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속정부가 자주적 민주정부보다 낫다?

<번역> 태국 시위대가 월가의 대리정권을 뒤엎고 있다 필자:토니 카탈루치 / 역자:정성희 | tongil@tongilnews.com 승인 2013.12.01 23:54:30 필자 : 토니 카탈루치(방콕의 지정학자, 언론인, 작가) 역자 :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출처 : 2013년 11월 28일자 수십만 시위대가 몇주간 방콕 거리를 휩쓸고 있다. 근래 태국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불법적 개헌 기도로 드러난 법원 판결이 무시된 이후 시위대의 목표가 정권퇴진으로 바뀌었다. 외국에 도피해 있는 탁신 시나왓이 그의 누이동생, 잉락 시나왓과 그의 방대한 정치기계를 통해 태국의 현 정권을 드러내놓고 배후 조종하고 있다. 탁신의 정치적 도구는 외국이 지원하는 많은 비정부단체와 홍보기구는 물론이고 빨간 셔츠를 걸치고 다니는 패거리들의 '페와태국당'(Peua Thai Party=PTP)이다. 서방국가들은 현 정권의 불법성에 대해 개방적 또는 폐쇄적 입장을 취하는 것 같지만, 태국 시위대에게 법치 준수를 주문하며 정부청사 점거를 비난하고 있다. 왜 서방국가들은 태국의 현 정권을 옹호할까? 거의 3년간 부패와 독재에 항의하는 데모가 계속되었는데 말이다. 간단하다. 서구가 밀어주는 이집트, 튀니지, 시리아, 러시아, 예멘, 리비아, 말레이시아 등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태국의 현 정권은 월가, 런던 금융기관의 피조물이며 그 하수인이기 때문이다. 서방언론들은 추방당한 독재자의 누이동생이 다스리는 나라의 만화 같은 족벌주의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에게 선출되고 민주적인 정통성을 계속 부여하고 있다. 탁신의 재임 중 범죄행위는 기사에서 묻혀 있거나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시위대가 더 늘어나고 충돌이 더 커지기 전에,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묻고 답해야 한다. 1. 누가 진짜 태국의 현 정권을 이끌고 있는가? 탁신은 2001~2006년 수상을 역임했다. 수상이 되기 전에 오랜 기간 월가와 런던의 연줄을 대며 돈을 벌고 태국 정치의 길을 걸어왔다. 칼라일 그룹의 자문역으로 임명되어 공공기관을 차지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끌어올리는데 이용했다. 태국 영자신문 의 2001년 기사이다. "1998년 4월 태국이 아직 경제적 늪에 빠져있을 때, 탁신은 정치조직을 구축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미국 커넥션을 이용하려 했다. 부시 상원의원에게 방콕과 자택 방문을 요청하면서 미국자본과 태국기업 간의 '국가적 중개업자'로서의 역할이 자신의 임무라고 밝혔다. 또한 2001년 3월 부시행정부의 최고참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 3세의 태국 체류 시에 호스트역을 맡았다." 2001년 수상이 되자마자, 탁신은 서방국가의 지원을 갚기 시작했다. 2003년 군대와 민중 양쪽의 광범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동참해 파병을 단행했다. 또 미 CIA가 혐오감을 자아내는 미 CIA의 연출 프로그램을 위해 태국을 이용하도록 허락했다. 2003년 2월 초순부터 3개월 이상 탁신의 '마약과의 전쟁'의 일환으로 도시와 농촌에서 하루 평균 30명, 약 2,800명을 특별재판으로 사형시켰다. 마약 상인들을 기소하면서 탁신이 위임한 경찰의 '도망자 명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학살당했다. 나중에 정부기관의 조사로 판명 났지만, 그렇게 죽은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마약 거래와 아무 상관없었다. 인권감시(Human Rights Watch=HRW)가 펴낸 "태국의 마약전쟁"이란 제목의 2008년 보고서에서 이를 확인했는데, "죽음이 충분치 않았다"는 2004년 보고서를 폭넓게 더 보강한 것이다. 2004년에는 탁신이 국회 비준 동의도 없이 강력한 미국-태국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미-아세안 기업위원회(US-ASEAN Business Council)의 지원을 받았는데, 이 자본가집단은 탁신의 '빨간 셔츠', '반독재 민주연합전선(UDD) 지도급 인사들을 도와 2011년 선거에서도 탁신의 누이동생을 권좌에 올렸다. 2004년 이 위원회에는 전쟁으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벡텔, 카길, 시티그룹, 제너럴 일렉트릭, IBM, 몬산토가 포함되었으며, 지금은 골드만 삭스, 제이피 모건, 록히드 마틴, 체브론, 엑손, BP,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 머크, 노스롭 그루먼, 몬산토의 분신인 신젠타, 필립 모리스가 망라되어 있다. 탁신은 2006년 9월까지 재임했다.