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와(1979년) 정치인이 되기까지(1998년) 육영재단과 영남학원 등 두 재단에서 비리와 경영부실로 인해 불명예 퇴진했다. 두 재단 말고도 박 대통령이 관여했던 재단은 두 개 더 있다. 정수장학회와 한국문화재단이다. 그런데 이 네 재단의 주요직책에는 어김없이 최태민과 관련된 인물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박근혜 있는 곳엔 어김없이 ‘최태민의 사람들’
육영재단은 딸 최순실씨과 사위 정윤회씨 등이, 영남학원 재단 운영에는 또 의붓아들 조순제 씨와 조씨의 외삼촌 손윤호씨가 깊숙이 관여했다. 한국문화재단의 이사 명단에도 최태민의 인척이 포함돼 있다. 정수장학회는 ‘최태민의 사람’으로 알려진 최필립이 이사장직을 맡았다. 박정희 정권의 마지막 비서실장인 김계원씨의 증언이다.
“최태민 단속을 위해 큰 영애(박근혜) 전속 비서실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큰 영애 추천을 받았더니… 최태민과 가까운 걸 알고 다를 사람을 고르라 했다. 이번엔 최필립 비서관을 지명하더라… 그런데 나중에 보니 최필립도 최태민을 아는 거야.” (김계원/2005년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에 입문하면서 박 대통령은 ‘최태민의 사람들’을 ‘비선라인’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들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내 측근이 아니다” “오해다” “사실이 아니다” “얼굴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부인하거나 대답을 회피하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최태민과의 관계까지 부인하기도 했다. 최태민의 전횡이 화근이 돼 박 육영재단의 이사장직에서 물러날 때다. 박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
“최 목사(최태민)는 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이다.”
반복돼 온 ‘사실 부인’ 수법
‘박근혜-최태민’의 ‘각별한 관계’를 잘 알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 면전에서도 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그럴 만큼 숨기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박 대통령은 최태민과의 관계 40년 동안 ‘최태민의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지키고 보호하려고 했다. 왜 사실을 부인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던 당사자들은 침묵으로 화답하곤 했다.
‘사실 부인’ 수법은 두 가지 목적을 띤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최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 테고, 두 번째로는 '관계' 속에 놓여 있는 무엇인가를 숨기기 위함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딱 한 사람만이 이런 ‘사실 부인’ 수법에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최태민의 사람들’ 중 유일하다.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최순실씨의 오빠뻘인 조순제씨가 그랬다.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이 80년대 말 작성한 ‘최태민 가계도’에 따르면 최태민은 다섯 명의 부인 사이에서 3남 6녀를 둔 것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아들 세 명 중 한 사람만 최태민과 함께 생활했다. 다섯째 부인인 임선이씨의 전남편 소생인 조순제씨가 바로 그다. 비록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르진 않았지만, 줄곧 최태민의 곁을 지키며 수십 년 동안 충실한 참모 역할을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청문회장. 강훈 변호사가 박근혜 후보에게 질문을 했고 박 후보는 짧게 대답했다.
“박 후보는 조순제씨를 아십니까?”
“모릅니다.”
‘최태민 사람들’ 중 박근혜에게 맞선 유일한 사람
최순실씨의 오빠는 박 후보의 ‘사실 부인’을 온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지속된 관계를 부정하는 모습에 화가 났던 모양이다. 그가 나섰다. 자신을 ‘영세교 교주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대한구국선교단, 대한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의 홍보실장이며 새마음병원의 사무처장이었다’고 소개하면서 “박 전 대표(박근혜)와 이들 단체를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씨는 “박 전 대표도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옳다”고 목청을 높이며 한나라당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조씨가 박근혜 후보의 위증을 고발하면서 쓴 편지다.
“한 시민의 조그마한 소명감이 국가지도자를 검증하는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진정서를 안강민 국민검증위원장께도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7.8.8. 조순제 올림.”
하지만 진정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박 후보가 사실을 은폐하거나 축소할 뿐 아니라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정황이 부지기수였지만, 의혹만 무성한 채 끝나고 말았다. 2012년 대선 때도 그랬다. 박 대통령은 ‘사실 부인’ 수법으로 일관했고, ‘최태민의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닫은 채 ‘비선라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줘야”
‘최순실 게이트’는 현직 대통령이 개입된 국정농단 사건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2007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친 ‘박근혜 검증’이 제대로 작동해 ‘최태민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정확히 이뤄졌다면, 이번 같은 희대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젠 모두가 안다. 박 대통령이 목숨 걸고 최태민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그런 최태민의 아들이 박 대통령에게 했던 충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아니, 더 절절하다. 박 대통령은 통회하는 심정으로 이 충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할 때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옳다.”
박 대통령이 먼저 은폐와 거짓의 허울을 벗어야 한다. 그래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수렁에서 나라와 국민을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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