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에어컨 싸게 틀어 좋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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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낭비 부추기는 정부의 여름철 전기요금 한시 인하, 개인과 기업에 잘못된 신호
싼 산업용 전기 탓 1인당 전기소비량 일·독·프보다 많아, 수요관리 정책방향과도 어긋나
» 정부는 여름철 냉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시적으로 전기요금을 인하하기로 했다. 연일 30도 가까운 무더위가 계속되던 12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의 한 빌딩 외벽에 가득 달린 에어컨 실외기 아래로 양산을 쓴 행인이 지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후지무라 야스유키는 냉장고에서 진공청소기에 이르기까지 전기를 쓰지 않는 가전제품을 만든 발명가로 유명하다. 그는 20가지 ‘비전력 제품’을 소개한 책 <플러그를 뽑으면 지구가 아름답다>에서 전기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쾌적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음을 보였다.
올해 그는 ‘전기가 필요 없는 냉장고’로 전 세계의 지속가능한 환경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환경상인 에너지 글로브 어워드의 일본 수상자로 선정됐다(우리나라에선 서울 강동구의 ‘1가구 1텃밭 가꾸기’가 선정됐다).
» 전기를 쓰지 않는 냉장고 앞(왼쪽)과 뒤 모습. 사진=후지무라 야스유키
» 무전력 냉장고의 얼개도. 그림=후지무라 야스유키
그는 전기가 보급되지 않은 몽골 대초원 유목민이 30도까지 오르는 한여름에 양고기를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도록 물과 밤의 서늘한 기온을 이용한 무 전원 실외 냉장고를 양 두 마리 값에 보급하고 있다.
» 몽골 초원의 이동식 주택 게르 뒤 땅속에 설치한 무 전원 냉장고 모습. 페트병에 넣은 물을 보냉재로, 단열과 밤 동안의 복사냉각으로 냉장고는 4도를 유지한다. 사진=후지무라 야스유키
오사카대 기초공학 박사인 그가 전기를 특별히 싫어할 이유는 없다. 일부 가전제품의 비효율성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진공청소기가 그런 예인데, 청소를 할 때 소비한 전력 가운데 실제로 먼지를 청소기로 이동시키는데 든 에너지는 2000만분의 1에 불과하다고 그는 계산했다. 사실, 공기를 빨아들여 무언가를 움직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촛불을 끌 때 공기를 불지 빨아들이지 않는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 공기를 빨아들여 쓰레기를 이동시키는 진공청소기는 생각 밖으로 청소를 위한 효율은 낮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애초 카펫에서 먼지를 쉽게 털어내는 용도로 개발된 진공청소기지만 우리는 어느덧 맨바닥에서도 쓰는데 익숙해졌다. 전력거래소가 2013년 가전기기 보급률과 소비행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진공청소기를 가동하느라 쓴 전력은 세탁기의 2배, 전자레인지의 3배였다.
전기를 열원으로 쓰는 것은 빗자루 대신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것보다 더 헤프게 전력을 소비하는 길이다. 전기는 화석연료의 연소열로 물을 끓이고 여기서 얻은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만든다.
» 국내의 한 석탄화력발전소 모습. 석탄을 태운 에너지의 절반 이상은 배기가스와 온배수 등으로 손실된다. 사진=탁기형 기자
애초 연료에 든 에너지의 절반 이상이 이 과정에서 사라진다. 소비처까지 송·배전하는 과정에서 또 4%가량이 사라진다. 그래서 전기는 편리하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고급에너지다. 가스나 석유를 직접 연료로 쓰지 않고 어렵게 만든 전기에서 열을 얻는 것은 큰 낭비인 이유다.
