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2차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습니다. 5월 2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많은 언론이 북미정상회담과 연관해 다양한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를 보면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TV조선 ‘김여정,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개만 까딱’
▲ 5월 27일 TV조선 뉴스특보 보도,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을 만나는 비교 영상을 자료 화면으로 내보냈다. 문 대통령을 영접하는 김여정의 표정은 시진핑 주석 때와 비슷할 정도로 환했다. ⓒTV조선 화면 캡처
TV조선은 5월 27일 오전 뉴스특보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을 분석했습니다. 패널들의 대화 도중 TV조선 앵커는 ‘김정은이 요청해서 만나자고 해놓고, 김여정은 시진핑 주석 때와는 다르게 고개도 까딱 안 했다’라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TV조선은 자료 화면을 통해서도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의 영상을 비교해서 보여줬습니다.
TV조선 앵커의 말과 자료 화면만 보면 마치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을 홀대한 듯한 인상이 듭니다. 그러나 김여정의 모습을 보면 그 누가 봐도 환하게 웃으며 문 대통령을 영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을 떠날 때 바깥쪽에 서 있는 김여정을 향해 손을 건넸고,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악수를 했습니다.
이날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을 영접하는 의전을 담당했습니다. 시진핑 때처럼 단순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TV조선은 김여정이 시진핑 때처럼 90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한에 끌려 다니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싶었나 봅니다.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남과 북은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만나야 한다’는 발표문 관련 뉴스. 다른 주제에 비해 뉴스 언급량은 그리 많지 않다. ⓒ네이버뉴스 화면 캡처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국민과 전 세계가 놀란 점은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에 너무나 쉽게 남북 정상이 만났다는 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문에서 ‘남과 북은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만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직접 소통’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역사상 처음 벌어진 형식 파괴의 만남에 대해 온 국민은 놀랬지만, 언론은 그다지 감흥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발표문 전문 등을 통한 보도였고,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는 깊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남북대화 방식의 의미를 축소 보도하는 것은 과정보다는 결과만 보도하겠다는 태도로 이해됩니다.
왜 기자들은 묻지 않았을까?
▲문재인 대통령을 기자 질문이 끝난 뒤에 스스로 발표가 지연 된 이유가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TV 화면 캡처
문재인 대통령은 2차남북정상회담 발표문 이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이 다 끝난 뒤에 문 대통령은 회담 결과를 27일에 발표한 이유는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마도 문 대통령은 기자들이 왜 발표를 하루 뒤에 했는지 먼저 질문을 할 줄 알았나 봅니다.그러나 아무도 묻지 않았기에 스스로 마지막에 설명을 한 것입니다.
기자들은 왜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미 기자들은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별로 중요한 질문이 아니라서?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신문은 선생님] [예쁜 말 바른 말] [338] ‘무례한’과 ‘드잡이’ 류덕엽 교육학 박사·전 서울 양진초 교장 입력 2024.03.13. 03:00 0 일러스트=정서용 *한 시민 단체가 무뢰한 정치인들의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요한 경기 전날 저녁 톱스타 두 선수가 드잡이하며 팀 내 갈등이 불거졌다. 위 기사문에 나온 ‘무뢰한’과 ‘드잡이’ 중에서 잘못 쓰인 말을 골라 보세요. 정답은 ‘무뢰한’입니다. ‘무뢰한(無賴漢)’은 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일정한 소속이나 직업이 없이 불량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해요. 줄여서 ‘무뢰’라고도 해요. 발음이 비슷한 ‘무례(無禮)’는 태도나 말에 예의가 없음을 뜻하는데 의미상 차이가 있으니 구별해서 써야겠죠. ‘드잡이’는 서로 머리나 멱살을 움켜잡고 싸우는 짓을 뜻하는 말이에요. 유의어는 ‘격투, 난투, 몸싸움’ 등이 있어요. 예를 들면 ‘드잡이 싸움’, 두 친구가 말다툼을 하다가 갑자기 드잡이하는 바람에 말릴 겨를이 없었다’와 같이 써요. 또 빚을 못 갚은 사람의 가마나 솥 따위를 떼어 가거나 세간을 가져가는 일을 뜻하지요. 예를 들면 ‘한때 드잡이를 당할 만큼 어려웠지만 성실하게 일해 극복했다’와 같이 쓸 수 있어요. ‘드잽이’ ‘디잽이’는 강원·충청 지역에서 쓰는 방언이고, 간혹 ‘뒤재비’를 쓰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비표준어랍니다. ‘드잡이’는 접두사 ‘드-’와 ‘잡-’이 결합한 ‘드잡-’과 접미사 ‘-이’가 결합한 것으로, 이와 관련된 ‘드잡다’는 ‘매우 세게 잡다’라는 뜻을 가진 북한어예요. -일제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무뢰한이라며 차별했다. -”젊은이와 드잡이하는 어르신을 보고도 말리지 않고 구경만 하다니, 어찌 그럴 수 있나?” 류덕엽 교육학 박사·전 서울 양진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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