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철 같은 분 다시 오면 민족통일 이루어질 것” <미니 인터뷰> 양현수 ‘홍암나철선생 선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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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현수 선양회 회장과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홍암 나철 선생 선양회’ 양현수(67) 회장은 20여년을 홍암 나철 선생 연구에 천착해오고 있다. 부인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은 새마을 지도자만 해도 대통령 훈장도 받고 상도 받드만, 당신은 20년 동안 미친 짓을 하고 다녀 살림 다 갖다 바치고”라는 핀잔을 받을 정도.
매해 홍암 나철 추모행사를 치르고 중국 화룡시 소재 홍암 묘역을 참배해왔다. 오는 10일 중국 연변대학에서 열리는 항일운동사 학술대회에도 한국측 참가단으로 방문할 예정이다.
6월 벌교 생가 취재 당시 박형제 부회장과 함께 현장을 일일이 안내하며 열성적으로 설명해준 그를 7월 26일 서울 광화문 커피숍에서 다시 만나 간단한 인터뷰를 가졌다.
□ 통일뉴스 : 홍남 나철 100주기를 맞아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 양현수 회장 : 홍암 선생을 알고 깊이 있게 공부하다 보니까, 그동안의 역사의 오류를 느끼는 것 같고, 역사의 아픔을 알게 돼 마음이 안 좋았다.
한 20여년 나철 선생만 찾고 공부했는데, 순국하신 100주기를 맞이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의 오류를 느끼고 한탄하는 걸 볼 때, 저 또한 같은 심정이다.
우리 민족지도자들 중에 나철 선생 같은 분이 다시 온다면 우리가 꿈꾸는 민족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해봤다.
□ ‘홍암 나철 선생 선양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100주기 기념행사는?
■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인 11월 2일 행사는 크게 나누면, 순수한 우리 고유의 체천행사인 ‘개천대제’를 지내고 홍암 선생의 사당을 개관하는 개관식을 하고, 끝으로 추모행사를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명칭을 ‘홍암 나철 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제’로 하고 홍암 선생 고향인 벌교 금곡마을 기념관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진행한다. 그래서 세상에 다시 홍암 선생이 재탄생하는 날로 삼고자 한다.
□ 홍암 나철 선생 기념관 개관식이 이번에 열린다고 했는데, 기념관에 대해 소개해달라.
■ 기념관은 홍암 선생을 모시는 사당과 교육장, 역사관으로 건립된다. 사당에는 홍암 선생의 두 아들이 같이 모셔지고 사당 아래 쪽에 홍암 선생의 민족혼 교육을 하는 교육장인 홍암관이 있고, 그 옆에는 독립운동사와 더불어 나철 선생 일대기를 볼 수 있는 역사관이 마련돼 있다.
기념관을 공사한지 올해 딱 10년 됐다. 2006년부터 생가를 복원하고, 2012년부터 기념관 공사를 착공해서 올해 완공이 된다. 정부 예산은 14억정도 지원됐고, 나머지는 보성군 군비 부담으로 진행했다. 총액이 애초에 60억을 계상했다가 19억이 더 들어가서 총 79억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큰 부담이다.
가슴 아팠던 것이 전국에서 천진상이 안 모셔진 군이 오직 보성군이다. 우리나라에서 단군을 국가의 구심점으로 삼으신 분이 나철인데, 나철이 태어난 고향에는 천진이 없고 단군 동상이 없다. 우리가 국민 성금을 모금해서라도 국조전을 지을 계획이다.
□ 지금 이 지역에 홍암 나철 후손이나 흔적 남아있는 게 있나?
■ 후손들은 한 분도 안계시고 중국에 손자들 세 분이 살아계신다. 증손자 고손자는 있는데, 증손자는 한 분인가 국내에 계시고, 고손자도 있는데 사는 것이 어려워 할아버지 고향, 선산도 한번 찾아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 홍암 나철 아들 둘도 순교하고, 홍암 나철 순교시 삼성사까지 함께 간 시자 중에 조카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
■ 홍암 형님의 아들인 조카 나정수 씨와 사촌동생 나우영 씨가 같이 시종으로 (삼성사에) 갔었고, 옛날에는 나씨 분들이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다 떠나고 없다.
옛날 60,70년대까지는 40여호에 살았는데 지금은 사람사는 집이 열한 집이다. 나는 7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고, 탯자리도 여기다.
□ 보성 지역과 금곡마을에서 홍암 선생의 위상이나 비중은 어떤가?
■ 내가 사회에 알리면서 추모제를 거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역에서 그런 인물이 있었는지조차도 몰랐고, 학생들도 벌교 출신이라는 건 모르고 학교에서 대종교 창시자로만 알고 지낼 정도였다.
□ 선양회는 어떻게 구성돼 있고, 어떻게 활동하고 있나?
