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탈북민 지원 사업’ 미끼 던지고 “10억” 편취...태영호 아들 사기 피해자 증언

 태영호 아들, 피해자에게 미국 지원받는 탈북민단체 교체하자며 접근

이승훈 기자 lsh@vop.co.kr

“제가 회수하지 못한 게 10억원 정도 됩니다.”

A 씨가 피해 금액을 추산하며 한 말이다. A 씨와 그의 지인들은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의 아들 태 모(32) 씨에게 속아 10억원이 넘는 가상화폐 테더(USDT)를 여러 사람 명의로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했다. 그는 설마 태 씨가 아버지 태영호 처장의 직위와 경찰과의 친분 그리고 당국의 신변보호를 받는 특수한 신분 등을 이용해 10억이 넘는 가상화폐 사기를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탄식했다.

태영호 처장이 페이스북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하자, 일부 언론은 ‘4700만원 빌려주고 못 받았다’는 한 명의 피해사례만 언급하며 해당사건을 보도했다. 하지만, 민중의소리가 직접 접촉해서 확인한 피해자만 4명이다. 그중 A 씨 일행은 10억원 상당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태 처장의 사과에는 “아들이 해당 사건과 관련해 성실한 자세로 수사에 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뿐이었다. 피해보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A 씨는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말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A 씨는 “페이스북에 사과한 게 사과인가, 우리에게 전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민중의소리는 9월 15일 통화 인터뷰에 이어, 27일 오후 7시 서울의 한 카페에서 직접 A 씨를 만나 자세한 사정을 들었다. 그런데 A 씨가 전해준 태 씨의 말에는 논란이 될 수 있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A 씨는 몇날며칠 잠을 못 잔 것처럼 얼굴에 피곤이 역력하고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었지만, 차근차근 태 씨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미국 지원받는 탈북민단체 교체하자며 접근

A 씨에 따르면,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아들 태 모(32) 씨는 A 씨에게 미국의 지원을 받는 탈북민 단체를 만들 계획이라며 해당 단체의 재무를 담당해 달라면서 접근했다. ⓒ민중의소리

A 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A 씨는 여태까지 가상화폐 환전·대출 사업도 한 경험이 없다고 밝혔다. 대기업 출신인 그는 현재 중견기업에서 재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짬나는 시간에 지인들과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A 씨는 지난해 일을 하다가 태 씨를 만났다. 태 씨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주영국북한대사관 공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망명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탈북민의 자립을 지원하는 단체를 설립해 보자는 태 씨의 제안을 진지하게 믿었다고 한다. “이곳 카페에서 얘기했어요. ‘미국 자금 끌어다가 아버지가 하는 탈북민 네트워크가 있는데, 지원받을 수 있는 기간이 끝나가니 다른 단체로 바꿔야 한다. 그걸 함께 만들자’는 거예요. 내가 뭘 해주면 되느냐고 했더니, 재무 쪽을 맡아달라고 했어요. 재무는 제가 원래 하던 일이니까, 응했죠.”

A 씨의 설명에 따르면, 태 씨가 제안한 사업은 단체를 설립해 탈북민의 자립을 지원하는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대북전단 살포 등은 무의미하니, 그 돈으로 탈북민 자립지원 단체를 통해 성공한 탈북민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A 씨는 설명했다.

실제 태 씨가 A 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8월에 보낸 카카오톡 문자를 보면, 태 씨는 “북한자유미한동맹을 만들어서 진행할 예정”이고 “어제 미국에서 크게 한번 소리 냈다”면서 미국 워싱턴 D.C 소재의 ‘자유아시아방송’과 한 인터뷰를 공유했다. 이는 대북전단 말고 성공한 탈북민 이야기를 알리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다루는 기사였다. 해당 기사는 삭제됐지만, ‘조갑제닷컴’에서는 여전히 볼 수 있다. 또 태 씨는 “놀라운 소식”이라며 “미 국무부 북한인권 담당으로부터 120억 유치자금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자신이 미국에 다녀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미국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보냈다.

