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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한자(漢字)교육

 

한글과 한자(漢字)교육

  •  기자명서울일보
  •  
  • 입력 2022.01.1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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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식(순천향대 겸임교수)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인정하는 바이거니와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한글은 배우기 쉽고 발음의 폭이 넓어 어떠한 외국어라도 우리글로 표기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중국어의 발음이 불과 수백 개에 지나지 않으며 일본어가 종성발음이 제한되어 있음은 물론 한자의 도움이 없으면 의사표현이 불편할 정도의 한계가 있음에 비추어보면 한글은 놀라울 만큼 독창성과 활용성이 뛰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독립국가를 세운 이후 줄곧 한글전용정책을 채택해 왔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기리고 있을 만큼 우리글에 대한 자부심이 크고 한글에 대한 긍지가 높은 게 사실이다.

세대가 바뀌면서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던 관행도 점차 줄어들어 이제는 일반 서적은 물론 심지어 전문 학술서적과 논문에서조차도 한자를 찾아보기가 어렵게 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초⸳중등 교육현장에서도 한자나 한문을 배우고 가르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선택과목으로 한문시간을 약간 설치하고 있을 뿐이다.

고등학교에서 한문을 선택과목으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지만 수능시험에 한문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극히 드물 만큼 한문은 ‘까다롭고 어려워서 배우기 힘들고 별 쓸모가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문수업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고 한문 담당교사는 가르칠 의욕을 상실하고 있다. 사범대학 한문과를 졸업한 예비교사들의 취업길이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아이러니칼 하게도 한글의 우수성이 가져온 자랑스러운 귀결일 수 있다. 즉 중국어나 일본어처럼 한자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한글의 뛰어난 장점 때문에 한자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한글전용에서 오는 불편이 간과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한글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에서 유래하고 있어서 한자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한글어휘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가 수년 전에 교원연수 강의 중에 ‘수월성교육’에 대한 언급을 한 일이 있는데 젊은 교사들이 그 용어를 ‘수월하게’ 즉 ‘쉽게 배우는 학습’의 의미로 받아들여서 의사전달이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한자의 수월성(秀越性)을 우리말의 ‘수월하다’는 말로 잘못 이해한데서 온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한문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사람도 한글로 써놓은 글을 읽으면서 때로 의미파악에 혼동을 느끼는 일이 있거니와 한자를 접하지 못한 채 자라나는 젊은 세대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교과서에 나타나는 전문용어들을 한글로 이해시키는 일이 때로 쉽지 않은데 어원인 한자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으면 상세한 설명이 없어도 그 뜻이 분명해진다.

전도체(傳導體) 반도체(半導體) 같은 용어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한글의 어휘에 해당하는 한자를 알고 있으면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하고 새로운 어휘를 독창적으로 파생시킬 수 있는 역량도 커져서 우리글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초·중등학교 과정에서 한글만 배워 쉽게 글을 읽다가 대학생이 되면 어려운 전문용어들의 뜻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많은 대학생들이 흔히 직면하는 난관이며 강의하는 교수의 입장에서도 전문적이고 난해한 학술용어를 이해시키는 일이 쉽지 않게 느껴지는게 현실이다.

물론 한자 대신 영어를 통해 충분히 덮어갈 수 있다고 말하겠지만 여러 중요한 교육의 측면들을 고려한다면 한자교육을 통해 이를 극복하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적지 않은 한글 어휘가 한자에 기반하기 때문에 한자를 알고 있으면 의미파악이 훨씬 빠르고 같은 문화권의 언어이기 때문에 사고와 언어구사력의 효과적인 증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국제어로서의 영어에 밀려 한자와 한문을 지나치게 소홀히 취급해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자를 중국의 언어로 치부하고 버려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며 역사와 문화를 소홀히 여기는 어리석음의 표출일 수 있다.

실제로 문제의식을 지닌 학부모들 중에는 초⸳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에게 사교육기관을 통해 한자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녀의 지적 성장을 기대하는 부모들이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교육이 그러하거니와 한자나 한문도 어려서부터 배우게 하면 곧잘 익히게 마련이다. 어린이들은 지적인 가능성이 커서 여러 개의 언어를 동시에 학습해도 곧잘 배우는 것을 교육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학습경험을 가진 아이들은 자라면서 다른 모든 과목을 공부하는데도 쉽게 이해하고 표현능력이 신장되며 사고력이 확장되어 넓고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한글전용정책은 우리나라의 일관된 교육정책으로 오래 지속되어 왔지만 그 보완책도 강구할 필요가 절실해 보인다.

모든 학생들에게 많은 양의 한자를 익히게 할 필요는 없겠지만 한글 어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필수한자를 선정해서 초등학교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생각한다.

기초적인 한자를 익히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중등학교에서 갑자기 한문과목을 이수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이 큰 부담을 느끼고 학습의욕도 저하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는 것은 한글을 구사하는데 유용한 밑거름이 되는 동시에 위대한 우리 한글을 더 우수하게 발전시키는 동인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저자소개

교육장 역임

호서대, 순천향대 대학원 겸임교수

신성대학교 초빙교수

학교법인 인덕하원 이사

나사렛대학교 고전교실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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