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광고로 반박하고, 기자 고소한 희망브리지
국내 최대 모금단체 중 하나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가 불투명 운영을 지적한 기자들을 줄줄이 고소하고, 불투명 운영을 개선하려는 취지의 재해구호법 개정안에 반박하는 의견 광고를 냈다.
희망브리지는 역대 회장 9명 중 7명이 언론사 사장 출신이고 이사회 21명 중 12명이 언론계 인사일 만큼 ‘언론사 조직’으로 통한다.
[관련기사: 뉴스타파: 한국 언론이 만든 치외법권 희망브리지]
희망브리지는 6월1일 언론사 의견광고를 통해 “재해구호법 개정은 행안부가 희망브리지를 산하 기관처럼 만들려는 의도”라며 “국민성금을 정부가 예산처럼 사용하고, 국민이 낸 귀중한 성금을 선심용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코로나19로 모인 성금이 1000억원에 달하는 등 희망브리지가 다루는 금액이 커지면서 더욱 투명한 운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불투명한 운영 방식을 문제 삼는 목소리를 봉쇄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희망브리지는 현재 비판 기사를 쓴 조원일 뉴스타파 기자, 정민승 한국일보 전국팀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다. 기자를 고소하고 일간지에 광고를 내는 비용 역시 국민성금에서 나오는 희망브리지 운영비다.
희망브리지 측은 비판 기사에 자신들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언론 보도를 통해 피해를 입었으며 언론사 광고비는 현재 회계연도가 진행 중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뉴스타파, 희망브리지 불투명 운영 비판
지난해 언론을 통해 희망브리지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돼 행정안전부가 사무 검사를 실시한 결과, 총 9건의 규정 위반 사항(취업규칙 변경 신고 미이행, 노사협의회 미실시, 근로계약서 미작성, 법인차량 운영에 관한 사안, 업무추진비 관리 미흡, 건물 주차수입관리 강화와 운영기준 마련, 2019년도 의연금 사업 결산서 제출 지연, 2019년 의연물품 처리 부적정, 코로나19 기부금 모금 빛 배분시 이사회 미개최)이 발견돼 주의·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희망브리지는 1건만 수용하고 나머지 8건의 시정 주의 등에 대해서는 “지적을 납득할 수 없다”며 불수용 의견을 제출했다.
[관련기사: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희망브리지 새 사무총장 부임 후 2년 새 13명 줄퇴사, 왜?]
또한 지난해 연말 희망브리지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로 ‘재해구호법’ 개정안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대표 발의됐는데, 희망브리지는 “국민성금을 정부 예산처럼 사용하려는 재해구호법 개정을 즉각 중단하라”며 개정안에 반대하는 의견 광고를 6월1일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한겨레에 실었다. 지난 5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희망브리지의 불투명 운영을 비판하는 기사들을 연속 보도한 후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원일 뉴스타파 기자는 희망브리지에 대해 △서울시가 세금으로 조성해 기부한 돈 3억5000만원으로 가짜 필터를 사용한 불법 마스크를 구매해 대구·경북 지역에 공급했고 △재향군인회 간부 출신인 김정희 희망브리지 사무총장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사업권이 없는 재향군인회와 33억원대 마스크를 거래했으며 △희망브리지의 유일한 통제 기구인 이사회의 경우 언론사 사장들이 대를 이어 구성되고 있고 △정작 이사들은 회의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는 등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 기자는 희망브리지 역대 회장이나 이사회 구성이 대부분 언론인 출신인 점을 지적하면서 ‘한국 언론이 만든 치외법권’이라고 비판했다.
