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꼴시런 ‘삼성 띄우기’, <경향> 너마저?
눈꼴시런 ‘삼성 띄우기’, <경향> 너마저?
[보도비평]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미화기사’는 기사감 안돼
정운현 기자 | 등록:2012-05-14 18:05:23 | 최종:2012-05-15 11:01:06 | 조회:723
출근길 지하철에서 오늘자 기사들을 모니터 하다가 문제의 <경향신문> 기사를 접했다. 첫 소감은 ‘이건 아니다’ 싶었다. 누군가, 어디선가 지적할만 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디어오늘>에서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경향신문>이 어렵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그래도 평소 <경향>을 애독한 독자라면 이 기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을 법도 하다.
문제의 기사의 요지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평소 ‘종이신문을 정독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종이신문도 유익한 점이 분명히 있으며, 이서현 씨라고 해서 종이신문을 정독하지 말란 법도 없다. (참고로 이서현 씨의 남편 김재열 씨는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이며, 그의 형 김재호는 <동아일보> 사장이다)
▲ 14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이서현 씨 관련 기사 ⓒ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자가 이 기사를 출고한 데는 두 가지 점에 착안한 것 같다. 하나는 <경향>도 종이신문이어서 의도적으로 종이신문의 특장점을 부각하려 한 것 같다. “원하는 기사만 취사선택하거나 짧은 기사만 보는 인터넷 위주의 뉴스 읽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한 기사의 대목에서 그런 점이 읽힌다. (기사를 취사 선택해서 보는 것은 비단 인터넷신문만은 아닐진대 마치 인터넷신문은 문제가 있다는 식의 기사작성도 문제라면 문제다)
그 다음은 ‘이서현과 삼성 띄우기’로 보인다. 네티즌들이나 <미디어오늘>이 주목한 점도 바로 이 대목이다. 국내에는 이서현 씨 말고도 수백 만 명의 종이신문 독자가 있다. 그런데 유독 이서현 씨를 콕 집어서 다룬 데는 ‘또다른 목적’이 있다고 보여진다. ‘윈도우’(@beoxymoron)라는 아이디를 쓰는 트위터리안은 ‘오늘의 베스트 개그-삼성 이서현, 세상을 보는 폭넓은 시각위해 종이신문 본다.’며 <경향>의 이 기사를 조롱하기도 했다.
여기서 ‘또다른 목적’은 우선적으로 삼성의 ‘광고’에 혐의를 둘만 하다.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는 자신의 트위터(@funronga)에 “경향신문의 ‘이건희 딸 이서현 띄우기’ 기사”라며 “광고영업을 위한 포석 여부를 감별할 수 있을 만큼 독자는 현명(합니다)”라고 올렸다. 이에 한 트위터리안(@cdsway)은 “경향 경제면은 이미 삼성 홍보면으로 전락한지 오래”라며 김용민 씨의 주장에 공감을 표했다.
<경향신문>에 대해서는 ‘중앙일보인 줄 알았다’ ‘경향이 삼성 홍보지로 전락했다’는 등의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오늘 트위터에 올라온 비판조의 멘션 몇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이게 기사화할 일인가요?’(@EMHeeYa), ‘기사만 보고는 삼성일보 찌라시인 줄 알았네~’(@yhseek), ‘경향이 찌라시가 되고 싶은가 보군’(@kym0152), ‘헐~ 경향아 너 뭐하니?..중알일보인줄 알았네’(@ruchiana7), ‘잡다하고 찌질한 경향이 돼가고 있구만~’(@yhseek), ‘경향이 왜 이러나.... 삼성 광고 받고 싶어 안달을 하네....’(@iron_heel), ‘근래 경향신문은 실망스럽습니다’(@lightcircle75), ‘전문용어로 쫀찡 기사라 하지요^^* 안됐네요. 경향이 불쌍합니다.’(@evergreen521)...
