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년 전 '그때' 생생하게 기록된 '차돌섬'

10억년 전 '그때' 생생하게 기록된 '차돌섬'

조홍섭 2016. 06. 22
조회수 290 추천수 0
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⑩ 백령권
 
 모래와 점토가 쌓여 땅속에 묻혀
 사암과 이암이 되고
 고온 고압에서 구워져 규암으로
  
 모래갯벌 빨래판 같은 물결무늬
 60도쯤 기운 규암 절벽에도 똑같이
  
 대륙충돌로  한반도가 생겨날 때
 엄청난 지각변동으로
 휘고 부러지고 녹아내린 흔적 오롯이
  
 절벽 중간부터 뱀처럼 구불구불 습곡
 지층 360도 뒤집힌 역전 증거
  
 대청도 농여 해변 ‘나이테 바위’
 공룡 척추뼈나 고목 등걸처럼
  
 규암이 깨어진 이암 사이로 스며든
 나무뿌리 모양의 암석도 이채

1.jpg» 대청도 미아동 해변의 현생 물결자국(연흔)과 절벽의 규암층에 남은 10억년 전 원생대 물결자국.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인천시 옹진군 대청면 대청도 북쪽에 자리잡은 미아동 해변이 썰물을 맞아 넓은 모래갯벌을 드러냈다. 게 구멍 사이로 밀물 때 바닷물이 바닥에 남긴 빨래판 같은 물결무늬가 가지런했다. 해안 서쪽 절벽으로 시선을 돌리고 화들짝 놀랐다. 똑같은 물결무늬가 60도쯤 기운 규암 절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1-1.jpg» 10억년 전 퇴적암의 물결자국을 살펴보는 김기룡 박사. 이랑의 기울기가 완만한 쪽에서 가파른 쪽으로 물살이 흘렀다. 곽윤섭 선임기자

“10억년 전 이 퇴적암을 쌓은 모래 해변도 지금 이 해변과 비슷한 환경이었을 겁니다.” 동행한 김기룡 박사(지구과학 교육학. 인천 삼산고 교장)가 말했다. 물결자국의 이랑 모양은 물살이 흘러오는 쪽이 완만하고 반대쪽은 급하다. 

이랑 형태로 물살과 퇴적물의 이동 방향을 알 수 있다. 김 박사가 덧붙였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렀네요.”

2.jpg» 대청도 답동 해안산책로의 규암층에 드러난 물결자국. 곽윤섭 선임기자  

3.jpg» 백령도 두무진 규암 암반에 남은 물결자국. 10억년 전 이곳은 조간대였다. 곽윤섭 선임기자

이런 물결자국은 백령도 두무진의 기암절벽 바닥 등 백령도와 대청도 해안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살에 모래나 점토가 여러 층의 사면을 이루며 쌓인 단면인 사층리, 밀물과 썰물 때 물살의 방향이 역전되면서 어긋난 방향으로 쌓인 사층리가 물고기 뼈처럼 보이는 청어뼈 구조, 큰 홍수나 너울 때 쌓인 둔덕 사층리 등 다양한 퇴적층 모습도 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해 10억년이란 시차가 실감나지 않는다.

4-1.jpg» 물살에 떠밀린 모래가 층을 이루면서 전진한 흔적의 단면인 두무진의 사층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렀다. 곽윤섭 선임기자

4백령도 두무진 사층리.jpg» 물의 방향이 반대로 바뀌어 위 아래 사층리의 방향이 정반대인 청어뼈 구조. 곽윤섭 선임기자
  
■ 소청도 분바위 근처 화석의 증언
  
그렇지만 백령도 일대에 퇴적층을 남긴 10억년 전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태양은 지금보다 어두웠고 지구의 자전속도는 빨라 하루가 18시간이었다. 

육지는 텅 빈 불모지였다. 오늘날 보는 식물은 없었고 첫 다세포 식물인 녹조류가 막 출현한 참이었다. 첫 다세포 동물인 해면 비슷한 동물이 나타나려면 1억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남세균이 살았던 흔적은 소청도 분바위 근처에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으로 남아 있다.

5-1.jpg» 소청도 분바위. 석회암이 변성된 대리암으로 이곳에서 10억년 전 얕은 물에 살았던 시아노박테리아의 흔적인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나온다. 곽윤섭 선임기자

5.jpg» 분바위 근처에서 산출되는 10억년 전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조홍섭 기자

10억년을 건너뛰어 자연의 발걸음이 묵묵히 되풀이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이 지역 암석이 대부분 차돌로 불리는 규암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백령도와 대청도는 사실상 ‘차돌섬’이다. 

6.jpg» 단단한 규암으로 이뤄져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을 견뎌낸 백령도 두무진의 선대암, 장군봉, 촛대바위 등 기암절벽. 10억년 전 형성된 퇴적암으로 당시의 환경이 어땠는지를 알려준다.

이수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지질학)은 “사암이 변성된 규암은 매우 단단해 장구한 세월을 견디면서 퇴적 구조를 잘 간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백령도 일대를 지질공원으로 지정하기 위한 기초연구 책임자인 이 선임연구위원은 “백령권에는 10억년 전의 퇴적 환경과 그 이후 변형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7.jpg» 백령도 창바위. 상대적으로 약한 이암이 침식돼 사라지고 단단한 규암만 남았다. 곽윤섭 선임기자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2008년 백령도의 옛 지자기를 측정해 백령도가 8억년 전 초대륙 로디니아의 호주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원생대 동안 조간대와 대륙붕이었던 백령도 일대에 모래와 점토가 쌓였다. 땅속에 묻혀 사암과 이암이 된 뒤 고온·고압 환경에서 ‘구워져’ 규암이 됐다. 