“태○○의 제안은 올해 10월~11월까지 가상화폐 환전과 대출을 통해 단체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고, 12월에 설립하자는 거였어요. 그럴싸했어요. 탈북민의 자립을 지원한다? 의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운영 자금도 태○○가 받아오겠다고 하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죠. 실제 (태○○가) 미국도 다녀왔고요. ‘사기 치러 미국에 갔나’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어요.”

아버지 힘으로 극동방송 입사?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아들 태 모(32) 씨와 A 씨의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보면, 태 씨는 A 씨에게 극동방송에 입사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같이 밝혔다. ⓒ민중의소리

탈북민 지원 단체 사무실을 어떻게 구할지도 논의했다고 한다.

“그럼 사무실은 어떻게 할까 했더니, 극동방송 이사장이 자기 아버지랑 친하니까 극동방송 사무실 하나를 내줄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이것을 또 왜 믿었냐면, 실제로 태○○가 극동방송에 입사했어요.”

민중의소리가 극동방송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태 씨는 정말 극동방송 제주지사에서 일하다가 최근 퇴사했다. A 씨가 태 씨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보면, 5월 초 태 씨는 A 씨에게 “극동방송 가서 미팅하고 점심(을) 아버님이랑 저랑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와) 점심 식사”한다더니 “5월이나 6월부터 극동방송에서 일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태 씨는 “극동에 있으면 이게 미국계 VOA 지사라 미국 쪽으로 손을 뻗기 수월해진다”면서, 극동방송에 입사한 것도 탈북민지원 사업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가 방송에 아무런 그게 없거든요. 근데 입사하니까, 저기를 저렇게 쉽게 들어가지네? 아버지 위세가 있긴 하구나 싶은 거죠. 그래서 극동방송 사무실 얘기도 믿었어요.”

그렇게 태 씨는 A 씨를 이용해 가상화폐 환전과 대출 사업을 시작했다. A 씨는 “환전과 대출을 통해 돈을 벌어서 탈북민지원단체 설립에 사용하겠다는 게 태○○의 계획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아버지 직위와 특수한 신분 활용

명의도용 가상화폐 대출

태 씨는 A 씨에게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도움을 주겠다면서 A 씨가 운영하는 소규모 회사의 투자제안서와 거래실적 등도 받아 갔다. A 씨는 이게 다른 피해자들을 상대로 한 투자사기에 사용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태 씨는 다른 피해자 B 씨에게 돈을 불려주겠다면서 투자를 종용했는데, 이때 A 씨 회사의 투자제안서 등을 이용했다. 태 씨는 A 씨 회사가 투자자금을 유치한 내역을 보여주며 “저희 회사 투자자금 유치 후 굴리는 상황”이라고 B 씨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태영호 처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카톡방 사진과 모자이크 처리 없는 가족관계증명서까지 보여줬다. B 씨는 태 씨를 믿고 수천만원을 투자했는데, 막상 A 씨 회사 계좌로 입금된 돈은 없었다고 한다. A 씨는 “우리가 준 투자제안서 등으로 B 씨를 낚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태 씨는 B 씨의 명의로 A 씨 일행로부터 수억 원의 가상화폐를 빌렸다. 하지만 B 씨에게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막상 B 씨는 자신의 명의로 대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B 씨는 이 사실을 A 씨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9월에서야 알게 됐다. B 씨는 올해 5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태 씨를 만나 가상화폐 환전을 부탁하며 신분 확인용으로 신분증 등을 넘겼는데, 이게 B 씨도 모르게 대출에 사용된 것이다.

경찰과의 친분, 지인 개인정보 등 활용

태영호 처장 아들 태 모(32) 씨는 자신이 신변보호팀 경찰관들과 매우 친해서 피해자들의 신용도 경찰을 통해 알 수 있다는 듯 이같이 A 씨에게 말한 것으로 파악된다. ⓒ민중의소리

태 씨가 A 씨를 이용해 벌인 가상화폐 환전·대출은 처음부터 규모가 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십만원 단위의 환전으로 시작해, 수백만원의 대출로 이어지더니,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단위로 규모가 점점 커졌다.