그런데 이런 낭비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 전기요금을 값싸게 유지해 가스나 유류 값보다 전기가 싸진 탓이다. 일종의 제도화된 낭비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가정에는 전기난방기가 인기를 끌고, 건물의 가스냉방은 전기냉방으로, 농가의 기름 난방 비닐하우스와 건조시설을 전기로 돌리는 붐이 일었다. ‘생수로 빨래하는’ 식의 전기 낭비가 만연했다(■ 관련기사: 원가 이하 산업전기, 사회가 덤터기 쓴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이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를 웃돌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기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70%나 많게 됐다. (■ 관련기사: 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면 큰일 날까?) 턱없이 싼 산업용 전기요금이 이런 현상을 부채질했다.
»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운동을 부른 경남 밀양시 송전탑 건설공사. 전력 낭비는 신규 발전소 건설을 부르고 이는 다시 송전탑 건설 등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박근혜 정부 들어 2013년 전기요금을 평균 5.4% 인상한 데 이어 지난해 확정한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에너지 정책방향을 수요관리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도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같은 정부가 22일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이해하기 힘든 정책을 내놨다. 중소 산업체도 대상에 들어있지만 이번 조처의 방점은 누진제 적용을 완화해 중산층의 냉방비 부담을 줄이는데 찍혀있다. 메르스도 있고 경제도 어려우니 더운 여름 에어컨이라도 마음껏 틀고 지내라는 소리로 들린다.
평소 전기요금을 4만7000원~21만7000원 정도 내던 전체 가구의 30%에 해당하는 647만 가구가 여름 동안 월 8368~11520원가량 요금을 덜 내게 됐다. 문제는 중산층 이상만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보다 이번 정책이 시민과 기업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데 있다.
전력 소비 증가를 당연하게 여기면 발전소 증설이 필요해진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 그와 관련한 에너지 신산업은 물건너가고 우리는 결국 화석에너지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후지무라 박사의 무 전력 가전제품 목록에는 태엽을 감아 작동하는 면도기와 전기와 세제가 필요 없는 세탁기는 있어도 에어컨이 없다. 전기가 별로 들지 않는 선풍기와, 무엇보다 인류가 물려받은 소중한 진화의 유산인 땀 흘리기가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여름철 땀은 내 몸 안 ‘천연 에어컨’).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싼 산업용 전기 탓 1인당 전기소비량 일·독·프보다 많아, 수요관리 정책방향과도 어긋나
» 정부는 여름철 냉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시적으로 전기요금을 인하하기로 했다. 연일 30도 가까운 무더위가 계속되던 12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의 한 빌딩 외벽에 가득 달린 에어컨 실외기 아래로 양산을 쓴 행인이 지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후지무라 야스유키는 냉장고에서 진공청소기에 이르기까지 전기를 쓰지 않는 가전제품을 만든 발명가로 유명하다. 그는 20가지 ‘비전력 제품’을 소개한 책 <플러그를 뽑으면 지구가 아름답다>에서 전기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쾌적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음을 보였다.
올해 그는 ‘전기가 필요 없는 냉장고’로 전 세계의 지속가능한 환경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환경상인 에너지 글로브 어워드의 일본 수상자로 선정됐다(우리나라에선 서울 강동구의 ‘1가구 1텃밭 가꾸기’가 선정됐다).
» 전기를 쓰지 않는 냉장고 앞(왼쪽)과 뒤 모습. 사진=후지무라 야스유키» 무전력 냉장고의 얼개도. 그림=후지무라 야스유키그는 전기가 보급되지 않은 몽골 대초원 유목민이 30도까지 오르는 한여름에 양고기를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도록 물과 밤의 서늘한 기온을 이용한 무 전원 실외 냉장고를 양 두 마리 값에 보급하고 있다.
