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립형 조림으로 생태복원 성공한 몽골 ‘하늘 마을’


김경애 2015.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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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조림·후원 넘어 환경난민 30명이 정착해 주민자립형 조림
방풍림과 유실수 재배 5년만에 첫 수확, 유엔이 주목하는 성공모델

er4.jpg» 조림사업의 황사 방지 효과를 한눈에 보여주는 울란바토르 북쪽 바양노르의 지난봄 장면. 푸른아시아에서 2007년부터 조성해놓은 조림지대의 바깥쪽으로만 누런 모래바람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에서는 황사가 불어오면 마스크를 쓰거나 외출을 자제하면서 지나갈 때까지 잠시 불편을 참으면 됐죠. 그런데 막상 황사 발원지에 와서 보니, 여기 사람들에게는 당장 생계와 생존이 걸린 문제였어요. 그들의 삶터를 지켜주는 게 더 근본적인 황사 대책이자 기후온난화 해법이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달 말,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동쪽 50㎞ 투브 아이막(道) 에르덴 솜(郡)의 하늘마을. 한국의 환경단체 푸른아시아(사무총장 오기출)에서 파견한 대학생 대원 최유정(24·남서울대 사회복지학)씨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조림사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하늘마을은 푸른아시아가 2010년부터 6년째 사막화 방지 조림사업으로 116㏊(30만평)에 10만여그루를 심어 일구고 있는 곳이다.
er2.jpg» 지난 7월24일 희망래일 일행 30여명이 양동이로 물을 길어 조림지에 물주기 작업을 하고 있다.

여름 조림지 자원봉사를 하러 온 희망래일의 회원들은 저마다 양은 양동이 2개씩을 나눠 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조림지 한가운데 임시 저수조에 물이 제법 가득했다. 가로 5m×세로 2m 크기로 땅을 판 뒤 비닐막을 깔고 관정을 뚫어 끌어올린 지하수를 담아둔 것이다.

일행은 양동이로 물을 퍼날라 아직은 어려 보이는 나무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왔던 회원들이 심어놓은 묘목들이었다. 중학생부터 팔순 어르신까지 30여명의 일손이 부지런히 움직이니 500여그루 물주기 작업이 1시간 만에 끝났다.

er6.jpg» 나무를 심기 위해 깊이 판 구덩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나무들을 살펴보니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나무들이 한그루 한그루 동그란 구덩이 속에 숨은 듯 심어져 있었다. 뿌리 주변에 흙을 두텁게 북돋워주는 일반적인 나무 심기와 정반대인 것이다. “바람이 워낙 거세기 때문에 도드라지게 심으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날아가 버리거든요.”
 
조림지 주변으로는 울타리가 빠짐없이 둘러쳐져 있다. 그 주변으로는 좀더 키가 큰 나무들을 심어놓았다. “워낙 땅이 척박해서 그런지 3년간은 키가 거의 자라지 않아요. 우선 뿌리로만 자라는 거죠.

er7.jpg» 가장자리에 방풍림을 심고 가장 안쪽에 토종 유실수를 심는다.

그런 다음 뿌리가 물을 빨아올리면서부터는 쑥쑥 키가 올라오구요. 적어도 초기 3년 동안 바람을 철저히 막아주고 1주일에 20ℓ씩 물을 충분히 공급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조림구역을 정한 뒤, 울타리를 따라 위아래 바깥쪽으로는 겨울엔 동면하고 봄에 날이 풀리면 빨리 자라는 시베리안 포플러를 심어 방풍림부터 키운다.

그 안쪽으로 포플러보다는 키도 잎도 작지만 가지가 옆으로 많이 자라 바람막이가 돼주는 비술나무와 버드나무를, 가장 안쪽에는 우흐린누드, 차차르간 등 토종 유실수를 교차로 심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의 체감 현장이다.

하지만 푸른아시아가 이 값진 진리를 깨닫기까지 10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1998년 창립한 뒤 몽골 정부와 ‘그린벨트 프로젝트’ 협약을 맺은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막화 방지 조림사업에 나섰다. 에르덴과 함께 바가노르, 바양노르, 돈드고비, 다신칠렌, 여기노르 등 6곳에서 조림사업을 하고 있다.

er5.jpg» 조림지에 불어오는 모래바람. 조림이 쉽지 않은 환경이다.

