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선균 기자회견에서 ‘특히’ 문제삼은 KBS 11월 24일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인권 침해’ 단독보도와 더불어 ‘땡윤뉴스’ 면모까지 보여준 그날의 보도

봉준호 감독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2024.01.12 ⓒ민중의소리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정 결과 음성판정이 난 지난 11월 24일 KBS 단독보도에는 다수의 수사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어떤 경위와 목적으로 제공된 것인지 면밀히 밝혀져야 할 것이며…”

12일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 발표 현장에서 봉준호 감독이 굳은 표정으로 읽은 성명서의 한 대목이다.

이날 문화예술인 기자회견은 이선균 배우에 대한 수사과정과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진상규명과 인권보호를 위한 방안 마련, 법령 제개정 등을 요구했다. 영화계와 문화계 단체들과 배우, 감독 등 개인까지 동참하겠다고 밝힌 가칭 ‘문화예술인연대회의’ 차원의 기자회견이었다.

김의성 배우와 봉준호 감독, 윤종신 가수, 이원태 감독이 나눠 읽은 성명서는 수사기관과 언론을 향해 날카롭고도 구체적인 비판이 담겨있었다. 성명서는 특히 한 언론사와 기사를 특정해 기사 삭제를 요청했다. 지난해 11월 24일 KBS 뉴스9에서 보도된 기사였다.

문화예술인들은 왜 KBS '단독보도'를 특정해 문제제기 했나


문제의 기사는, 고인을 둘러싼 여러 문제적 보도들의 문제점을 중첩적으로 가지고 있다. 성명서는 이 문제점들을 하나씩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혐의사실과 동떨어진 사적 대화에 관한 고인의 음성을 보도에 포함한 KBS는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윤종신 가수가 읽은 대목이다.

가수 윤종신(가운데)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2024.01.12 ⓒ민중의소리


문제의 기사는 경찰에게 이선균씨가 마약을 했다고 진술한 유흥업소 관계자와 이씨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며 통화녹음을 공개했다. 내용 중에는 마약투여 여부와는 관계없는 말 그대로 사적 대화의 일부분도 포함돼 있었다. 더욱이 대화내용을 텍스트로 보여준 것이 아니라 이씨의 육성을 그대로 노출했다.

수차례 마약투여 감정에서 ‘음성’이 나온 시점으로 경찰의 수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이 보도 이후 여러 언론이 이 사적 대화를 부각한 보도를 내보냈고, 이씨를 둘러싼 여론은 ‘마약 문제’에서 ‘사생활 문제’로 전이됐다.

성명서는 이 부분에 대해 강도높은 비판을 제기했다. 성명서는 “사건 관련성과 증거능력 유무조차 판단이 어려운 녹음파일이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면서 “대중문화예술인이 대중의 인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악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언론들”이라고 지적했다.

즉, 해당 내용이 이씨의 혐의를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도 아니거니와, 설령 정황을 설명해주는 간접적 증거라고 해도 굳이 이씨의 육성을 있는 그대로 노출 시킬 이유가 있었는지 지적하는 것이다.

성명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을 부각하여 선정적인 보도를 한 것은 아닌가 …(중략)… 특히 혐의사실과 동떨어진 사적 대화에 관한 고인의 음성을 보도에 포함한 KBS는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공영방송 KBS가 인격권 침해 보도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을 보면 해당 기사의 문제가 잘 드러난다. 인권보도준칙은 제2장 인격권 부분에서 “언론은 개인의 인격권(명예, 프라이버시권, 초상권, 음성권, 성명권)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인용이나 인터뷰를 이용하여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정해놓고 있다.

해당 보도가 고인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KBS는 단언할 수 있느냐고 문화예술인들이 묻고 있는 것이다.

KBS는 이날 뉴스9을 통해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보도에 사용된 녹취는 경찰의 수사착수 배경과 마약 혐의 주장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라 판단해 최대한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최대한 제한적’이라는 부분은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설령 해당 내용이 정말 보도되어야 한다고 해도 ‘음성’을 있는 그대로 노출할 마땅한 이유가 있는지 KBS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인천논현경찰서에 출석하던 중 취재진에 답하고 있는 故 이선균 배우. 그는 세차례의 경찰 출석이 모두 공개되며 경찰 출석때마다 카메라 앞에 서야했다. ⓒ뉴시스

경찰이 코너에 몰린 시점에, 경찰 수사 착수 이유 설명한 KBS


기사가 나온 시점의 문제도 성명서는 지적했다. 성명서는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정 결과 음성판정이 난 11월 24일’이라고 명시했다.

경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는 결정적 국면에서 해당 기사는 경찰이 왜 수사에 착수하게 됐는지 설명하고 있다. 보도의 후반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A 씨가 경찰에 관련 내용을 진술한데다 통화녹취까지 존재하자 경찰이 이 씨의 마약 투약 여부를 본격 조사하고 나선 겁니다. (중략)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선균 씨가 마약 투약을 한 구체적인 정황까지 상세히 진술했습니다.”

