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열린 ‘세운상가’ 개관식 모습, 김현옥 서울시장이 상략식에서 ‘세운’ 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서울사진아카이브
1967년 7월 서울 종로구에 ‘세운상가’라는 대한민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 등장합니다. 무허가 판잣집과 윤락업소가 즐비했던 지역에 새로운 명물이 탄생한 것입니다.
‘세운상가’라는 이름은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재개발 사업을 밀어붙인 김현옥 서울시장이 ‘세상의 기운이 다 모여라’는 뜻으로 지었습니다.
세운상가는 개관식 때 대통령과 영부인이 참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당시 남대문에 있었던 신세계 미도파와 종로 화신, 신신 백화점 등의 건물이 낡고 소매점 중심인 데 반해, 세운상가는 새로운 건물에 도매상 가격으로 저렴해 많은 시민들이 찾았습니다.
세운상가는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던 텔레비전 광고를 했고, 상품 경매권도 발행했습니다. ‘가격표시 정찰제’라는 현대식 경영 방식도 도입됐습니다.
1970년대는 찾아보기 힘든 국회의원 사무실, 유흥업소, 교회, 사우나, 슈퍼마켓, 미용체조실, 실내골프장 등이 입점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서 상가 임대료와 땅값은 치솟았고, 세운상가 아파트는 높은 프리미엄으로 거래됐습니다.
‘전자.컴퓨터 산업의 메카, 강제 이주정책에 몰락하다’
▲1980년대 세운상가 모습. PC보급 등으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찾는 고객들이 급증했다.
세운상가는 종합 가전제품 상가이자 전자 산업, 컴퓨터 산업의 메카였습니다. 전자 기기와 부품,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찾는 사람으로 항상 북적였습니다. 한때 세운상가는 ‘미사일과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못 만드는 제품이 없었습니다.
당시 최첨단이었던 컴퓨터 산업도 세운상가에서 일어났습니다. 국내 벤처기업 1호 ‘TG삼보컴퓨터’와 ‘한글과컴퓨터’, ‘코맥스’도 시작은 ‘세운상가’였습니다. 마치 ‘한국의 실리콘 밸리’와 같았습니다.
당시 중, 고등학생과 젊은이들은 주말마다 세운상가를 드나들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컴퓨터와 게임뿐만 아니라 ‘빨간책’이라 불리는 19금 화보나 포르노 테이프 등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의 추억을 기억하는 세대를 ‘세운상가 키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잘 나가던 ‘세운상가’의 몰락은 정부가 86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전기.전자 업종을 ‘도심부적격 업종’으로 지정해 ‘용산전자상가’로 강제 이전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1990년대 신문에 실린 ‘용산전자상가’ 관련 기사. 세운상가는 용산전자상가의 발전으로 점점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1987년 정부는 수도권 정비 계획에 따라 용산 농수산물 시장은 송파구 가락동으로 세운상가의 전기, 전자 상인들은 용산으로 강제로 이주시킵니다. 이주를 거부하는 상인에게는 세무조사 등의 방식으로 강하게 압력을 가해 세운상가 일부 상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용산으로 이전합니다.
처음에는 용산전자상가의 인기가 높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PC 통신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점차 활기를 찾아갔습니다. 용산전자상가의 상권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세운상가를 이용하는 시민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IMF 외환위기 당시 세운상가 상인들의 주거래처인 중소기업이 무너지면서 세운상가의 몰락은 더 가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상인들이 점차 떠나면서 세운상가는 2000년대 들어서는 슬럼화됐고, 점점 도심의 흉물로 전락했습니다.
‘시작부터 잘못된 건축, 철거와 공원만으로는 살릴 수 없었다’
▲1967년 세운상가지구 국제관광호텔 기공식 모습과 세운상가 지역 상가 지도.
원래 세운상가는 입체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거창한 계획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건설사별로 건물을 따로 짓는 바람에 처음 의도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김수근씨는 도시 미관을 생각하며 보행자 도로를 확보하며 상가 내 인공정원 등을 고려했습니다. 그러나 공공시설이 갖는 의미는 퇴색해버리고 오로지 상업적인 면만 강조하다 보니 투박하고 위압감을 주는 건물로 바뀌었습니다.
1967년 세운상가, 현대상가 건립을 시작으로 72년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풍전호텔, 신성상가, 진양상가로 건립된 세운상가군은 연관성도 없이 그저 각각의 건물이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만을 추구하게 됐습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의 취임과 동시 공약에 따라 수도권 정비 차원에서 일부 상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벼를 심어 놓은 모습 ⓒ오마이뉴스 윤도균
부동산의 가치 하락과 상권 퇴색으로 무너지는 세운상가는 철거와 재개발 사업 등을 통해 변신을 꾀했습니다. 그러나 2005년 청계천 복원 당시 철거됐던 세운~대림상가 간 3층 높이 공중보행교 사례에서 보듯이 보행 친화적인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입주 상인들의 반대에도 2008년부터 일부 종로 세운상가부터 철거되고, ‘세운 초록 띠 공원’이 조성됐습니다.
