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벌써 61주년...
- 승인 2021.04.1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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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벌써 61주년...
해마다 진달래 피고 두견이 우는 4월이 오면 그날의 함성 절규가 들린다.
단기4293년 4월 19일 이승만 친미반공독재의 아성이 무너지던 날, 스크럼을 짠 젊은 사자들의 어깨동무 물결이 거리 거리에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흰 머릿수건을 질끈질끈 동여맨 젊은 대열은 거대한 물굽이가 되어 노도처럼 출렁거렸다.
대학정문을 박차고 나온 젊은 대열은 질풍노도가 되어 엿샤! 엿샤! 시청앞 광장, 국회의사당 앞으로 뛰쳐나왔다.
독재타도, 부정선거 다시 하라!
깡패경찰, 타도 이승만!
태평로 세종로에 범람하는 시위의 물결, 중앙청을 지나 해무청 앞으로...
가자, 경무대로! 가자, 경무대로!
통의동 바리케이트를 무너뜨리며 시커먼 무쇠최루탄 직격탄을 맞고 쓰러진 젊음, 뿌연 최루가스가 안개처럼 거리를 다 덮었다.
경비경찰의 검은 총구에선 공포탄이 불을 뿜었다. 이어서 실탄 나르는 금속성이 데모대의 머리위로 귓바퀴를 스치고 지났다.
살인경찰, 경찰국가 타도하자!
죽음을 모르는 데모대, 전진, 전진, 전진이 있을 뿐이었다.
효자동 종점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지자 경무대 정문 초소앞에 늘어선 총구들. 이중 삼중으로 포진한 전투복들 속에는 헌병완장의 군대도 있었다.
붉은 불을 뿜어대던 진압 소방차를 노획한 데모대가 개미떼처럼 소방차에 기어오르고, 권총을 빼어든 경무대 경찰서장 곽영주의 독사눈이 푸른 전투모 속에서 살의를 번뜩였다.
부상자를 실어 나르는 앰뷸런스의 날카로운 경적소리가 귀청을 찢는 듯 울려대는 가운데 운명의 순간을 앞둔 정적이 잠시 주춤거리고 있었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조선민족의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꿈이 부풀었으나, 미·쏘 좌우 동서냉전에 휘말려 들어 내전상태의 혼란이 계속되었다.
결국 38선은 국경 아닌 국경이 되어 우리 땅 덩어리는 두 개의 체제로 강제분할 점령, 동족끼리 총을 맞댄 무서운 전쟁을 치러야 했다.
찢기고 갈라진 강토, 황폐화된 민중의 삶, 피폐해진 인심,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남녘땅은 미군의 불법 강제점령으로 일본제국주의 강점보다도 더한 혹독한 식민지 예속정책에 시달리고 있었다.
세계지배 야욕에 불타는 미국의 대쏘(對蘇) 냉전전략의 철저한 하수인이었던 이승만의 남한 지배는 민족적 불행이고 역사의 재앙이었다.
4·19혁명의 성격은 동학혁명을 그대로 빼어 닮은 꼴이었다. 봉건 왕조의 폭정과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대창을 거머쥐고 동학깃발 아래 혁명투쟁에 떨쳐나섰던 원리와 똑같았다.
숭미예속정책으로 일관한 이승만과 자유당의 폭정과 부패, 농민의 희생 노동수탈정책으로 죽음에 몰린 바닥민중들을 대신한 청소년 학생들이 맨주먹을 들고 총칼 앞에 마주선 것이 4·19혁명이다.
동학농민혁명의 근본정신은 척양척왜(斥洋斥倭), 보국안민(輔國安民)이었다. 처음 표현에 우선 드러난 것은 탐관오리 징치, 농민수탈에 대한 항거였다.
4·19학생혁명 역시 처음 들고 나온 것은 부정선거 규탄 독재 타도였지만 그 근본정신은 외세축출, 분단조국의 자주통일 독립이었다.
이승만정권이 무너지자 곧바로 혁명주체였던 학생대열에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란 구호가 터져 나왔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양키 물러가라, 남북협상에 의한 나라의 자주통일이 제창되었다.
이에 미국은 박정희 군사 파쇼도당을 동원하여 탱크를 몰고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뒷조정하였다. 민족자주평화통일을 부르짖는 혁신계와 학생세력을 철저하게 짓밟고 탄압하도록 부추겼다.
중앙정보부를 설치하여 이승만의 멸공북진통일을 반공승공통일로 구호를 바꾸었다. 미국CIA의 수법을 전수받아 고도의 공작정치로 남한사회전체를 민족분열 반통일체제로 통제하고, 모든 민간시민단체들과 언론기관을 어용화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양심적인 통일세력을 좌익 빨갱이로 몰아 투옥 학살하는데 피눈을 세웠다.
그래도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은 그룹이 있었다.
4월혁명의 불씨를 죽이지 않고 세상이 온통 다 변절하는데 수절과부처럼 지조를 지켜온 한 무더기 4월전사들이 있었다.
둥치가 잘려져 나간 나무등걸 그루터기에서 아주 작은 씨눈 하나가 살아 새싹을 틔우듯 4월전사들은 혁명의 맥을 이었던 것이다.
이 작은 혁명의 씨알그룹이 대담하게도 투쟁 목표로 혁명완수, 미완의 4월혁명완수는 조국의 민족자주평화통일의 그날이라 천명을 하고 수십년을 버티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4·19혁명은 그 순수성과 큰 뜻 역사성의 무게를 인정받아 우리 민족 오천년래의 유사 이래 「혁명」으로 기록이 되었다.
우리 민족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혁명으로 빛나는 4월혁명, 그 영광스런 4월혁명이 61주년을 맞은 것이다. 반세기가 지나고도 11년이 더 지났다.
이십대 초반의 4월전사들은 모두 팔순을 넘긴 노인세대가 되었다.
아직도 4월의 老전사들은 혁명완수를 위해 미완의 혁명을 안고 조국의 자주평화통일 광장에 서 있다.
이들의 혁명광장에는 오늘도 뚝뚝 선혈이 듣는다.
온통 세상이 핏빛인 것이다.
혁명은 피다.
혁명은 곧 죽음이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혁명전사들의 목숨은 저주인가 영광인가, 역사가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언제쯤 이 땅에서 외세를 몰아내고 자주와 평화통일의 날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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