2억5천만년 전 또 다른 초대륙인 판게아가 분열하면서 대륙충돌로 한반도가 형성될 때 이곳도 엄청난 지각변동을 받았다. 지층은 잡아당기고 누르는 힘을 받아 휘고 부러지고 녹아내렸다. 그 격변의 흔적을 백령도 일대의 지층은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8.jpg» 대청도 지두리 해안. 습곡이 심하게 이뤄져 절벽 사면으로 뱀이 기어가는 듯하다. 지층 역전 현상이 밝혀진 곳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대청도 서북쪽 지두리 해변에 가면 지층이 구부러진 습곡의 극단적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닥에는 규암과 이암·셰일이 교대로 수평 지층을 이루지만 중간부터 모든 지층이 심하게 휘어져 있다. 마치 절벽을 가로질러 뱀이 구불구불 지나고 있는 형상이다. 

어떻게 지층의 절반에만 습곡이 나타날 수 있을까. 김 박사는 “처음엔 덜 굳은 지층이 지진 등의 충격을 받아 휜 것으로 보았지만 자세히 조사한 결과 지층이 역전됐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지층이 360도 휘면서 먼저 쌓인 지층이 위로, 나중 쌓인 지층이 아래에 놓이는 역전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평평한 지층은 그런 격변이 일어난 뒤에 쌓였다.

9.jpg» 대청도 학동해안의 심하게 구겨진 규암층. 물결자국이 얕은 바다밑에서 형성된 지층임을 보여준다. 곽윤섭 선임기자
  
■ 남포리 해변 높이 50m 습곡·단층 선명

대청도 북쪽 농여 해변에는 수직으로 서 있는 습곡의 잔해가 있다. 규암과 이암이 교대로 쌓인 퇴적암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이암이 먼저 침식돼 규암층이 마치 공룡의 척추뼈나 고목의 등걸처럼 남았다. 주민들은 나이테바위라고 부른다.

10.jpg» 대청도 나이테 바위. 습곡이 수직으로 일어선 부분만 남아 서 있다. 단단한 규암이 주로 남아 고목이나 동물의 척추뼈를 연상케 한다. 곽윤섭 선임기자

11.jpg» 최근 남북한 관계가 경색되면서 서해 5도의 높은 봉우리마다 군사 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나이테바위 근처에서도 대규모 초소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곽윤섭 선임기자

백령도 남쪽 남포리 해변에는 높이 50m의 대규모 습곡과 단층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흰 규암과 검은 이암이 번갈아 쌓인 습곡은 거의 일어선 형태이고 산을 절반으로 가른 단층으로 또 다른 습곡과 나뉘었다. 

12.jpg» 백령도 남포리 거대 습곡과 단층. 한반도 충돌 때의 충격으로 지하의 퇴적층이 심하게 구겨지고 갈라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일대에 괭이갈매기의 대규모 번식지가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12-1.jpg» 남포리 괭이갈매기 번식지. 곽윤섭 선임기자

습곡을 자세히 보면, 지하 깊은 곳에서 먼저 녹은 규암이 깨어진 이암 조각 사이로 스며들어 이룬 나무뿌리 모양의 암석이 이채롭다. 한반도를 형성하던 대륙충돌의 여파로 지하 깊은 곳에서 지층이 늘어나고 부러지고 그 틈으로 녹은 암석이 스며든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13.jpg» 남포리 습곡의 세부 모습. 먼저 녹은 규암이 부러진 이암 틈으로 스며든 모습이 나무뿌리처럼 보인다. 곽윤섭 선임기자

규암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지상에 드러나 소금기와 파도에 시달리면 풍화와 침식을 피할 수 없다. 대청도 미아동 해변의 규암은 흰색으로 바래고 암석에 난 틈을 따라 쪼개져 모래가 되고 있었다. 소금기에 풍화된 암벽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다. 

14_조.jpg» 대청도 미아동 해변의 규암. 파도와 소금바람에 풍화와 침식을 받아 구멍이 숭숭 나 있다. 모래는 규암이 부스러져 생긴 것이다. 조홍섭 기자

백령도 콩돌 해안에 가면 해변 끝 규암 절벽에서 쪼개진 암석이 파도에 닳아 둥글게 변모하는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15.jpg» 백령도 콩돌해변. 규암 암반에 난 수직 틈이 벌어져 납작하게 떨어져 나간 뒤 파도에 뒹굴며 둥그렇게 닳아 만들어졌다. 파도에 작은 규암 조각이 콩 튀듯 뛰어오르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대청도·백령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인터뷰 현장 동행한 김기룡 박사
“백령권과 옹진반도 묶어 남북 평화 지질공원 조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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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대청·소청도는 남한에서 유일한 10억년 전 원생대 지층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게 오래됐는데도 당시의 퇴적 구조를 잘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10여년 동안 이 지역을 드나들면서 최근 <백령·대청·소청도로 떠나는 자연과 문화 산책>이란 책을 낸 김기룡 박사(인천 삼산고 교장)는 이들 서해 최북단의 섬이 북한 황해도에 주로 분포하는 상원계 지층을 연구할 창문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의 지질 연구를 통해 한반도를 형성한 대륙 충돌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는 등 연구 잠재력이 높지만 현재까지 지지부진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백령권을 지질공원으로 지정한다면 연구와 보전은 물론 지역 개발까지 이루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지역을 옹진반도와 함께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지질학적 배경이 같은 곳을 묶어 평화 지질공원으로 지정하면 연구와 지역 발전은 물론 남북 화해에 기여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는 “요즘의 여행은 체험과 교육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며 “백령권이 좀 멀지만 더 많은 사람이 10억년에 걸친 자연의 신비를 맛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령도/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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