건물이 슬럼화됐다고 하지만 엄연히 상인들이 영업하는 공간이었기에 철거는 늘 반발의 대상이 됐습니다. 또한 철거로 인해 지역 상권이 무너지는 결과도 초래하게 됐습니다.
수차례 반복되는 세운상가 철거와 재개발 계획은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의 반감을 쌓게 됐고, 현실과 맞지 않는 계획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세운상가, 4차산업혁명 시대를 따라갈 수 있을까?’
서울시는 2014년부터 시민의 보행이 가능해 다시 세운상가를 찾아 함께 상생하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시민의 보행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종로에서 대림상가 구간을 공공 공간으로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세운 보행교’나 ‘옥상 전망대’,’보행데크’,’세운광장’ 등은 초기 설계 의도가 다시 부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과 상인들이 원하는 상권을 부활시키기 위한 ‘도시 재생’입니다.
▲세운상가 상인회와 상가 이용자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세운 마이스터 16인’ 대부분 30년 이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서울시의 ‘다시․세운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부분은 스타트업들의 창작, 개발을 지원하는 동시에 이루어진 기존 기술자들과의 협업입니다.
전자산업의 메카였던 세운상가에는 오랜 시간 전문 분야에서 활동했던 기술자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들은 외국이라면 ‘마이스터’라고 불리며 대접을 받았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냥 변두리 뒷골목 상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서울시는 세운상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기술자 중에서 ‘세운 마이스터 16인’을 선정했습니다. ‘세운 마이스터’는 앞으로 ‘청소년기술대안학교’,’스타트업’ 등 교육 프로그램의 강사 및 멘토로 활동하며 청년 창업자에게 기술 협력 등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
▲ 세운상가 스타트업 제품들: 3D 프린터, 전자의수, 드론전용 항공촬영 짐벌,조명
세운상가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것은 상류층의 고급 아파트와 같은 부동산이 아니었습니다. IT 산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이었습니다. 미사일, 잠수함까지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신뢰 받는 기술이 있었기에 한국 IT 산업의 시작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다시세운 프로젝트는 기술장인과 청년 스타트업, 산업기술 전문가, 그리고 미래세대를 이끌 청소년들까지, 제조산업의 발전과 제작기술의 확산이라는 목표아래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의미가 있다”며 “서울시는 앞으로도 세운상가군을 4차산업혁명의 혁신기지로 발전시켜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세운상가’가 단순 외형의 도시 재생으로 끝날지, IT산업의 태생지로서의 역할을 다시 해낼지는 불분명 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기술력을 가진 세운상가 장인들과 젊은 창업자가 힘을 합치도록 유도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 강위원 상임대표 고희철 기자 khc@vop.co.kr 발행 2024-06-06 16:14:31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지난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에 전면으로 부상해 4.10 총선 결과 민주당의 한 축을 이뤘다. 대개 언론에는 ‘친명 강경파’ 조직으로 소개된다. 지난 2일 2기 강위원 상임대표가 선출됐다. 한총련 의장을 거친 강 대표는 전남 영광군 묘량면에서 여민동락 공동체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민형배 구청장 시절 광산구노인복지관장 등을 거쳐 이재명 도지사 시절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을 맡았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의 일정을 총괄했고, 그 뒤 당대표 특보와 혁신회의 1기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혁신회의는 국회의원 31명을 배출해 당내 최대 정치세력으로 불린다. 강 대표 본인은 경선에서 사퇴해 국회 입성에 실패했지만 상임대표가 됐다. 그러나 혁신회의와 강 대표는 언론에 대체로 부정적으로 언급된다. 친명, 강경, 팬덤, 개딸 등의 연관어와 함께. 특히 국회의장 후보 경선으로 촉발된 당원민주주의 논쟁은 부정적 보도 증가에 기여했다. 3일 여의도의 오피스텔에 자취방처럼 차려진 혁신회의 사무실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묻고자 한 것은 간단했다. 지난 총선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으로 당을 장악했다는 비판과 극성 팬덤을 앞세워 국회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비판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상임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6.03 ⓒ민중의소리 1시간을 예정한 인터뷰는 2시간 30분을 넘겨 간신히 ‘중단’됐다. 그는 거침이 없었고, 할 말이 많았다. 그의 말은 영광군과 광산구와 경기도를 넘나들었고, 5.18정신과 김대중, 노무현도 수시로 언급됐다. 특히 언론의 당원민주주의 폄하에 강하게 반박했다. 친명만 공천되고 비명은 탈락한다는 이른바 ‘친명횡재 비명횡사’ 논란에 강 대표는 “그게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이어 “작업을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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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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