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재촉하는 봄비와 여기저기 피고 있는 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와 피는 잎을 시샘하는 잎샘추위가 있었습니다. 바닥에 쌓이지는 않았지만 새벽에 펑펑 내리는 눈을 찍어 올려주신 분들이 계셔서 눈 구경을 하기도 했습니다. 들봄달 2월을 보내고 온봄달 3월을 맞이하게 됩니다. 불어오는 봄바람과 함께 토박이말이 여러분의 삶 속으로 들어가길 바라며 지난 글에 이어서 ‘발’과 아랑곳한 토박이말 몇 가지를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발’이 들어간 토박이말 가운데 ‘짝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양쪽의 크기나 모양이 다르게 생긴 발. 또는 그 발을 가진 사람’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지요. 그리고 누리그물에서 ‘짝발’을 찾으면 짝발 때문에 걱정과 함께 어려움을 겪는 분들의 이야기가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두 발의 크기나 모양이 달라서 같은 신을 신을 수 없는 분들이 있기도 하지만 두 쪽 발이 똑같이 생긴 사람도 드물다고 합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아주 조금씩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짝발과 비슷한 짜임으로 된 말인 ‘짝눈’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양쪽 크기나 모양이 다르게 생긴 눈. 또는 그 눈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양쪽 눈의 시력 차이가 심한 눈’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과 함께 ‘짝귀’는 ‘양쪽의 크기나 모양이 다르게 생긴 귀. 또는 그런 귀를 가진 사람’의 뜻이라는 것을 어림하기 어렵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짝눈과 비슷하게 짝귀에도 ‘양쪽 귀의 청력 차이가 심한 귀’라는 뜻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집(사전)에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또 같은 짜임으로 ‘양쪽이 서로 제짝이 아닌 신’을 가리키는 ‘짝신’이라는 말도 바로 떠오르실 겁니다. 좀 더 나아가 짝발이 있으니 ‘짝손’이라는 말도 얼마든지 쓸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없지 않을 것 같은데도 짝손이라는 말은 말집(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것을 아시면 조금 놀라우실 겁니다.
이렇게 말의 짜임을 알고 비슷한 짜임으로 만든 다른 말들을 살펴보다 보면 이런 짜임으로 새로운 말을 만들어 볼 수 있다는 말씀을 앞서 드린 적이 있습니다. 짝발, 짝눈, 짝귀와 같은 말을 알고 나면 두 짝으로 이루어진 것들 가운데 서로 크기나 모양이 다른 것들을 가리킬 때 ‘짝’을 앞에 넣으면 그런 뜻을 담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집에 가면 가끔 길이가 서로 다른 젓가락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짝젓가락’이 되고 버선(양말) 짝이 서로 다른 것을 신을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짝버선(양말)’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낱말을 가지고 놀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바로 남다른 생각심(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좋은 수라고 생각합니다.
‘발’이 들어간 토박이말 가운데 ‘쪽발’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은 ‘두 쪽으로 나누어진 짐승의 발’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소, 염소, 돼지, 말과 같이 두 쪽으로 나누어진 발을 가진 짐승이 많습니다. 이처럼 발굽이 두 쪽으로 갈라진 짐승들이 걸리기 때문에 자주 보거나 듣게 되는 ‘구제역(口蹄疫)’이라는 병을 잘 아실 겁니다. ‘구제역’이라는 병은 쪽발 짐승들에게 잘 걸리는 병이라고 하면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구제역’에서 ‘구제(口蹄)’를 풀면 ‘입 구’에 ‘발굽 제’이기 때문에 ‘입발굽병’이라고 하면 훨씬 알기 쉽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병에 걸리면 입과 발굽에 물집이 생긴다고 하니 더더욱 ‘입발굽병’이라고 하는 것이 알기 쉽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알기 쉬운 말을 쓰면 막힘이 없이 잘 살 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쉬운 토박이말 살려 쓰는 일에 힘과 슬기를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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