“성금인 운영비로 의견광고 내는 것 비윤리”
조원일 뉴스타파 기자는 29일 미디어오늘에 “큰 규모의 국민 성금을 다루는 기관이 말도 안 되게 불투명하다. 특히 지난해 여름철 집중호우 및 태풍과 관련, 전국재해구호협회에 446억6000여만원이 납입됐는데 5월31일까지 282억8000여만원이 집행되지 않았다. 모집액 60%가 넘는 금액이 현재까지 집행되지 않은 것인데 답변은 ‘의연금 모금액이 해마다 들쑥날쑥해서 남는 의연금으로 구호금을 지급한다’고 왔다. 지적에 책임감을 느낄 법도 한데 나중을 위해 쓴다고 하는 등 대응이 황당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관련 링크: 희망브리지: 뉴스타파 질의서에 대한 희망브리지 답변]
조 기자는 “행안부가 희망브리지에 총 9건의 규정 위반을 했다며 주의·시정 요구를 했음에도 희망브리지는 무시했는데 행안부는 문제를 방기하고 있다”며 “언론사 임원들이 희망브리지 이사직을 맡으면서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데, 방송을 통해 성금을 모은다고 해서 이사직과 꼭 결부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1960~1970년대에는 방송사나 언론사가 국민성금을 모으는데 역할을 했는데, 이러한 경향성이 굳어져 희망브리지의 대부분 임원진은 언론계 인사로 꾸려져있다. 조 기자는 방송사 등을 통해 모금이 이뤄지더라도 꼭 언론계 인사가 희망브리지 이사직을 맡을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희망브리지가 언론사들을 통해 의견 광고를 낸 것에 조 기자는 “희망브리지 운영비는 성금이다. 성금으로 의견 광고를 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며 “희망브리지는 의견 광고 금액에 대한 질의에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2000만원 이하 자금 사용은 사무총장 직권이라는 주장인데 국민 성금을 두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린 것은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조 기자는 의견광고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비췄다. 조 기자는 “재해구호법 개정 취지는 국민성금을 투명하게 관리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의견 광고는 ‘국민 성금을 정부 예산처럼 사용하려고 군다’는 희망브리지 입장만 담게 된다”며 “의견 광고를 내게 되면 기자들이 취재하는데 부담이 된다. 취재를 시작하기 전에 넘어야 할 언덕이 하나 생기고, 그러다 보면 복잡하게 느껴지고 취재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소송 중엔 판결 전까지 보도 자제한다는 불문율 활용한 것”
희망브리지는 지난해 말 협회의 불투명한 운영을 지적한 한국일보 칼럼에 대해서도 기자 개인을 상대로 민·형사 고소를 진행했다. 정민승 한국일보 전국팀장은 지난해 7월 칼럼을 통해 희망브리지가 의류업체로부터 구호 명목으로 받은 의류 일부를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협회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사무총장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를 선정했다는 의혹을 지적했다.
희망브리지 측은 소장을 통해 기부 업체가 5월 초 작성한 지정기탁신청서를 들어 ‘스태프 및 자원봉사자 지원’ 명목임을 기재했다고 밝혔지만, 정 팀장은 이 영수증이 기부 당시인 2월 이전이 아니라 언론 취재 이후 작성됐다고 지적했다. 희망브리지는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리모델링 업체를 선정했다고 밝혔으나 정 기자는 총장의 지인이 심사 이전부터 협회에 방문하고 음식을 제공해왔다고 반박했다.
희망브리지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보도를 신청한 뒤 결렬되자 정 기자를 형사고소하고 1000만원 배상도 청구했다. 경찰이 해당 사건을 불송치 결정(증거 불충분)했으나 이후 검찰 요구로 보완 수사 중이다.
정민승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비판과 감시를 존재 이유로 하는 언론사들이 직접 간여해 운영되는 전국재해구호협회는 그 어떤 조직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돼야 한다”며 “그러나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 적십자 등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단체에 비해 감시와 간섭을 덜 받으면서 정부와 국회의 각종 자료 제출 요구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기자는 “언론이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를 한 데 대해 협회는 명예를 실추했다며 제소해 추가 보도를 막고 있다. 소송 중인 당사자(언론사)는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관련 보도를 자제한다는 불문율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소송비가 모두 국민성금에서 지출되는 것도 아이러니”라며 “협회가 상식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고 말했다.
희망브리지 측은 29일 미디어오늘에 “언론 보도 이후 피해를 입었다.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정정 보도를 해야 한다”며 “우리가 하려던 답변은 하나도 반영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일간지 광고 비용에 대해서는 “현재 회계연도가 진행 중이라 공개할 수 없다”며 “연말에 광고집행 내역을 포함한 회계를 행정안전부에 보고하게 돼 있으니 그곳에 물어라. 연말에 결산한다”고 밝혔다.
희망브리지는 “운영비와 관련해서는 어떤 기관도 그 한도를 정해두지 않는다”며 “의견 광고를 낸 이유는 정부에서 임명하는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면 민간기관이 아니게 되지 않느냐. 공론화를 거치자는 의도에서 의견 광고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브리지가 ‘언론사 조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굉장히 단견”이라며 “언론사는 자연 재난이 나면 국민 성금을 모아주는 기관이고 모집에 대한 대가를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사회 부실 운영에 대한 지적에 희망브리지 측은 “어떤 이사회라도 위임이나 대리 참석, 서면 이사회가 가능하도록 한다”며 “어떤 사단법인이라도 그렇게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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