규모가 커지니, 태 씨를 믿던 A 씨도 걱정이 커졌다. 그때마다, 태 씨는 A 씨에게 피해자들의 자산 정보를 보여줬다고 한다. 실제 카카오톡 대화기록을 보면, 태 씨는 A 씨에게 피해자 C 씨와 D 씨의 자산을 보여주며 안심을 시켰다. 태 씨가 보여준 자산관리 애플리케이션 화면에 적힌 C 씨의 총자산은 3억2928만원 상당이었다. 태 씨는 “이 중에 1억 이상이 외화예금”이라고 설명했다. 또 태 씨가 D 씨의 자산이라며 보여준 화면에는 3억2984만원이 적혀 있었다. 태 씨는 A 씨에게 “저거 우리한테 400만원 생활비 제외하고 넘긴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A 씨가 피해자 C 씨와 D 씨에게 확인해 본 결과 태 씨가 보여준 정보는 모두 거짓이었다고 한다. A 씨는 “모두 합성한 거였다”라고 말했다. C·D 씨는 태 씨와 고려대 동문이다.

또 A 씨가 불안해할 때마다, 태 씨는 수시로 경찰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는 특수한 신분이라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심지어 태 씨는 “일단 (경찰) 신변팀 쪽에도 내용 공유했고, 얘도 능력됩니다”, “신원조회는 아까 강남경찰에 하긴 했어요”, “깡패 안 쓰고 경찰 쓰면 더 효율적이죠”, “걔 개인정보 등 받아서 강남경찰서 조회 넘김요”라면서 A 씨를 안심시켰다.

이 같은 태 씨의 말을 얼마나 신뢰했느냐는 질문에, A 씨는 “안 믿기 힘들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제 경찰과 찍은 사진도 보여줬어요. 그 당시에는 그럴싸했습니다. 신변보호 당연히 해야 할 것 같았고, 나 같아도 경호를 붙일 것 같았어요. 자연스럽게 친해졌겠지 생각했어요.”

“진실과 거짓을 섞었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태 씨가 이 같은 방식으로 A 씨 일행으로부터 빌려 간 가상화폐는 13억원 상당이다. 이중 이자 명목 등으로 갚았다는 3억원을 제외하면, A 씨는 태 씨에게 10억원이 넘는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한다. 올해 5월부터 8월 사이 약 3~4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A 씨는 7월 말~8월 초쯤 태 씨에게 속았다고 확신했지만, 이미 늦은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태○○의 말은 모두 뻥이었는데, 그때는 ‘그렇구나’ 싶었어요. 태○○가 교묘하게 진실과 거짓을 섞었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치밀한 데다 너무 과감하니까 속을 수밖에 없었어요.”

A 씨는 태 씨가 여러 피해자에게 투자받거나 자신에게 빌린 돈을 전부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날렸다고 보고 있다. 태 씨의 가상화폐 계좌를 추적해 본 A 씨는 “선물거래 후 전부 탕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돈을 모두 날렸다는 것이다.

문제는 태 씨 측의 입장이다. 태 씨의 어머니는 A 씨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갚아줄 능력이 안 된다”면서, 되려 A 씨에게 “우리 집 망하게 하려고 한 거 아니냐”라고 화를 냈다. 또 태영호 처장 역시 다른 피해자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태○○는 성인”이라며 “그러면 채무채권 관계는 부모와 전혀 관계없다”고 말했다. A 씨와 다른 피해자들은 이후 여러 차례 태영호 처장과 태 씨 어머니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언론보도 후 태영호 처장이 페이스북에 남긴 네 줄의 사과문이 전부였다.

한편, A 씨는 2일 고소장을 우편으로 발송했다. 지난 9월 26일에는 피해자 E 씨가 주소지 관할 지역인 대구에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오는 4일 오후에는 피해자 B 씨가 경기도 용인 소재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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