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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 활동가에 ‘체포’ 운운하며 전화·문자 폭탄…검찰의 채권추심식 강압수사


강경훈 기자 qa@vop.co.kr
발행 2020-07-17 19:58:04
수정 2020-07-17 19: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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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정의기억연대 회계 관련 고발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오래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시절 활동가로 일했던 A씨에 출석을 요구하며 체포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겁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대략적인 혐의조차 고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A씨를 피의자로 입건했고, 최초 출석 통보 이후부터 피의자 전환 통보를 하기까지 사흘 간 무려 10여차례 넘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냈다.
17일 정의연 등에 따르면 피의자로 입건된 A씨 측은 수사팀이 인권보호 수사준칙을 위반해 수사 대상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사건 관할청인 서울서부지검 인권감독관에 신고했다. 이와 함께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해 피의자 입건의 적절성을 심의해달라고 신청했다.
A씨는 2013년 1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정대협에서 활동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사업 실무를 했었다.
A씨는 지난 13일 오전 서울서부지검 김모 검사실로부터 검사실 연락처와 함께 연락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A씨는 메시지에 아무런 사유도 적시되지 않아 보이스피싱이나 스팸문자로 생각하고 회신하지 않았다.
그러자 두 시간여 후 해당 검사실은 A씨에게 ‘2014년 정대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치료사업 관련하여 문의드릴 사항이 있으니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고, A씨는 검사실에 연락해 “6년 전에 일했던 내용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고 2015년 2월에 퇴사해 제주도에 내려와 현재 6살 된 아이를 전담해서 키우고 있어 참고인 조사를 나가기 어렵다”며 “왜 부르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수사관은 ‘특별한 질문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정대협 전반 상황에 대해 확인하고자 했고, 2014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치료사업 담당자로 이름이 보여서 전화했다. 나중에 문의 사항이 생기면 전화를 할 테니 연락을 받아달라’는 취지로 답했다.
A씨는 다음날 해당 검사실로부터 ‘제주지검으로 내려갈테니 16일 10시까지 오라’는 전화 통보를 받았고, 이에 “그 시간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시간이라 어렵다”고 했다. 이어 “오래 전 일이라 기억나는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어서 가고 싶지 않다”고 하자, 수사관은 ‘번거롭게 소환장과 체포영장이 발부돼 여러 사람이 가게 될 것이고, 그럼 본인이 서울로 올라와야 한다’는 취지로 목소리를 높였다고 A씨 측은 전했다.
A씨 측은 인권감독관 측에 낸 신고서에서 “전화를 끊고 피의자는 자신이 정대협에서 근무했던 시기에 일했던 내용을 기억해보려고 했는데, 2015년 초에 임신을 해서 퇴사하고 이후 출산해 제주도로 내려와 아이를 키우는 일에만 집중해서인지 당시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나지가 않았다”고 설명했다.
A씨가 30여분 뒤 전화를 걸어 해당 수사관에게 “여전히 기억나는 것도 없고 가고 싶지 않다. 왜 소환장과 체포영장을 말하며 협박을 하느냐”고 문제 제기하자, 돌아온 답은 “왜 간단하게 끝날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냐”는 것이었다. “아는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내가 피의자가 될 가능성도 없다고 하다”는 A씨의 말에는 “피의자가 될지 말지는 우리가 판단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A씨는 같은 날 오후 3시 이전 자녀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시간을 전후해 검찰에서 온 전화를 두 차례 받지 못했고, 오후 3시께 검찰은 A씨에게 “피의자로 입건됐으니 16일 오전 10시까지 제주지검으로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검찰은 오후 5시 30분께에도 “피의자로 입건된 사실을 재차 알리고, 소환 요청에 답변하지 않으면 출석 불응에 따른 법적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는 문자를 보냈고, 15일 오후에도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서울서부지검이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A씨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한 횟수는 무려 10여 차례가 넘는다. 정상 일과가 끝난 지 한참 지난 시간인 저녁 7시 14분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마치 채권추심기관이 채무자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벌이는 불법 추심 행위를 연상케 한다.
A씨의 변호인은 신고서에서 “검찰이 피의자에 대해 참고인 소환을 하고 피의자로 입건하는 과정은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 협조를 구할 참고인에게 체포 등을 언급해 피의자를 겁박하고,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점을 악용해 피의자로 입건하는 등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며 “더군다나 인권보호 수사준칙 제52조, 제33조 등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또 “해당 검사실은 처음 소환 요청을 한 날 당장 조사가 필요 없다는 말을 했음에도 피의자로 입건하기 전이라 참고인 신분인 피의자에게 일방적으로 일정과 장소를 정해 출석하라고 했다”며 “수사관이 체포영장을 언급하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한 행위 역시 인권보호 수사준칙을 위반한 인권침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인권보호 수사준칙 제52조에는 참고인 조사가 필요할 때 원거리에 거주할 경우 우편진술서 등을 적극 활용하고, 출석을 거부하더라도 강압적 언사 등으로 출석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점, 제33조에는 피의자 조사 시 출석 방법과 일시 등을 정할 때 명예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
심지어 A씨는 정대협 회계나 사업과 관련한 책임자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닌, 단순 실무자에 불과했다. 정의연 측 변호인은 “고발 사건과 관련해 A씨라는 사람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서부지검은 “해당 사안에 대해 출석요구 등 과정에서 일체 위법하다거나 부당한 사항이 없었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대상자가 변호사와 상의한 후 갑자기 출석하지 않겠다면서 검사실의 전화 등 연락에 일체 응하지 않았고, 수사팀은 증거관계 등을 고려해 적법절차에 따라 대상자를 입건하고 출석 요구 연락을 했으나, 이에 대해서도 응답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A씨 측 관계자는 “변호인까지 선임해서 정상적인 수사 대응 절차를 밟고 있는데, 출석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검찰 측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편 서울서부지검은 A씨 측이 제기한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에 대해 부의심의위원회를 열어 A씨 측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강경훈 기자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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