■ 외부사람들은 참여를 많이 하는데, 실질적으로 선양회를 이끄는 사람들은 벌교를 중심으로 참여하고 있고, 나이드신 원로들은 고문이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젊은 사람들이 회비내서 교육하고 운영하고 있다.
85주기부터 시작해 처음에는 한 20명으로 출발했다. 올해가 100주기인데 지금 회원들이 120명 정도 된다. 매월 연구발표도 하고 선양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라든지 회의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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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양회는 매년 중국 화룡시 청호촌 소재 대종교 3종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지난 5월 선양회가 새로 세운 3종사 묘역 안내판과 11월 2일 행사 안내문.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선양회 회원분들이 150여만원씩 개인부담으로 매년 중국 묘소 참배 및 정비 등을 해오고 있다.
홍암 선생 묘소 앞 안내판과 도로표시판도 세웠는데 도로표시판은 도로 확장하면서 철거해버렸다. 올해 5월 25일에는 3종사 안내판을 새로 정비하고 왔다.
화룡시와 자매결연되면 보성군에서 사업비를 보내서 화룡시에서 도로를 확장해서 주차장까지 만들기로 협의됐는데 사드 때문에 못하고 끝나버렸다.
□ 중국 측으로부터 구체적으로 통보를 받았나?
■ 7월 20일에 가기로 했는데 화룡시에서 오지 말라고 했다. 7월 15일경 중국으로부터 자매결연을 취소한다는 통보를 보성군에 보내왔다. 부군수랑 나를 포함해 7명이 가려고 했는데 취소되어 모든 중국 쪽 사업이 어렵게 돼버렸다.
이번에 가면 중국에 사는 손자 세 분을 만나서 인사드리고 100주년 행사 때 유족들을 국내로 불러서 같이 행사를 진행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 보성군에서 유족들을 초청하면 되는 것 아닌가?
■ 보성군에서는 별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 중국에 있는 후손들은 만나 보았나?
■ 이름도 잘 몰랐는데 조선족자치주를 찾아가 손자 나일석씨를 만났다. 홍암의 넷째 아들 정강과 다섯째 정기가 계셨는데, 정강은 아들이 없고 정기는 3형제를 뒀다.
나일석씨는 한족으로 귀화했으면 항일열사 후손으로 당원 자격도 받고 풍요롭게 살 건데, 할아버지의 역사를 더럽힐 생각이 없어서 국내에서도 찾아주는 이도 없고 알아주지도 않지만 죽는 날까지 할아버지 유지 받들려고 조선족으로 살아남아 이렇게 가난하게 산다.
어머니를 모시고 끼니를 연명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 이야기를 간단한 메모형식으로 써놨더라. 복사하려고 했는데 안 주더라. 어떻게든 입수해서 나철 선생 업적에는 보탬이 안 되지만 후손들이 타국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살았는가 하는 것을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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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현수 회장이 홍암의 친필 유서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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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현수 회장과 박형제 부회장(왼쪽)이 홍암 나철의 선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 생가와 기념관이 있는데, 전시할만한 관련 자료들은 많이 찾았나?
■ 홍암 선생 관련 자료들은 신문기사 내용, <단군교포명서>, <중광가>라든지 일본의 요시찰인물기록 등이 있는데, 소장은 못하고 있다. 역사관과 기념관에 내놓을만한 자료는 별로 없다.
단지 우리들이 수중에 5,6년전에 확보했던 나철 선생의 유품, 그 중에서 친필로 썼던 딸에게 쓴 유언장, 사위라든지 친족에게 보냈던 유언장 원본이 있다.
그분의 활동무대가 서울과 중국 쪽이기 때문에, 고향에서는 홍암 선생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없고, 고향에서는 기억하는 사람이 그리 없다.
아쉬운 점은 이런 역사문화사업을 군에서 해본 경험이 없어서 자문위원부터 선정이 안됐다. 전시연출하는 회사에 용역을 줘서 그 사람들의 수준에서 보여주기 식, 한마디로 공룡전시관 같은 눈요기만 되는 전시관이 되지 않나 우려스럽다.
또한 우리나라 우수한 학자들을 동원해서 모든 자료가 총 망라된 전집이 나왔을 때 그 중에서 핵심 부분만 전시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안 돼 있다. 나의 소망이 홍암 선생 전집을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학자들의 연구 논문들을 모아서 후학들에게 참고가 되도록 만들어내는 것이다.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 홍암 나철 100주기를 맞아 꼭 하고 싶은 말은?
■ 진짜로 마이크를 주면서 외치라고 한다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제일로 위대한 일을 해놓고 제일로 억울하게 묻혀 있는 인물을 찾으라면 홍암 나철이라고 외치고 싶다.
진짜로 만백성이 홍암 선생의 깊은 뜻과 정신을 알아주는 날이 온다면 그게 바로 민족통일의 지름길이다. 그래서 역사인물 중에서 제일로 억울한 분이 나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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