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노조 파업 종료 22일째. 대리점과 택배노조 간 합의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 택배 기사 과로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는 이행되고 있을까. 지난 29일, 확인을 위해 경기도에 있는 CJ대한통운 ‘ㅂ’서브터미널을 찾았다.
새벽 6시 25분. 자동분류기(휠소터)와 컨베이어벨트가 ‘우우웅’ 육중한 소리를 토해냈다. 크고 작은 상자 행렬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휠소터를 거친 상자 행렬은 좌우 양쪽 지역별 라인으로 흘러갔다.
형광주황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분류인력이었다. 지난 30여년간, 택배 기사가 무료로 했던 분류를 이제 분류인력이 대신한다. 상자에서 00단지나 00동이 적힌 주소를 눈으로 재빨리 확인한다. 확인한 상자는 담당 택배 기사 쪽에 갖다 둔다.
사회적 합의에 따르면, 택배 기사 5명당 분류인력은 1명이 배치된다. ㅂ터미널 택배 기사가 모두 100여명이니 분류 인력은 20명 이상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세어봐도 형광주황 조끼는 5명뿐이었다.
분류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택배기사들과 분류인력들 ⓒ민중의소리 분류작업이 시작된 서브터미널 내부 모습 ⓒ민중의소리
그나마 좋아졌지만…변한 것과 아직 변해야 할 것들
“대리점장 말이 ‘사람을 못 구했다’고 그러네”
기자의 질문에 상자를 옮기던 송모(44) 기사가 말했다. 아침 6시 30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 터미널은 시내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
일할 사람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다. 8천원 꼴인 시급을 만원 이상으로 올리면 사람 찾는 건 수월해지겠지만, 대리점도 빠듯한 형편이다. 그렇다고 CJ대한통운이 인건비를 더 지원해주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결국, 필요한 분류인력 20명 중 실제 일하는 사람은 10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5명은 6시 30분에 나오고, 나머지 5명은 9시가 돼야 출근한다.
“사람이 없다니 어쩌나, 일단 나와서 일하는 거지. 그래도 우리는 조합원이라고 대리점장이 돈은 꼬박꼬박 줘”
송씨는 택배노조 조합원이다. 이번 파업에도 참여했다. ㅂ터미널 택배기사 100여명 중 60여명이 송씨와 같은 조합원, 나머지 40여명이 비조합원이다. 대리점은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차별한다. 조합원에겐 분류업무 시 비용을 지급하고 비조합원에겐 주지 않는다. 조합원은 노동시간이 약간 줄고 분류작업 수당도 생겼지만, 그나마 비조합원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송 씨는 “지난 20~30년간 분류작업은 원래 택배 기사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조합원들은 분류인력이 들어와 도와주는 것에 만족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ㅂ터미널에서 근무하는 비조합원 40여명 중, 최소 10명 이상은 분류작업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분류 작업이 시작된 지 2시간쯤 지났을까, 눈에 띄는 택배 기사가 부쩍 늘어났다. 조합원 50여명이 8시 30분쯤 출근했다. 조합원 택배 기사 출근 시간은 당초 6시 30분에서 8시 30분으로 2시간 더 여유가 생겼다. 분류작업에서 해방된 효과다. 출근한 조합원 택배 기사들은 자기 차 앞에 분류된 박스를 적재함에 싣기 시작했다.
틈틈히 택배물건을 정리 중인 택배기사 ⓒ민중의소리
비조합원 대부분 6시 30시 출근해 분류작업... 그마저도 10여명은 공짜 노동 중
기자가 방문한 날 아침, ㅂ터미널에서 새벽부터 분류작업을 한 사람은 40명쯤 돼 보였다. 6시30분 출근한 분류인력은 5명이었고, 나머지 35명 중, 조합원은 8명 비조합원이 27명이었다. 조합원들은 60여명을 7개 조로 나눠 6시 30분 출근 당번을 정했다. 8~9명 조합원 택배기사가 일찍 출근해 분류 작업을 해두면 나머지 조합원 택배 기사는 그 시간에 쉴 수 있다.
