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대화로 급선회, 배경과 전망
<연재> 장대현의 '주간 칼럼' (6)
장대현 | tongil@tongilnews.com
승인 2013.06.11 07:39:54
장대현(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5월 27일과 30일 사이를 주목하라
북의 전격 제의, 남의 파격 호응
북은 지난 6일 특별담화를 통해 “6.15를 계기로 개성공업지구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재개,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적 문제, 6.15공동선언과 7.4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민족공동행사 개최 등을 협의하기 위한 북, 남 당국 사이의 회담을 제안”한다. 우리 언론이 이를 긴급속보로 타전한 시각은 그 날 정오 무렵.
먼저, 청와대가 움직였다. “박근혜대통령은 낮 12시께 북한의 회담 제의 소식을 보고 받고, ‘뒤늦게라도 북한이 당국 간 대화 재개를 수용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안 해결의 계기가 돼야 한다(한겨레신문 6월 7일 인용)” 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높이 매달린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는 순간, 부르릉 일제히 앞으로 달려 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는 통일부 성명이 나왔고, 박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외교안보회의가 열렸으며, “오늘 12일 서울에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남북 장관급 회담을 개최하자”는 통일부 장관 기자회견이 뒤를 따랐다. 북의 제의를 접수한 지 불과 7시간 만에 대화 제의를 수용하는 동시, 구체적 방법까지를 시원스레 답변한 것이다.
이를 두고 언론은 “이례적(오마이뉴스 6월 7일)” 나아가, “파격적(동아일보 6월 7)”이라거나 특히 “북한의 제의로부터 우리 정부의 수용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전광석화처럼 전개됐다는 점에서 정부가 최소한의 물밑 교감은 있었던 것 아니냐(한국일보 6월 8일)”는 북과의 사전 조율 가능성까지 제기하는 등 크게 놀라고 있다.
우리정부의 “당국 간 회담” 제의를 북이 수용한 것인가?
급선회, 남과 북이 대화에 이르고 있는 까닭을 놓고 우리 정부는 첫째 정부의 일관된 ‘당국 간 회담’ 제안을 북이 뒤늦게나마 수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런가?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세 번 북에 대화를 제의한다. 하나씩 간추려보자. 4월 11일, 첫 번째 대화제의는 이랬다.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개성공단 정상화는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하며,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 바란다”는 특별성명을 발표한 후 “북한에 대한 공식 대화 제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니다”고 대답하고는, 저녁나절 청와대가 “대화 제의 맞다”고 하자, 통일부가 다음 날 “사실상 대화 제의를 한 것”이라고 말을 고친다. 통일부와 청와대부터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두 번째 대화 제의는 또 이랬다. 4월 25일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개성공단 근무자의 인도적 문제 해결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당국 간 실무회담을 공식 제의”한다. 그런데 문제는, “내일(26일) 오전까지 회신할 것을 요구”하면서 “거부한다면 중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혀둔” 것이다. 북의 공휴일(4월 25일은 북한군 창설 기념일, 즉 우리 국군의 날)을 골라 ‘갑자기’ 대화를 제의하면서 말미를 단 하루만 허용한 것은 대화 목적보다는 중대조치를 위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 대화 제의는 또한 이랬다. 5월 14일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개성공단 현지에 보관 중인 원, 부자재와 완제품 반출 등 입주기업의 고통해소를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 개최를 북측에 제의”한다. 놀랍게도 정부는, “개성공단을 죽이자”는 의제를 북의 코앞에 흔들며 ‘당국 간 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북한은 남한이 제안한 실무회담을 하면 개성공단이 정상화가 아니라 폐쇄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프레시안 6월 6일 정세현 전통일부장관 인터뷰)”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당국 간 대화 제의’가 아니라 ‘당국 간 약 올리기’에 해당한다.
앞의 두 번은 형식요건 미흡, 세 번째는 내용요건 결핍이다. 그간의 ‘당국 간 회담’ 제안이 사실상 정치적 언술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해도 정부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당초 개성공단 제품 반출을 위한 실무회담을 제안한 정부가 6일 파격적으로 급을 높여 장관급 회담을 제안한 것은 북한과 남북 당국 간 포괄적 현안을 논의할 용의가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동아일보 6월 7일 인용)”는 기사는 6일 이전까지,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 안건 외, “남북 당국 간 포괄적 현안을 논의”하는 당국 간 회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거꾸로 가르쳐주고 있다.
