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과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칼럼>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이승환 | tongil@tongilnews.com 승인 2013.05.13 11:18:34 이승환(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 하는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른바 윤창중 성추행 사건으로 한미정상회담은 완전히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런저런 사건의 논란을 언급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이 사건은 국민들을 자괴감에 빠트리고 있다. 일국의 대통령의 말을 대신하는 인물이 정상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미 당국의 수사를 피해 도망치듯 귀국한 일도 국격을 허무는 망신스런 일이고,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그런 인물의 임명을 끝까지 강행한 대통령이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받는 대상이 되는 희한한 사태도 어처구니가 없다. 게다가 ‘한미정상회담’을 평가하는 일부의 행태도 우습다. 소위 린치핀(linchpin)이란 외교적 수사가 공동성명에 들어간 것을 두고 외교부장관은 이 말이 “정상 간에 문서로 합의해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스스로 추겨 세우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미일동맹에 사용된 코너스톤에 비유하여 코너스톤은 4개고 린치핀은 1개이니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을 넘어선 것처럼 정상회담의 성과를 과장하고 있다. 미국과의 거리를 재는 외교적 수사로 회담을 평가하는 것은 유아적 발상이다. 변화 아닌 기존 정책 ‘그대로’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세계의 주목을 끈 것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관련하여 한미 정상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 것인가 하는 점 때문이었다. 즉 정상회담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한반도 평화의 진전을 위한 변곡점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의 드러난 결과는 이러한 기대가 참으로 헛된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주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북정책과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잘못에 대해서는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입각하면서도 동시에 대화의 문은 열어놓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북한이 신뢰를 갖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변화한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지원할 용의가 있다”는 항상 들어오던 그 언술을 다시금 반복하였다. 이는 “북한의 태도를 지켜보겠지만,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으면 어떤 대화도 지원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의 전형적인 몇 가지 표현들이다. 이러한 언술들은 지난 이명박 정부 5년간 수없이 들어왔던 이야기들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던 ‘한반도신뢰프로세스’도 그 탄력성과 유연성을 더 잃어버리게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 대해 “박 대통령의 접근방식은 매우 공감할 수 있는 것이며 한미 양국이 함께 이룰 수 있는 것이다”라고 평가하면서, 이는 “몇 년간 제가 해왔던 것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한반도신뢰프로세스라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오바마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매우 강경하며 현실적 상황 인식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결국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강경’해서 미국의 정책기조와 어울린다는 것, 그리고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는 미국의 정책을 바꿀 어떤 새로운 제안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태도 변화’는 북한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미 양 당국의 입장에 대해 북한은 이미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은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전면대결전’(국방위원회 성명)에 진입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거론된 ‘조건부 대화’ 입장에 대해 ‘압력과 대화’의 투트랙(Two Track) 전략은 “미국이 결론을 내리지 못해 서로 모순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즉 북한은 “‘대결과 전쟁’ 아니면 ‘대화와 평화’의 양자택일을 놓고 오랜 북미대결의 역사를 청산하는 ‘전면대결전’에 들어가겠다, 그러니 한미 양국도 투트랙 전략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 중에서 하나의 입장을 확실히 선택하라”는 것이다. 일본의 총련계 신문 <조선신보>는 ‘전면대결전’ 선언을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부당한 것이므로 이것이 철회될 때까지 조선의 공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해석하였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미얀마 케이스’에 대해서도 북한은 이미 “다른 길을 택하면 도와주겠다는 미국의 유혹이 다른 나라들에는 통할지 몰라도” 자신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명백히 단언하였다. 미국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미정상회담은 이런 북한의 강경한 입장에 대해 또 다시 ‘핵 확장 억지 등 군사적 억지력을 강화하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한국 대통령의 방미는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변화시키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미국은 MD와 자동차 판매 등에 보인 관심 이상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을 할애하지 않았다. 이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과 대결의 국면이 그대로 유지될 것임을 시사한다. 북한의 전면대결전 공세가 중단될 아무런 전기도 없고, 한미는 그를 위한 어떠한 변화도 선택하지 않았다. 