비조합원 택배 기사는 그럴 형편이 못 된다. 40명 중 30명 가까이가 매일 6시 30분에 출근한다. 쉬지도 못하고 비용도 받지 못한다. 조합원들은 일찍 출근한 2시간을 비용으로 보상받는다. 시급은 1만원이다. 택배 기사 이씨(53)는 “대리점장이랑 인간적 관계가 있는 거 아니냐. 앓는 소리 하면서 ‘해달라’고 하면 힘들어도 거절하지 못하고 비조합원들이 분류작업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를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올해 1월 1일부터 택배기사 기본업무에서 분류작업은 완전히 배제됐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전히 많은 비조합원 택배기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분류작업을 한다. 합의에 따라 조합원 형편은 나아졌지만, 공짜 노동은 남아있다. 분류작업은 오전 6시 30분부터 정오께까지 이어진다. 대리점 말대로 ‘사람을 구하지 못해’ 분류작업을 했다면 하루 5시간 시급을 받아야 하지만, 지급 받는 시급은 하루 2시간뿐이다. 3시간은 여전히 공짜 노동이다.
터미널을 가득 채우고 있는 택배차들 ⓒ민중의소리
‘당일배송 원칙’이 택배 기사 근무시간에 미치는 영향
지난 택배 파업 최대 쟁점은 ‘당일 배송’이었다. 분류작업으로 택배 기사가 떠안은 상자는 떠안은 그 날 배송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당일 배송 원칙엔 퇴근시간이 없다. ‘그날 배송해야 한다’는 의무만 있다. 택배 기사 장시간 노동을 줄이자는 사회적 합의가 무색하다. 택배 노조가 장기 파업을 한 이유다.
거대한 25톤 탑차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간선차다. ㅂ터미널은 간선차 3대가 동시에 물건을 내릴 수 있다. 간선차 3대에 실린 박스를 7명이 내리는 데 보통 1시간 걸린다.
간선차에서 내려진 상자는 레일을 타고 터미널 내부로 들어온다. 터미널 내부 라인에 택배 기사가 대기한다. 라인에서 자기 구역 물건이 확인되면 낚아챈다. 분류 작업의 구조다.
이날 ㅂ터미널에 들어온 간선차는 총 17대였다. 적을땐 14대에서 많으면 20대까지 들어온다. 마지막 간선차가 몇 시에 오는지가 관건이다. 퇴근시간이 여기에 좌우된다. 오후 2시쯤 막차가 들어오면 곤란하다. 분류작업을 끝내고 배송을 시작하려면 오후 3시나 돼야 한다.
이날 ㅂ터미널 간선 막차는 11시 30분쯤 들어왔다. 분류작업은 12시 40분께 끝났다. 조합원과 비조합원은 배송 시작 시간이 달랐다. 조합원 택배 기사들은 대부분 12시께 배송을 시작했다. 터미널에선 막차 분류작업이 한창이었지만, 남은 상자들은 그대로 두고 배송을 시작했다.
택배 물량을 내리기 위해 대기 중인 간선차량 ⓒ민중의소리
비조합원들은 분류작업을 계속했다. 마지막 상자까지 차에 실었다. 비조합원들은 대부분 1시 30분에서 2시 사이 배송을 시작했다. 조합원들에 비해 평균 1시간 30분 정도 늦게 출발했다.
‘당일 배송’ 원칙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당일 배송을 거부하고 있다. 비조합원은 당일 배송 원칙을 적용한 계약서를 이미 썼다. 출발이 늦으니 마지막 배송 시간이 늦어진다. 분류한 상자가 많으니 배송 물량도 많다.
오후 1시쯤 됐을까, 20~30대로 보이는 젊은 택배기사 10여명이 터미널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조합원 택배기사들이 싣지 않은 상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에어콘 리모컨 만한 바코드 인식기로 ‘삑 삑’ 상자를 찍었다. 택배를 기사가 인수했다는 확인 작업이다. 그리곤 자기들 트럭에 상자를 실었다. 30여분 만에 조합원 택배 기사들이 남긴 상자가 모두 실렸다. 조합원 이모(53)씨는 “CJ대한통운 직영 기사들이에요. 요즘엔 ‘당일 배송’ 거부하는 조합원 물량을 저렇게 처리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20~30대 ‘젊은 직영 기사’들이 떠난 뒤에도 비조합원 택배 기사들은 여전히 분류작업을 하고 있었다. 1시 50분쯤 됐을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비조합원 A씨가 택배 기사가 터미널을 출발했다. 그를 따라갔다.