해당기사를 쓴 이윤주 기자는 14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다른 의도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제일모직 관계자와 밥을 먹다 들은 얘기”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 기자는 또 “재계 CEO의 습관인데 읽을거리 정도 되지 않나 싶어 (썼다)”고 한다. 별 뜻 없이 화제성 기사로 썼다는 얘기 같은데 <경향신문>이라는 매체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신중했어야 했다. 취재기자도 그렇지만 데스크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단, <경향>이 이를 작정하고 쓴 기사였다면 얘기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가 ‘의도성’이라는 오해를 완전히 거두기 어려운 점은 기사 말미의 이서현 씨 ‘소개’ 대목이다. 이서현 씨가 “서울예고를 거쳐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을 나온 뒤 2002년 제일모직에 부장으로 입사, 상무·전무를 거쳐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전적으로 이 씨가 이건희 회장 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한 이 씨는 3~4년 단위로 상무, 전무를 거쳐 현재 부사장에 올라 있다.(제일기획 부사장도 겸함) 이걸 일반 회사원의 ‘성공적인 삶’처럼 포장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적어도 <경향신문> 기자는 이런 것도 헤아렸어야 한다.
▲ 이부진(오른쪽), 이서현 두 사람의 옷차림새를 다룬 <한국경제신문> 1월 9일자. ⓒ 한국경제신문
연초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에 이건희 회장의 두 딸(이부진, 이서현)이 참석했다. 두 사람 모두 삼성 계열사의 CEO를 맡고 있으니 이날 행사에 참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매경, 한경 등 경제신문을 포함해 몇몇 매체들은 두 사람의 화려한 옷차림을 사진과 함께 다뤘다. 소위 말해 ‘있는 집 딸들’이 명품 가방에 비싼 옷으로 치장하는 것은 부자들의 보편적인 행태다. 이들이 패션모델도 아닌데 <이서현-이부진, '자매의 빛나는 럭셔리 패션!'>(한국경제, 2012.1.9.) 따위의 제목을 붙여 화보로 실었다. 오늘 <경향> 기사는 맥락상 이런 기사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위에서 소개한 트위터리안들의 비난 멘션 가운데 눈에 밟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근래 경향신문은 실망스럽습니다’(@lightcircle75) 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근래’ 들어 경향신문이 실망스럽다고 한 것은 이런 일이 근자에 더러 있었다는 얘긴데 그 중 하나는 바로 이런 기사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이 기사 역시 삼성과 관련돼 있으며, 성격도 ‘삼성 띄우기’로 볼만 하다.
지난달 19일자에서 <경향>은 ‘삼성, 진보의 목소리 듣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는 첫줄에서 “삼성그룹이 진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섰다.”고 썼다. 내용인즉, 바로 전날인 18일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는 것이다. 매주 한 차례씩 열리는 삼성 사장단회의에서 그간에는 주로 보수 내지 중도성향의 인사들을 강사로 초청했는데 이번에 ‘진보성향’의 김 교수를 초청해서 강연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날 김 교수는 ‘삼성 등 재벌의 사회적 역할 강화’를 강조했다는 데 삼성 사장단이 이런 걸 몰라서 김 교수 특강을 들었을까? 적어도 진보를 표방하는 <경향>이라면 이런 식의 중계보도가 아니라 뭔가 달랐어야 했다.
최근 <경향신문>은 사장 공모 과정에서 외압 논란을 빚어 회사 안팎으로 시끄럽다. 이 와중에 정치부장이 보직을 사퇴하는가 하면 선임기자(부장급)가 현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려 파문이 일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옳지 않은 행동을 한 조직과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고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입사로 치면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후배들에게 ‘사내 정치’ ‘사외 정치세력’ 등으로 내몰리며 사내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판국이다. 결국 <경향>은 현 사장이 단독후보로 응모한 가운데 쉬! 쉬! 하며 시간이 지나기만을 있다고 한다. 이 또한 실망스런 <경향>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경향> 너마저?’
입에서 이 말이 절로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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