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군사쿠데타 바로 전야에 탁신이 외국 관련 '포춘 500투자위원회'와의 대담을 위해 뉴욕 언론에 출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6년 쿠데타 이후, 탁신은 에델만 PR회사(프리덤 하우스, 국제 위기그룹, PNAC)의 케네스 아델만, 베이커 보트(CFR)의 제임스 베이커, 바버 그리피스와 로저스(CFR)의 로버트 브랙윌, 암스테르담과 페롭(채텀 하우스) 등 로비상사를 통해 미국 기업-금융 엘리트들을 대변했다. 암스테르담과 페롭의 로버트 암스테르담도 동시에 탁신의 빨간 셔츠, 반독재 민주연합전선(UDD)운동을 지원했으며, 친탁신 인사들이 모이는 국립 탐마삿대학(Thammasat University)의 소위 '학문적'이라는 법학자그룹인 니티랏그룹(Nitirat Group) 개회식에 참석했다. 탁신과 그의 '민주연합전선' 운동에 대한 추가 지원은 미 국무부가 '민주주의 기금'의 지원을 받는 비정부기구와 프라차타이(태국의 비영리 온라인매체)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2. 탁신은 어떻게 권력에 복귀했는가? 2006년 탁신이 권좌에서 쫓겨나자마자 그의 정당과 서방 후원자들은 태국의 기반을 악마화하고 파괴하기 시작했다. 에델먼 밑에서 일하는 케네스 아델먼은 2007년 '혁신을 위한 미국' 전선을 만들어 탁신 하야 이후의 지배적인 태국 분위기를 중상 비방했다. 같은 해 에델먼은 지적 소유권 보호라는 미명 아래 탁신을 로비고객 명단에 올렸다. 경제학자, 타임지, 뉴스위크 등 무수한 뉴스 꺼리와 상습적으로 편향된 출판물이 민주주의 역행이라고 태국을 공격했고 탁신은 '태국의 소외와 가난'을 초래하는 자신의 정책을 자랑했다. 그 다음해에 선거가 있었고 견고한 지지층에 의해 탁신이 쉽게 이겼다. 수상은 "태국의 오후 대리 : 사막 수상"이란 타임지 기사처럼 탁신이 임명한 사람으로 공공연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와 그의 후계자인 솜차이 웡사왓(탁신의 의붓동생)은 부패혐의와 태국 고유의 기반에 의한 반색깔혁명이 결합되어 빠르게 권력에서 밀려났다. 2009년에 들어 탁신의 정치전선은 지배적인 태국 기반과의 더 폭력적인 대립을 부추기는 선전을 시작했다. 2009년 4월에 탁신의 빨간 셔츠가 조직한 시위는 광범한 재산 피해를 야기했으며 약탈자들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는 방어자들의 총격으로 2명을 사망했다. 태국 군대가 한명의 단순 시위대도 목숨을 잃지 않게 그 폭동을 성공적으로 해산시켰다. 그런데 탁신의 정치적 보좌진들은 태국 국민의 대다수가 외면하는 인민전쟁을 촉구하면서 캄보디아로 도주했다. 2010년에도 태국의 기반을 흔드는 국내외 불법폭력 기도는 계속 되었다. 약300명의 비밀전투원들이 태국 수도, 방콕의 일부를 하나의 전쟁지대로 만드는 악랄한 폭력행위를 유발했다. 상방 교전이나 방화에 의한 연기 질식으로 시위대만이 아니라 군인, 경찰, 무고한 시민들을 포함해 90명 이상 사망했다. 군대가 질서를 회복하는 동안, 탁신과 그의 서방 후원자들은 태국을 비난하는 국제여론을 조성하는 동시에 자신의 민주연합전선의 빨간 셔츠 운동을 다시 과격하게 전개할 준비를 했다. 동시에 태국의 많은 농민들이 원하는 쌀 가격 보장은 물론이고 값싼 집과 차, 자유로운 컴퓨터, 홍수와 가뭄의 근절을 약속하는 대국민선전을 벌여 탁신의 정당, '페와 타이'는 다른 선거에서 쉽게 이겼다. 서구의 예속정권이 국민의 공동의 요구를 반영한 포퓰리즘보다 얼마나 더 좋은지 완벽한 예를 들면서 말이다. 체포영장을 피해 교묘히 해외로 도망가 숨어있는 민중학살자이며 범죄자가 그의 누이동생을 통해 내놓고 정부를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탁신의 정당, 페와 타이의 대국민 선전, 그 어디에도 2년 후 권력을 이양한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태국의 민초들은 모두를 위해 즉시 탁신을 권력에서 추방하는 압력을 행사할 때라고 결심한 것이다. 3. 서방은 태국에 무엇을 바라는가? 미국은 20년 이상을 효과적 대중국 봉쇄전략을 개발하고 수행하기 위해 온갖 정책을 제시했다. 1997년 미국정책 관련 저자, 로버트 카간은 ‘중국이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지 못한다는 것 : 새로운 대중국 봉쇄전략의 경우’에서 다름과 같이 강조했다. "현재 세계질서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요구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국의 권력 유지에 이어 해외로 뻗어나가는 중국 지배력의 요구와 부조화를 이룰 것이다. 그러한 제약를 중국 지도부는 못 견딜 것이고 국제시스템이 그들을 바꾸기 전에 그들이 국제시스템의 룰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소련에서 변화를 위한 안팎의 행동은 적어도 '봉쇄와 압박을 통한 통합'이라는 미국의 전략과 별개 였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에 그러한 전략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현재의 정부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국제질서에 평화적으로 통합할 수 없다. 