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4일 오전 7시 40분 경기도 파주 육군 1시단 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해 놓은 목함 지뢰가 폭발했습니다. 이 사고로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직후 김모 하사 등 부사관 2명은 헬기로 군 병원에 이송됐습니다. 부사관 2명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다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당시 김모 하사 등 10여 명은 군사분계선 이남 440m 지점의 우리 군 수색정찰로 상에 있는 통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우리 병력이 통문을 지나는 순간 지뢰가 폭발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북한군이 한국군 통문 지역에 목함지뢰를 설치해 아군 2명이 부상한 것은 북한의 고의적인 살상 행위이자 침투작전으로 봐야합니다. 북한군의 군사도발, 심각한 정전협정 위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사건을 돌이켜 볼 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왜 8월 4일 사고가 지금에서야 공개됐느냐는 부분입니다.
‘유실된 지뢰 vs 북한군 소행’
북한소행 목함지뢰 폭발 사고가 났던 8월 4일, 대부분의 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KBS뉴스, 그것도 경인방송의 지역 소식에서만 보도됐습니다.
8월 4일 KBS9 경인에서는‘서부전선 DMZ 지뢰 추정 폭발… 부사관 2명 부상’이라는뉴스를 보도했습니다. ‘뉴스9 경인방송’에서는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폭발 사고’가 일어났으며 ‘폭우 등으로 유실된 대인지뢰나 부비트랩을 밟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KBS9 경인방송은 군 당국이 폭발에 북한이 연루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MBC,SBS.JTBC 등 방송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언론은 ‘목함지뢰 폭발 사고’를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매체에서도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제 지뢰’는 아니며 ‘폭우로 유실된 지뢰’라고 보도했습니다.
모든 언론이 침묵하거나 ‘폭우로 유실된 지뢰’라고 보도한 상황에서 김광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폭발된 지뢰는 북측의 목함지뢰이며, 유실이 아닌 매설’이라는글을 올렸습니다.
김광진 의원이 주장한 ‘유실이 아닌 매설’의 파문은 컸습니다. 우리 병사들이 다니는 통문과 수색로에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했다는 사실은 고의적인 도발행위이자 군사도발이기 때문입니다. 김광진 의원의 주장을 오마이뉴스가 8월 9일 오후 5시 2분 ‘DMZ 또 뚫렸나..터진 지뢰는 북한제’라며 보도했습니다.
국방부는 이미 사고 지점이 통문이자 북한 쪽 지형보다 높아 유실된 지뢰가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나, 수거된 지뢰 잔해가 녹슬지 않았던 점 등을 통해 북한군 소행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소행 목함지뢰 폭발사고, 엠바고를 걸어야 했나?’
국방부는 정밀 조사가 끝나면 공개하라는 엠바고를 걸었지만, 과연 엠바고가 필요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가장 큰 이유는 조사 이후의 공백입니다.
8월 6일부터 7일까지 ‘국방부 전비태세 검열단’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특별조사팀’은 합동으로 폭발사고 현장조사를 했습니다. 정밀조사를 통해 합동참모본부는 유실지뢰일 가능성은 희박하고, 오히려 북한군이 의도적, 불법적으로 군사분계선을 침범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8월 7일 조사가 끝났는데, 왜 국방부는 8월 8일이 아닌 8월 9일 오후 2시에 기자를 상대로 브리핑하고 현장 방문을 했을까요? 또 국방부 출입기자단은 8월 9일이 아닌 8월 10일에 보도했을까요?
① 작전도 아닌 조사에 엠바고를?
엠바고는 필요합니다. 군사 작전이 시작될 시간과 규모 등이 사전에 공개한다면 당연히 안 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작전이 아닌 조사입니다. 벌어질 사건이 아닌 벌어진 사건, 충분히 북한소행임을 알 수 있는 증거가 사전에 나왔는데도 엠바고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② 주말이라 엠바고를?
국방부는 8월 10일 월요일 브리핑을 했고, 모든 언론이 일제히 ‘목함지뢰 북한 소행’이라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금요일에는 국민이 쉬어야 하니 엠바고를 걸고 월요일에 보도하는 친절함을 보였을까요? 과거 국방부나 검찰 등의 정치적 사건의 민망한 중대발표가 금요일에 있던 적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③ 전쟁에는 주말이 중요치 않다.
아이엠피터가 이번 사건에 왜 엠바고가 필요했냐고 반문하는 이유는 북한의 도발에 우리 군이 어떻게 대응했느냐 때문입니다. 북한이 아군 지역까지 침투하여 지뢰를 매설했다면 DMZ 전 지역의 통문이나 수색로에 대대적인 지뢰 수색 작업을 벌었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합동참모본부의 발표에는 ‘DMZ 경계 작전 태세를 재점검하겠다’라는 보도자료 뿐이지 전군의 수색 작업 결과는 없었습니다.
북한군이 침투해 아군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군사도발에 대한민국 국군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남남갈등 조장 의도’라는 분석뿐입니다. 아이엠피터는 군당국이 ‘목함지뢰’를 매설한 북한군의 도발 원인이 왜 ‘남남갈등’을 불러일으킨다고 보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이 아군 통문 지역과 수색로까지 와서 지뢰를 매설했는데도 몰랐다는 ‘경계 부실’과 전군 DMZ에 얼마나 지뢰 매설과 같은 군사도발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수색하고 조사’하는 일입니다. 또한 군사도발에 대한 대한민국의 ‘군사적 대응’입니다.
고작 대북 확성기 방송뿐인 국군이 어떻게 ‘단호한 대처’를 할지 자못 궁금해지면서, 오히려 국방부가 북한군의 군사도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에 실망감이 듭니다. 안보만큼은 ‘새누리당 박근혜’라고 주장했던 대통령에게 어떤 강력한 군사대응 작전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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