KBS 11월 24일 단독보도 화면 ⓒKBS 홈페이지 화면캡쳐


경찰은 A씨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이고 그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었다고 기사가 설명해준 셈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씨가 마약을 투약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기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다만, 이런 내용 들은 A 씨의 경찰 진술과 경찰이 확인한 간접 정황을 바탕으로 추정한 내용으로”

기사는 경찰의 수사가 ‘추정’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다만’이라는 수식을 붙임으로써 부차적 뉘앙스를 전했다.

그렇다면, 문제의 ‘음성파일’과 수사 착수 경위는 어떤 경로로 언론사에 입수됐을까. 성명서는 이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KBS 단독보도에는 다수의 수사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어떤 경위와 목적으로 제공된 것인지 면밀히 밝혀져야 할 것”

성명서는 수사당국에 요구한다는 부분에서 수차례 ‘부적법’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서 “수사당국은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했다는 한 문장으로 이 모든 책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사기관에서 언론사로 수사중인 사건의 정보와 수사내용이 유출되는 경우는 지금껏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돼 왔다. 현행 형법에서도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에 ‘피의사실공표’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은 제정 이후 수많은 사건이 접수됐지만 단 한 건도 기소되지 않았다. 사문화 된 법인 셈이다.

사회적 파장이 큰 ‘피의사실 공표’는 수사기관의 필요에 의해서 나온 경우가 많았다. 여론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검찰이나 경찰이 특정 언론을 접촉해 수사내용이나 정보의 일부분을 ‘흘려주고’ 언론은 ‘단독보도’라는 이름으로 정보의 ‘조각’을 공표하는 방식으로 쓰여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성명서는 관련 법안의 제개정을 요구했다.

문제의 11월 24일, KBS 뉴스9 헤드라인은 '추운 날씨'였다


2023년 11월 24일 KBS 뉴스9 보도는 이선균 배우 관련 기사 말고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문제점들이 있다.

이날은 경찰이 ‘국과수 음성판정’이라는 결정적 문제에 봉착한 날이기도 했지만, 사회적으로는 다시 터진 ‘행정 전산망 마비사태’로 시끌했던 날이었다. 전주에 터진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 정부가 복구와 함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관련 조치들을 행해오던 중 또다시 ‘모바일 신분증 발급 먹통’이 터졌다.

이날 다른 공중파 뉴스의 헤드라인은 이 내용을 다뤘다. MBC 뉴스데스크가 ‘모바일 신분증도 먹통‥오늘도 이어진 전산망 마비’였고, SBS 8뉴스가 ‘일주일 새 '네 번째 장애'…이번에는 모바일 신분증 먹통’이었다.

반면, KBS 뉴스9의 헤드라인 기사는 ‘10도 이상 뚝…내일 더 춥다’였다. 헤드라인에 이어 뉴스9은 거리에 나가있는 기상캐스터를 실시간으로 연결해 현장감 있는 주말 날씨 리포트를 내보냈다.

2023년 11월 24일 방송3사 저녁종합뉴스 헤드라인 모음. 위에서부터 KBS, MBC, SBS ⓒ홈페이지 화면 캡쳐

‘헤드라인’은 언론사가 그날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뉴스다. 즉, 이날 KBS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뉴스가 ‘추위’였던 것이다. 물론 이 뉴스는 다른 언론사들도 다뤘다. 급격한 날씨 변화는 언론사 특히, 방송국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하지만, 이날의 ‘급격한 추위’가 과연 행정 전산망 마비 사태보다 심각했는지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뉴스9은 해당 이슈를 날씨 리포트 다음으로 배치했다.

뉴스9은 이보다 일주일 전인 11월 18일 보도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연출했다. ‘행정 전산망 마비 사태’가 터지면서 공중파는 물론 TV조선·JTBC·MBN·채널A 등 종편까지도 저녁 종합뉴스 헤드라인으로 해당 이슈를 다뤘는데, 유독 KBS만 APEC 정상회담을 첫 번째 뉴스로 다뤘다.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모니터 보고서’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 이렇게 요약했다. ‘KBS <뉴스9>, '땡윤뉴스' 시작했다’

누적되는 KBS 향한 비판, '과도하다' 입장 내놓을 때인가


KBS는 12일 뉴스9을 통해 내놓은 공식 입장에서 “해당 보도 시점은 고인이 사망하기 한 달여 전으로 이를 사망 배경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마치 KBS가 이 씨 사망 전날인 12월 26일에 관련 보도를 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KBS 9시 뉴스에서는 해당 일자에 관련 보도를 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KBS의 보도를 향한 비판이 과도하다는 취지로 보인다. 하지만 해당 보도는 나온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비판 받아왔다. 이선균 관련 보도를 특집으로 다룬 미디어오늘 기사에서는 이번 사태를 조명하면서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혐의와 무관한 사생활 폭로까지 뒤섞였다. 이번 사건은 공영방송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보도에 가세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심지어 KBS 옴부즈맨 프로그램조차 “시청자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보도 당사자가 부당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예술인들의 공식적인 문제제기에 대한 KBS의 첫 입장이 ‘비판은 과도하다’는 것이 과연 공영방송이 취할 태도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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