초기엔 무작정 나무를 심었다가 바람과 냉해로 고사되면서 방풍림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뿌리가 내리기도 전에 유목민들이 가축을 풀어 먹이는 바람에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몽골인들이 신성시하는 ‘종머드’ 지역 인근에 조림지를 조성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100그루 소나무 숲’이라는 뜻의 종머드가 남아 있는 지역은 원래 나무가 살기에 좋은 환경이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조림지역이 넓어지면서 파견 대원이나 자원봉사자만으로 무한정 운영할 수 없다는 한계도 드러났다.
 
“조림사업은 백년대계이니, 대대로 정착해 살아갈 주민들이 숲을 가꾸고 지키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얻었죠. 그래서 단순 조림과 황사 방지에서 일자리 창출과 소득 사업으로 주민자립형 지속가능 개발을 지원하는 길을 찾았습니다.”
 
에르덴 하늘마을은 가장 성공적인 생태복원 사례로 꼽힌다. 인근 테렐지 국립공원의 계곡을 빠져나온 초속 25~35m의 강한 바람이 표토를 쓸어 황폐화시키는데다 울란바토르시의 건설 붐으로 과도한 골재 채취까지 가세해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중이었다.

원래 흐르던 강이 마르면서 말이 숨을 정도로 울창했다는 종머드에는 소나무 60여그루가 듬성듬성 남아 있었다. 2008~2009년에는 가뭄 등으로 가축이 몰사하는 대재앙 ‘조드’로 인해 수많은 유목민들이 살길을 잃고 도시로 내몰리기도 했다.
 
er3.jpg» 1년간 상주하는 자원봉사 대원인 한국 대학생 최유정(왼쪽)씨와 주민 대표 앙흐 벌드(오른쪽) 팀장.

“해마다 1년 임기로 대학생 파견대원 2명이 상주하고, 환경난민 20명을 고용해 직접 조림지 관리를 맡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민 대표를 정해 자율적으로 공동체를 이뤄가기 시작하더군요.”
 
멀리 1500㎞ 떨어진 고향 호브드 아이막에서 유목을 하다 겨울 조드로 난민이 된 뒤 초기부터 참여한 앙흐 벌드(34)가 바로 그 대표다. 그는 아내와 삼남매를 키우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해 푸른아시아 직원으로 정식 채용됐고, 17가구 30명의 주민들과 게르를 짓고 살며 생태복원과 주민자립 사업을 이끌고 있다.

특히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약 2억년)로 비타민 나무(레몬의 100배 이상)로 불리는 차차르간은 지난해 490㎏을 수확해 판매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블루베리 계열인 우흐린누드도 ‘소의 눈’이란 뜻처럼 까만 열매를 맺기 시작해 올해 약 200㎏을 수확할 예정이다. 또 에코투어 방문객들에게 음식을 판매해 주민공동기금을 모아 협동조합 준비작업도 진행중이다.
 
“지금도 국민의 60%가 유목민인 몽골은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로 인해 국토의 90%가 사막화되면서 대규모 환경난민이 도시로 내몰리고 있는 최대 피해국입니다. 동북아 황사의 50%가 발원하고 있지만 스스로 가해 책임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실정이죠.”

er1.jpg» 에르덴 하늘마을은 몽골 최대 도시 울란바토르에 가까워 개발로 인한 황폐화의 길을 걷다 2010년부터 한국 기업과 지자체 후원, 자원봉사 지원을 받아 주민자립형 생태복원과 수익사업의 결합 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하늘마을 게르촌에 정착한 환경난민의 아이들은 한국 방문객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려 논다.
 
푸른아시아의 김종우 대외협력국장은 “사막화 문제는 한국은 물론 지구촌 전체가 당면한 과제인 만큼 에르덴을 비롯한 몽골의 생태공동체형 지속가능 개발 사례를 유엔에서도 반기고 있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몽골어로 에르덴은 보석입니다. 멀리 한국에서 온 여러분이 심고 물을 준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루게 되면 우리 마을은 분명 초원의 푸른 보석으로 다시 빛날 겁니다.”

현지인 통역을 통해 전해준 앙흐 팀장의 인사말에서 ‘몽골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울란바토르/ 글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푸른아시아·희망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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