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감독과 편집국장

 

강기석 | 2020-10-15 08:43:55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손혁 감독의 사퇴를 두고 말이 많다. 요즘 프로야구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정은 잘 모르지만 들리는 말로는 구단주 역할을 하는 인사가 경기운영에 지나치게 간섭했고 이에 반발한 손 감독이 사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문득 내가 아주 오래 전 편집국장으로 취임하던 날,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 선배가 일부러 내 방으로 찾아와 건네 준 덕담이 떠오른다.

“강 국장~ 신문사 편집국장은 연합함대 사령관이나 프로야구 감독 같은 역할을 하는 자리라네.”

연합함대 사령관이나 프로야구 감독은 자기를 임명해 준 더 높고 센 사람이 있겠지만 일단 전투(게임)에 임하면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누구의 지시를 받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의 지략과 경험과 결단만으로 싸우고 그 승패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지 않겠는가.

매일매일 신문을 제작하는 편집국장도 그러한 독립심과 책임감과 각오로 현장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오래 전 미국의 한 저명한 언론인이 갈파한 바 있는데 선배께서 그 말을 내게 덕담으로 전해 준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편집국장 혹은 보도국장들의 형편은 어떠신가. 손혁 감독보다 형편이 나으신가. 사주로부터 임명된(형식적으로 기자들의 동의를 획득한) 사영언론의 편집국장, 보도국장님들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영언론은 이미 맨 꼭대기 사주로부터 말단 기자에 이르기까지 일본식으로 표현하면 만세일계, 대한민국 검찰식으로 표현하면 기자동일체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다.

그러므로 편집국장은 그저 그 위치에서 늘 사주의 심기를 살피고 기자들이 딴 생각, 딴 짓을 하지 않나 감시하며 현장 지휘자의 책무를 다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독립’이니 ‘책임’이란 단어들이 별 의미를 가질 리 없다.

문제는 사영언론이 아닌 언론사(공영언론 및 이른바 진보언론) 편집국장, 보도국장님들이다. 이들은 사주로부터 임명된 것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자리이므로 그야말로 오로지 자신의 식견과 언론관과 리더십으로 (개인적으로는) 후배 기자들을 지휘 통솔하고 (회사 전체로는) 일체의 외부적 간섭으로부터 독립하여, 사주의 개인적 이익에 복무하는 사영수구족벌언론에 맞서 참언론을 지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한 기대가 지금 충족되고 있는가.

한 언론사의 수준은 그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의 저널리즘 수준과 정확히 일치하는데 사영수구족벌언론사가 아닌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이 이 시대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그러한 언론관을 장착하고 있는가.

매일매일 무언가 지시(암시)하고 방향을 가리켜 주는 사주가 없는 환경이 기꺼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한 것은 아닌가. 사주가 아닌 기자들이 뽑는다는 제도적 장치가 편집국 밖으로부터의 독립을 보장하는 대신 내부로 향해야 할 국장의 리더십에 결정적 손상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끊임없이 출입처 취재원들과 결탁하며 사영언론 기자들과 경쟁하고 그들을 감시하기는커녕 그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며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고 싶어하는 편집(보도)국 내 일부 힘있는 부서 혹은 일부 야심가 중간 보스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손혁 감독의 고뇌와 결단은 수구족벌사영언론 편집(보도)국장 말고 (그들은 원래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독립성을 침해받을 리도 없으므로) 참언론을 지향(해야)하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 몫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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