은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전제’에 맞서 담론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실체가 없다면, 실체에 맞서는 대응이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현실 속에서는 오로지 담론투쟁만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평등사회노동연구원 박장현 원장은, 이러한 거품론은 방어적인 ‘일자리 지키기 투쟁 전략’으로 기술 변화의 실체가 나타난다면 조만간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될 후퇴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시간이 더 가야 증명되겠지만, 기술변화를 부정하는 거품론자들의 예측은 이미 곳곳에서 틀렸음이 밝혀지고 있다. 국내 전기차 판매 대수가 2014년 1075대, 2015년 2907대, 2016년 5914대, 2017년 1만3826대로 증가 추세이고, 2018년 들어 1월 한 달 만에 2만대(주문포함)를 넘어섰다. 2035년 예정인 자율주행 상용화 시기도 계속 짧아지고 있다. 산업부와 국토부는 경기도 화성에 32만km² 규모의 자율주행 실험도시를 준공하며, 서울 도심에서 실제 도로를 활용한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대구에도 15km² 구간의 주행평가 환경을 조성해 2020년 자율주행차 상용화(고속도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생산성이 감소했다는 주장도 검토가 필요하다. 부가가치나 GDP성장률 등 수치상으로 생산성이 감소한 것은 여러 원인이 있으며, 그것이 인류의 생산력 감소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제러미 리프킨이 주장하는 ‘한계비용 제로 경제’도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디지털경제에서 거대한 생산력 증가가 있었지만 이것이 공유경제, 오픈소스 제공과 무료 복사(사실 수십만 원의 가치가 있는 소프트웨어, 음악, 교육 등 각종 데이터와 지식이 인터넷에서 무료로 제공되거나 다양한 경로로 공짜 사용이 가능함) 등으로 대중에게 배포되는데 이는 가사노동처럼 GDP에 집계되지 않는다. 즉 생산력의 증가가 있었지만 이것이 화폐가치로 측정되는 생산성 증가로 집계되지 않은 것이다.
둘째, 노동조합 활동이 임단협 중심으로 진행되어,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이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로 인해 당장 고용이나 작업과정에 어떤 변화가 온다면 노조가 개입하겠지만, 현안이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 ‘경제적 의제를 벗어난 이슈’ 등은 접근하기 어렵다. 대공장의 경우 평균 연령이 50대에 가까운데, 고참 조합원들은 “나 퇴직할 때까지는 별 문제 없겠지”라며 기술과 산업의 변화는 5~10년 이후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무감각하다. 이와 같은 경제주의의 뿌리는 개인 이기주의에 기반 한 것이다. 이는 자기부서 물량우선주의, 업종이나 직종이기주의로 표출되어 전체의 목표와 단결을 훼손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지부 판매지회(정규직)가 판매연대 비정규직 노동자(딜러)들의 금속노조 가입에 반대해 1년이 넘게 노동조합 가입이 유보되고 있다. 또 전교조의 일부 조합원들은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고, 공공부문의 일부 정규직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한다. 기아차지부의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지부 조합원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처럼 곳곳에서 자신의 지위와 이익을 우선하는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해가고 있다.
경제적 이익도 중요하지만, 노동운동의 근본적 목표는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기업별 울타리에 갇힌 조합주의 때문이다. 이는 지불능력이 있는 대공장과 공기업을 중심으로 만연해 있다.
원래 노동운동의 주요 목표는 산업민주주의의 실현이었다. 이를 위해 산업과 경제의 민주화에 노조의 개입이 필요한데, 유럽의 노사관계에서는 공동결정제와 경영참여 등이 제도화되어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 본연의 목표가 실종된 한국에서, 대부분 노동조합의 활동은 ‘교섭 준비’, ‘긴 교섭기간과 투쟁기간’, ‘평가와 선거’로 마무리 된다. 대공장 대의원들의 주요 활동도 “물량확보-장시간노동-고임금·고용유지” 중심이다. 물량을 확보해 잔업·특근 등 장시간노동을 하고, 이로써 임금을 극대화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대의원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 되고 있다. 정규직이 기피하는 공정을 외주화 하거나 비정규직을 투입하는데 동의하기도 한다. 노동조합의 의제는 기업내재화 되고 연대투쟁이나 사회정치적 활동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노조 집행부는 2~3년의 짧은 집행기간에 성과를 남기기 위해서, 조합원들의 집단적인 힘을 동원해 압력을 행사하는 방법보다는, 사측과의 일정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쉬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결국 노동조합의 의제는 ‘노동시간 단축’, ‘제도개선’, ‘비정규직과의 연대’, ‘미래전략 수립’ 보다는 사측이 들어 줄 수 있는 ‘물량확보’, ‘잔업·특근 보장’, ‘성과급 인상’ 등 단기적인 과제에 묶이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높은 임금 인상을 했지만 기본급 등 고정급 비중이 낮아 여전히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고, 주간연속2교대 등은 뒤늦게 적용되었다. 특히 호황기에는 일정한 룰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만 싸우는 노사 담합관계가 형성되기 쉽다. 반면 불황기나 구조조정 시기가 오면 자본도 지불능력이 없으므로 담합거래는 어려워진다.
디지털화에 따른 대응은 미래를 위한 사업이며, 산업과 경제를 바꾸는, 즉 세상을 바꾸는 전략의 일환이다. 우리가 한때 개량적 운동으로 후퇴했다고 비판했던, 유럽 노조들은 우리보다 앞서 산업민주주의의 방향과 기조로 디지털화에 대응하고 있다.
유럽 노조들은 최근의 기술진보를 ‘디지털화’로 규정하고, 과거의 점진적이고 제조업 위주의 변화가 아닌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로 판단해, 이 급격한 변화로 인해 일자리의 축소와 기본권 후퇴를 우려했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적극 대응해 디지털화가 이윤창출 위주가 아닌, 공평한 분배와 불균형 해소를 위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유럽노동조합총연맹(ETCU)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디지털화에 대한 접근법이 교육훈련 및 기술표준에 관련된 공학적이며 기업중심적으로 단편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노조총연맹은 디지털화가 단지 기술적인 이슈나 노동수요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산업 및 서비스 부문의 전통적인 일자리가 디지털 일자리로 전환되는 것이며 이것은 미래사회와 구성원의 통합에 대한 문제라고 보았다. 따라서 디지털화는 노동계의 핵심 이슈이며 공정한 디지털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4개의 의제를 제출했다.
김성혁 경영학박사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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