지금 중국 지도자들은 너무 위험해 우리의 규칙으로 제약하기 어렵다. 억지로 우리의 규칙을 강제하는 것은 국제 질서의 건강에 대단히 좋지 않다. 미국은 중국과의 대결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잘못된 신념으로 국제질서를 뒤엎을 수 없고 또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우리는 일정한 선을 그어야 하며 중국의 정치적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이 지역의 군사력 증강을 의미한다. 동맹의 안전을 위해, 우리의 응답을 뚜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중국이 지역 패권을 실현하려고 군사적 위협이나 공격을 할 때,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 중국 무력과 거래하거나 군사력의 보유나 작전에서 단호하게 비즈니스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가 중국의 핵 확산에 대해 확고한 제재를 가하자는 의미이다" "성공하는 봉쇄전략은 해외 군사력의 감소가 아니라 증강을 요구할 것이다. 에이레 크로웨는 1907년 경고했다. 우리가 군사력 절감을 더 많이 얘기할수록 독일은 우리가 싸움에 지쳐 있고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고 더 많이 확신하게 된다고. 오늘 중국은 우리 군사력 쇠퇴를 파악하여 계산에 넣고 있다. 1992년 중국정부 내부문서는 말하고 있다. 미국 군사력은 상대적으로 쇠퇴하여 무엇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이런 인식을 가능하면 빠르게 없애야 한다" 이러한 전략은 2006년 전략연구소의 "진주 목걸이" 보고서에서 더 확장되었는데, 중국 팽창의 특별지대는 곧 혼란과 봉쇄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지금 미안마 라카의 불안정한 상태는 물론, 중국의 과다르 항구가 위치한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의 불안과도 관련이 있다. 미 국무부 힐러리 클린턴은 1997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생명력 있는 봉쇄전략의 일환으로 중국에 맞서 미국과 함께 할 필요가 있다는 카간의 보고에 역점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태평양 세기"라는 2011년 외교정책에서 중국봉쇄 공약을 되풀이 강조했다. 태국을 미국과 공모하도록 이끌고 신제국주의의 아시아 패권 유지가 수 십년 동안 일해 온 탁신 시나왓의 역할이다. 그렇게 많은 돈과 시간과 땀을 쏟아 부어 탁신을 뒷받침해 주고 현존하는 태국 고유의 제도를 훼손하는 바로 그 이유이다. 4. 누가 현 정권에 항의하는가? 의심할 바 없이, 야당이 반정부 시위로부터 반사이득을 얻고 세력을 확대할 것이다. 나아가 태국 기업, 태국 언론, 침묵하는 군대도 현재의 데모를 인정하고 있다. 말 없는 다수 중 많은 사람들은 탁신의 정적이나 야당을 지지하지도 않지만 탁신과 그의 서방 후원자들이 벌이는 분열적 거리 시위를 반대하고 있다. 첨예한 불안과 분열을 조장하는 탁신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정부 시위대에는 야당 지지자들, 언론에서 유명한 손디 림통굴의 민주주의 인민동맹(PAD)과 함께하는 그룹들과 말없는 다수, 탁신의 부패 타락한 국가 영향력을 끝장내고 싶어 하는 하위층과 중간층의 노동계급이 있다. 2007년 시위는 손디의 민주주의 인민동맹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탁신의 대리정권을 불인정하여 태국 항공을 폐쇄한 노동조합이 합류하여 정권 붕괴까지 함께 했다. 태국에는 가난한 이들과 중간계급 사이의 뚜렷한 입장 차이가 있다. 가난한 이들 중에는 탁신과 그의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탁신의 정당은 2011년 선거에서 투표하기 싫은 다수 국민들을 설득하지는 못했으나 '페와 타이'의 방대하고 순진한 정치 기계들의 환상적인 공약 선전, 맹렬한 매표행위, 토요일 수송 조직화로 유권자의 32%나 얻었다. 결국 월가의 대리인, 탁신에 항의하러 나가는 태국인들은 양자택일에 찬성해 시위하는 건 아니다. 반대로 탁신과 그의 정치기계들의 집회에 가는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탁신이 그랬듯이 국가, 자원, 국민을 대해야 한다는 지키기 어려운 명령을 부여받을 것이다. 만일 탁신과 외국 자금, 전문적 조언으로 만든 그의 암적인 기계들이 태국의 정치 광경에서 없어진다면, 진보를 위해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이 그 자리를 대체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말없는 다수가 벌써 이를 이해하고 서서히 다양하고 더 실용적인 선택으로 전진하고 있다. 더 다행스런 것은, 정치적 언쟁의 양쪽 국민들도 이제 많이 이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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