변화는 북한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핵실험 등 ‘안보위협’의 입증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접근하려는 북한의 모순된 행동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반도의 전쟁 종식과 진정한 평화의 정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한미 정상이 진정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두겠다면, 최소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언명’이라도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한미 양국 정상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최소한의 ‘말’조차 거론하지 않았고, 핵 확장 억지 제공 등 군사적 억지력 확대와 함께 사실상 MD(미사일방어)체제 편입을 시사하는 “공동의 능력 기술 그리고 미사일 방어를 투자” 등등의 언어로 일관하였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상호위협감소 조치에서부터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위협 증가의 기본특징은 ‘방어’를 명분으로 한 상호위협이다. 남한의 1년 국방비가 북한의 1년 총예산을 상회하는 현격한 남북의 격차 속에서도 핵전력을 동원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의 무력시위를 진행하는 명분은 순수 ‘방어용’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핵 선제타격’ 등의 북한의 횡포한 언술 앞에는 항상 ‘상대가 칼을 빼들면’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북한은 모든 상황에 응전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지만 “다만 북한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中日新聞>, 2013. 4. 21). 그러나 같은 ‘방어’의 언술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B52 전략폭격기를 동원하여 ‘핵 확장억지’를 실제 폭탄 투하훈련으로 보여주고, 비확산을 위해 북한 급변사태시 평양에 진주하는 훈련을 한미합동으로 진행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과하다.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말’도 필요하지만,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실질적 조치’나 태도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평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는 ‘상호위협감소’(Mutual Threat Reduction)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착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상호위협감소 조치는 우선 한미 양국이 합동군사훈련이라는 무력시위를 잠정 중단하는 것이다. 북핵문제에 관한 한 북한이 움직여온 일정한 패턴이 있다. 그것은 상호위협감소나 남북협력 확대와 같은 조처가 있을 때는 북한의 핵능력 확대는 잠복하고, 대결국면이 되면 핵능력 확대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노태우정부 시기 팀스피리트 한미합동훈련이 점정 중단되면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이 가능했고, 2005년의 ‘9.19공동성명’은 개성공단 등 남북협력의 새로운 전개가 그 배경이었다. 따라서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상호위협감소 차원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 문제가 검토되어야 하고 이것이야말로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상호위협감소를 통해 북한의 핵능력 강화 욕구를 제어하고 남북대화와 한반도 평화논의를 재가동시키는 것은 결코 ‘도발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 그리고 북한 역시 더 이상의 군사적 위협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의 새로운 위기 확산이 아니라, 국면 동결을 통해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변곡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북한은 자신들의 ‘안보위험성’ 입증을 통해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평화체제 실현에 접근하려는 현재의 전략 대신 새로운 접근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북한이 위기를 조장하고 양보를 얻는 시기는 끝났다’는 언술로 자신들의 전략적 인내를 정당화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회귀와 미사일방어계획(MD) 추진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 일본 역시 우경화와 평화헌법 폐기를 북한의 안보위협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면서, 북한은 김대중.노무현정부 시기에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오히려 북미관계가 더 진전될 수 있었던 경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북한으로서는 ‘안보위험성’ 인증 노력보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평화체제 수립에 더 가까이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는 박근혜정부의 남북관계 전환 노력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점 때문에 남과 북 양 당국이 올해 민간의 6.15남북공동행사 추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이승환은 1958년 경북 포항에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정치학 석사)을 거쳐 경남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승환은 통일맞이 정책위원장, 열린정책연구원 정치아카데미 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이며, 또한 민화협 집행위원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5년여에 걸쳐 남북 민간교류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6.15남북공동행사 등을 진행해왔다. 그가 쓴 글로는 “문익환, 김일성 주석을 설득하다”(창작과비평, 통권 143호, 2009), “6월항쟁 20년,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변화와 통일담론”(창작과비평, 통권 137호, 2008), “2000년 이후 대북정책담론 연구”(북한대학원, 2008) 등이 있다.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sh2kms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评论

此博客中的热门博文

[인터뷰] 강위원 “250만 당원이 소수 팬덤? 대통령은 뭐하러 국민이 뽑나”

‘영일만 유전’ 기자회견, 3대 의혹 커지는데 설명은 ‘허술’

윤석열의 '서초동 권력'이 빚어낸 '대혼돈의 멀티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