택배노조 조합원들이 배송한 뒤 남아 있는 물건을 체크하고 있는 직영기사 ⓒ민중의소리 대체배송으로 인해 텅 빈 택배노조 조합원들의 자리 ⓒ민중의소리
오전 6시 30분 출근한 비조합원 밤 9시 다 돼서야 퇴근 ... 택배기사 장시간 노동 언제쯤 해소될까
A씨는 총 540개 상자를 실었다. 조합원 이씨가 420개, 송씨가 470여개 상자를 실은 것과 비교됐다. 20분쯤 차를 달린 A씨는 한 대형 건물에서 상자 4개를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5분쯤 뒤, A씨는 건물 밖으로 나와 1km 떨어진 아파트 단지로 차를 몰았다. 00마을 201동 앞에 멈춘 그는 인도에 상자 수십개를 내렸다. 수레에 상자를 나눠 담고 아파트 입구를 몇 차례 왔다 갔다 했다. A씨는 그렇게 240여세대 아파트 단지 한곳과 600여 세대 아파트 단지 한 곳, 빌딩 5개를 돌았다.
해는 이미 졌다. A씨 발걸음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비조합원 A씨가 540여개 배송을 모두 마친 시간은 저녁 8시 45분쯤이었다.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한 그의 근무시간은 14시간 15분이었다.
420개를 실은 조합원 이씨는 저녁 6시 15분께 배송을 완료했다고 기자에게 알려왔다. 이씨의 근무시간은 11시간 15분이었다. 8시 30분에 출근해 470개를 실은 조합원 송씨는 저녁 7시에 배송을 완료했다. 송씨 근무시간은 11시간 30분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분류인력 현장 실태조사를 나갔다. 실태 조사결과는 ‘양호’였다. 단 하루만 지켜봤지만, 현장은 전혀 양호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택배기사 장시간 노동이 해소되는 데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그 시일이라는 것이 대체 언제까지일까.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시일이 지난다고 해결될까.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 강위원 상임대표 고희철 기자 khc@vop.co.kr 발행 2024-06-06 16:14:31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지난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에 전면으로 부상해 4.10 총선 결과 민주당의 한 축을 이뤘다. 대개 언론에는 ‘친명 강경파’ 조직으로 소개된다. 지난 2일 2기 강위원 상임대표가 선출됐다. 한총련 의장을 거친 강 대표는 전남 영광군 묘량면에서 여민동락 공동체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민형배 구청장 시절 광산구노인복지관장 등을 거쳐 이재명 도지사 시절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을 맡았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의 일정을 총괄했고, 그 뒤 당대표 특보와 혁신회의 1기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혁신회의는 국회의원 31명을 배출해 당내 최대 정치세력으로 불린다. 강 대표 본인은 경선에서 사퇴해 국회 입성에 실패했지만 상임대표가 됐다. 그러나 혁신회의와 강 대표는 언론에 대체로 부정적으로 언급된다. 친명, 강경, 팬덤, 개딸 등의 연관어와 함께. 특히 국회의장 후보 경선으로 촉발된 당원민주주의 논쟁은 부정적 보도 증가에 기여했다. 3일 여의도의 오피스텔에 자취방처럼 차려진 혁신회의 사무실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묻고자 한 것은 간단했다. 지난 총선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으로 당을 장악했다는 비판과 극성 팬덤을 앞세워 국회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비판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상임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6.03 ⓒ민중의소리 1시간을 예정한 인터뷰는 2시간 30분을 넘겨 간신히 ‘중단’됐다. 그는 거침이 없었고, 할 말이 많았다. 그의 말은 영광군과 광산구와 경기도를 넘나들었고, 5.18정신과 김대중, 노무현도 수시로 언급됐다. 특히 언론의 당원민주주의 폄하에 강하게 반박했다. 친명만 공천되고 비명은 탈락한다는 이른바 ‘친명횡재 비명횡사’ 논란에 강 대표는 “그게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이어 “작업을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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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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