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은 억울하다
이해찬은 억울하다
[시비곡직] 방송 진행자-출연자-청취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진실의길 / 김종찬 / 2012-06-07)
(민주당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이해찬 후보가 최근 YTN-라디오와의 가진 인터뷰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경위야 어쨌건간에 인터뷰 도중 방송을 중단한 것은 이 후보가 잘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인터뷰어가 사전에 약속한 질문내용을 벗어난 돌발질문으로 인터뷰이를 당혹케 한 것은 방송진행자로서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안녕하십니까 김종찬입니다>의 방송진행자로 유명인사 인터뷰와 토크 프로를 오랫동안 진행해온 방송인 김종찬 씨가 관련글을 하나 보내왔기에 여기 소개합니다... 편집자)
▲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통합당 이해찬 당대표 후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중의 소리
방송진행자와 출연자와 청취자의 권리와 의무는 무엇일까?
바로 지금 다수의 매스미디어를 통해 비판 내지 비난을 받고 있는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 후보를 바라보며 든 생각이다.
그래서 이 일에 관해 차근차근 짚어보기로 했다.
생방송을 듣지 못했던 나는 먼저 YTN라디오의 '다시듣기'를 찾아 방송내용을 여러번 반복적으로 들었다.
뿐만 아니라, 생방송 때 들은 이들에게서 확인도 했다.
그들의 '느낌'이 아닌 그들이 들은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행여 '다시듣기'가 편집된 것일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나름 정확성을 기한 셈이다.
여전히 내가 생방송을 들은 것이 아니므로 염려하는 마음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데에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는 문제의 방송내용을 숙지했다는 생각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나는 단호히 말할 수 있다.
이 후보는 한국의 다수 매체에게서 집중포화를 맞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매우 억울한 처지에 든 셈이다.
그는 진행자인 김갑수 씨의 질문에 매우 진지하고도 밀도있는 답변을 친절하게 하였다.
문제가 된, 임수경 의원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도 합당하게 답변했다.
물론 진행자인 김 씨 입장에서는 더 욕심을 내 질문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진행자의 욕심을 채워줘야 할 의무가 반드시 출연자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경우에도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말하기 싫은 것을 말하지 않을 자유를 가진다.
이것이 바로 말에 관한 보편적 자유권이다.
자유의 보편적 개념이 이럴진대, 방송출연자가 방송진행자의 기대 욕구까지 채워줘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런 까닭에, 방송진행자가 출연자의 입에서 하기 싫은 말을 하게 만들고 싶으면, 많은 연구와 준비가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방송진행자의 질문에 출연자는 무조건 답변해야 한다면 굳이 유능한 진행자를 구하려고 애쓸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출연자를 말하게 하는 의무는 전적으로 진행자의 몫일 뿐, 출연자의 몫은 아니다.
범법행위를 전담하여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관련인들에게 묵비권을 보장해주고 있는데, 죄를 지은 것도 아닌 방송 출연자에게 말을 강요하는 행위는 절대로 옳지 않다.
오히려 출연자의 자기방어권을 철저히 보장해야 마땅하다.
또한 이럴 때 동원되는 논리가 있음도 모르지 않는다.
이른 바 공인은 특히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정치인은 국민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정치인은 그래야 한다.
당연하다.
그러나 이 역시도 때가 있다.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시도때도 없이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견해가 부당하다면 이 나라 정치인 가운데 살아남을 사람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후보가 청취자를 무시했으며, 이는 오만방자한 짓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이 역시도 옳지 않은 소리다.
그는 분명히 말했다.
그는 진행자가 사전에 한 약속과 다른 질문을 계속하는 데에 대해 항의했고,그런 이유로 인터뷰에 더 이상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것이 과연 무례일까.
진행자가 출연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계속 원하지 않는 질문을 하며 무리하게 답변을 강요하는 것은 무례가 아니고, 이에 대해 출연자가 더 이상 방송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만 무례라고 하는 게 과연 옳을까.
그렇다면 이는 불공평하다.
