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는 공정위 사무관 한 번 보기 힘든데…대기업·로펌은 경제 재판관을 따로 봤다니”
[단독]“중기는 공정위 사무관 한 번 보기 힘든데…대기업·로펌은 경제 재판관을 따로 봤다니”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입력 : 2017.09.28 06:00:08
ㆍ공정위 출입 기록 살펴보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6월14일 취임사에서 “사회와의 소통은 중요하지만 업무상 기밀이 비공식적인 통로로 유출되는 수준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업무시간 이외에는 공정위 OB나 로펌 변호사 등 이해관계자들과 접촉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비록 ‘업무시간 이외’란 단서를 달긴 했지만 김 위원장의 당부에는 공정위와 대기업·로펌 간 유착을 우려하는 속내가 담겨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공개한 ‘2013~2017 대기업·로펌의 공정위 출입·방문기록’을 보면 그의 우려가 괜한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대기업 중에서는 삼성전자의 공정위 방문 횟수가 가장 두드러졌는데 방문 대상에는 상임위원(1급)과 부위원장 등 고위급 인사도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공정위에 회부된 사건도 최근 5년간 거의 없었다. 공정위가 회의 참석을 요구하거나 다른 기업을 조사하면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참고인으로 부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만약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면 밖에서 따로 만나지 않았겠느냐”고 해명했다.
삼성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생명 관계자들은 주로 공정위 상임위원을 방문했다. 지난 5년간 공정위를 방문한 삼성생명 관계자 65명 중 절반가량인 32명이 전원회의 의사결정권이 있는 상임위원을 만나러 왔다. 현대자동차(211명), SK텔레콤(204명), 롯데마트(160명), LG전자(153명), 현대건설(125명) 관계자들도 공정위를 많이 방문했다. 일부 대기업은 업무연관성이 떨어지는 대변인을 만나러 공정위에 간 사례도 있었다.
2013년부터 올해 9월10일까지 3168명이 공정위를 방문한 김앤장을 비롯해 법무법인 세종·광장 등 대형 로펌에는 공정위 출신이 50명 이상 포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업 불공정행위를 감시하던 관료들이 로펌에 재취업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현실에서 공정위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는 사실은 공정위의 신뢰를 갉아먹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없다.대형 로펌과 대기업이 공정위 사건에 상대적으로 많이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출입 자체가 곧 불법 로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기업과 로펌의 공정위 출입기록에는 방문 목적이 대부분 ‘회의’ ‘업무차’로 기록돼 있어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당사자들만 알 수 있는 구조다.
최근 ‘동일인 지정’ 문제로 공정위를 찾은 이해진 네이버 전 의장처럼 업무 목적으로 공정위 관계자를 만난 뒤 또 다른 공정위 고위 관계자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출입 기록에 적은 ‘방문대상’ 외에 다른 공정위 관계자를 만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행안부 관계자는 “보안 목적으로 출입기록을 작성하는 것이어서 명확하게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박찬대 의원 측이 공개한 자료에는 서울사무소 등 지역사무소 방문자 수는 포함되지 않았다. 행안부는 “공정위에 자료 요청을 하라”고 했고, 공정위는 “정부청사 출입을 관리하는 행안부에 자료 요청을 하라”고 서로 미뤘기 때문이다.
오영중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는 “일반 중소기업들은 공정위 사무관을 한 번 만나기 힘든 점과 비교하면 문제가 심각하다”라면서 “특히 공정위 전원회의는 일종의 재판이고, 여기에 참석하는 상임위원과 부위원장은 재판관인 셈인데 재판관을 따로 만났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 7월 조직된 공정위 신뢰제고 태스크포스(TF)에서는 사건의 조사 심의 과정에서 피심인 관계자와 공정위원들이 개별적으로 만나 설명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동우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신뢰제고 방안 토론회’에서 “사건 설명은 서면과 서류로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개별 면담 자체를 아예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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