» 몽골 초원의 이동식 주택 게르 뒤 땅속에 설치한 무 전원 냉장고 모습. 페트병에 넣은 물을 보냉재로, 단열과 밤 동안의 복사냉각으로 냉장고는 4도를 유지한다. 사진=후지무라 야스유키오사카대 기초공학 박사인 그가 전기를 특별히 싫어할 이유는 없다. 일부 가전제품의 비효율성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진공청소기가 그런 예인데, 청소를 할 때 소비한 전력 가운데 실제로 먼지를 청소기로 이동시키는데 든 에너지는 2000만분의 1에 불과하다고 그는 계산했다. 사실, 공기를 빨아들여 무언가를 움직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촛불을 끌 때 공기를 불지 빨아들이지 않는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 공기를 빨아들여 쓰레기를 이동시키는 진공청소기는 생각 밖으로 청소를 위한 효율은 낮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애초 카펫에서 먼지를 쉽게 털어내는 용도로 개발된 진공청소기지만 우리는 어느덧 맨바닥에서도 쓰는데 익숙해졌다. 전력거래소가 2013년 가전기기 보급률과 소비행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진공청소기를 가동하느라 쓴 전력은 세탁기의 2배, 전자레인지의 3배였다.
전기를 열원으로 쓰는 것은 빗자루 대신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것보다 더 헤프게 전력을 소비하는 길이다. 전기는 화석연료의 연소열로 물을 끓이고 여기서 얻은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만든다.
» 국내의 한 석탄화력발전소 모습. 석탄을 태운 에너지의 절반 이상은 배기가스와 온배수 등으로 손실된다. 사진=탁기형 기자애초 연료에 든 에너지의 절반 이상이 이 과정에서 사라진다. 소비처까지 송·배전하는 과정에서 또 4%가량이 사라진다. 그래서 전기는 편리하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고급에너지다. 가스나 석유를 직접 연료로 쓰지 않고 어렵게 만든 전기에서 열을 얻는 것은 큰 낭비인 이유다.
그런데 이런 낭비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 전기요금을 값싸게 유지해 가스나 유류 값보다 전기가 싸진 탓이다. 일종의 제도화된 낭비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가정에는 전기난방기가 인기를 끌고, 건물의 가스냉방은 전기냉방으로, 농가의 기름 난방 비닐하우스와 건조시설을 전기로 돌리는 붐이 일었다. ‘생수로 빨래하는’ 식의 전기 낭비가 만연했다(■ 관련기사: 원가 이하 산업전기, 사회가 덤터기 쓴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이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를 웃돌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기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70%나 많게 됐다. (■ 관련기사: 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면 큰일 날까?) 턱없이 싼 산업용 전기요금이 이런 현상을 부채질했다.
»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운동을 부른 경남 밀양시 송전탑 건설공사. 전력 낭비는 신규 발전소 건설을 부르고 이는 다시 송전탑 건설 등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박근혜 정부 들어 2013년 전기요금을 평균 5.4% 인상한 데 이어 지난해 확정한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에너지 정책방향을 수요관리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도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같은 정부가 22일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이해하기 힘든 정책을 내놨다. 중소 산업체도 대상에 들어있지만 이번 조처의 방점은 누진제 적용을 완화해 중산층의 냉방비 부담을 줄이는데 찍혀있다. 메르스도 있고 경제도 어려우니 더운 여름 에어컨이라도 마음껏 틀고 지내라는 소리로 들린다.
평소 전기요금을 4만7000원~21만7000원 정도 내던 전체 가구의 30%에 해당하는 647만 가구가 여름 동안 월 8368~11520원가량 요금을 덜 내게 됐다. 문제는 중산층 이상만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보다 이번 정책이 시민과 기업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데 있다.
전력 소비 증가를 당연하게 여기면 발전소 증설이 필요해진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 그와 관련한 에너지 신산업은 물건너가고 우리는 결국 화석에너지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후지무라 박사의 무 전력 가전제품 목록에는 태엽을 감아 작동하는 면도기와 전기와 세제가 필요 없는 세탁기는 있어도 에어컨이 없다. 전기가 별로 들지 않는 선풍기와, 무엇보다 인류가 물려받은 소중한 진화의 유산인 땀 흘리기가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여름철 땀은 내 몸 안 ‘천연 에어컨’).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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