어떤 경우에도 보편성을 잃은 규칙은 옳지 않다.
바른 규칙이라면, 진행자와 출연자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
진행자 역시 출연자와 마찬가지로 링 위에 오른 선수다.
심판이 아니다.
진행자가 스스로를 심판인 줄로 착각하는 순간, 방송은 객관성을 잃고 편파적으로 흐르기 쉽고, 팽팽한 긴장이 사라져 흥미를 잃게 하고 마침내 청취율을 떨어트리게 된다.
미국의 신화적인 진행자였던 테드 카플, 그리고 래리 킹이나 오프라 윈프리가 여럿이 아닌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한결같이 추구하는 것은 남 위에 군림하는 심판이나 특정한 데에 쏠린 응원단이 되지 않고 진실과 진리의 편에 있으려는 노력 그 자체이다.
출연자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결국 털어놓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그 힘도 바로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편 청취자 입장에 서보자.
그 날 이 방송을 듣던 청취자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구체적으로 조사한 사실이 있는지 알 수 없고 따라서 그러한 조사결과도 발표된 것이 없다.
그런 구체적 통계가 없으면서도 청취자의 마음을 생각을 느낌을 모두 헤아린 것처럼 소동이 난 까닭을 나는 납득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에 홀려 침대를 사게한 것이나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 박카스'를 들으며 부지불식 간에 약국으로 가는 우리를 다시 보는 것 같다.
오리무중인 청취자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단정적으로 이 후보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행태가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이상한 선전선동술에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분명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청취자만이 가지는 독점적인 권리인 '채널선택권' 말이다.
청취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송을 회피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진행자나 출연자 모두를 버릴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
그런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로 남들이 다 버려도 자신은 그 프로그램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다.
만약 이 땅에 라디오 방송이 하나밖에 없다면 특별한 문제가 생길 수는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유감없이 다양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호들갑을 떠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차라리 의아하다고 하는 게 적절하다.
특히 이번 일의 최대 수혜자가 YTN라디오인 것이 흥미롭다.
어쨌든 방송국 홍보와 프로그램 홍보가 많이 되었다.
김갑수 라는 진행자도 좀더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번 일이 부작용 때문에 태어난 어떤 발기유발제처럼 그들이나 우리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 기회에 이것만은 꼭 말해두고 싶다.
방송의 좋은 서비스는 방송생산자들이 방송소비자들을 바른 자세로 섬길 때에 비로서 이루어질 수 있다.
행여 아직도 방송의 인터뷰이에 대해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인터뷰어가 있다면 그는 이미 자격상실자이니 방송 일을 놓던지 생각을 고치기 바란다.
인터뷰이가 무엇이든 털어놓게 하는 유능한 인터뷰어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부단한 절차탁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그래서 열린 세상을 만드는 존경스런 인터뷰어를 보고 싶다.
끝으로 '사족'이다.
사전에 약속한대로만 하는 인터뷰가 어딨냐는 소리도 들리는데, 약속하지 않고 하면 프로그램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방송 프로그램은 일종의 공산품이지 자연산 잡어일 수 없다.
그러나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양어장에서 낚시를 한다고 전부 대어를 잡아올리는 것은 아니다.
능력있는 낚시꾼만이 월척을 하지 않던가.
사전에 약속한 틀 안에서 놀라운 뉴스를 생산해낼 때에 그는 마침내 인터뷰어의 전설이 될 수 있다.
인터뷰어는 몰래 숨었다가 뒷통수를 때리는 비겁자가 결코 아니다.
떼쓰며 말을 구걸하는 사람도 아니다.
훌륭한 인터뷰어는 어쩌면 인터뷰이에게 묻지 않고도 대답하게 하는 사람일런지 모른다.
그러므로 반복하거니와 이해찬은 이번 일에 잘못없다.
그는 우리 방송의 미성숙성에 피해를 입은 셈이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로 그를 억울하게 하지는 말자.
우리 모두 성숙해질 필요가 있지 아니한가.
김종찬 / 방송인
출처 :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924&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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