전환, 5월 27일과 30일 사이
5월 23일 박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북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실명을 언급하며 “도박은 성공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곧바로 북이 “괴뢰 대통령 박근혜(5월 25일)”라고 맞받아치면서 대결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달았고, 개성공단 회생과 남북 간 대화에 대한 마지막 희망마저 접어야 했다.
6월 6일, 새로운 드라마는 그럼 어디서 온 것인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7일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중국에 말한 ‘대화 용의’ 발언과 관련해 ‘비핵화가 우선’이라고 잘라 말했다(한겨레신문 5월 28일 인용)” 그 뿐이 아니다. “앞서 박근혜대통령도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앞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과의 직접 대화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대중 공조를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 내겠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다(같은 기사)” 선비핵화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확고히 내세우며, 중국까지를 견인, 북을 포위, 압박하겠다는 입장을 거듭거듭 다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를 들어보자. “류길재 통일부장관은 지난 29일 한반도경제포럼 조찬 강연에서 박근혜정부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정책이 ‘선(先)비핵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지 않느냐는 취지의 지적에 “‘비핵화’를 내걸고 정책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류 장관은 이어 (남북관계) 초입부터 ‘비핵화’를 내걸어서 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데일리안 5월 30일 인용)” 정부 입장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을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세상에 공개한 것이다. 그때까지 유지하던 대화의 전제조건, 선비핵화를 우리정부가 마침내 탈탈 털어낸 것이다.
정부의 입장 변화는 북의 손바닥을 치는 또 한 쪽 손바닥. 당연히 소리가 났다. “당초 한국 정부는 북한에 개성공단의 원부자재와 완제품 반출을 위한 실무회담이라는 낮은 수준의 당국 간 대화를 제안했다. 그런데 북한은 그보다 차원을 높여 개성공단 정상화와 북한이 원하는 금강산관광 재개 및 남측이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추가했다. 또 6.15공동선언 발표 기념행사 개최를 요구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채택된 7.4공동성명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할 것도 함께 제안했다. 북한은 ‘이 모든 것’을 남측이 요구하는 당국 간 회담에서 논의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한국 정부에 명분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중앙일보 6월 9일 인용)”
그럼 앞으로는?
주말의 실무접촉에서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의제. 다른 하나는 대표단장의 급이다. 없다.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매달렸던, 그리하여 남북의 대화마저 ‘목매달았던’ 그 무수한 “사과”요구가 없다. 또한 없다. 선비핵화가 없다.
“정부가 북측의 당국 간 대화 제의를 수용한 것은 이번 회담을 핵문제와 연계하지 않고 우선 관계 개선을 한 후에 비핵화와 관련해 설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경향신문 6월 8일 박재규 전통일부장관 인터뷰)”는 분석은 “정부는 오는 12∼13일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당국회담’에서 “합의하기 쉽고 의견 절충이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회담에 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연합뉴스 6월 10일 인용)”는 기사가 증빙하는 것처럼 현재까지는 유효, 적절하다.
그럼 앞으로는? “정부는 핵 문제까지 논의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북한이 ‘핵 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지 남북 간에 할 얘기는 없다’고 나오면 곤란해진다. 6자 회담이 여러 차례 열리고 9.19공동성명까지 나왔는데도 이러고 있는데 남북 간에 만나 돌파구를 찾는다는 것은 난센스다(한국일보 6월 10일 정세현 전통일부장관 인터뷰)”
이번 당국 간 회담이, 우리 정부가 선비핵화 입장을 바꿔 비로소 만들어진 회담이라는 점은, 그 입장을 다시 바꾸는 순간 회담의 경과와 전망도 또다시 뒤바뀌게 된다는 뜻까지를 운명처럼 품고 있다.
변수는 여전히 미국이다. “중, ‘북 핵 용납 안 해’ 미국과 함께 공개 경고... 출구 좁아지는 북(동아일보 6월 10일 기사 제목)”, “북 핵 불용, 한 목소리 낸 미중 정상(중앙일보 6월 10일 사설 제목)” 등 마치 내일 당장이라도 미국과 중국이 합심, 합체하여 북을 무장해제, ‘굴복’시킬 것 같은 그림을 그려 퍼뜨리는 것은 그래서 살얼음판에 던지는 짱돌이다.
미국과 힘을 합쳐 북의 비핵화를 강압한다는 합의를 중국이 정말로 했다면, 선비핵화를 떼고 북과 대화하는 우리 정부의 선택은 틀려도 한참 틀린 것으로 다시 정리될 것이고, 그러면야 12-13일 회담은 ‘보나마나’인 까닭이다.
“도닐런 보좌관은 회담 직후 브리핑에서 ‘미중은 북한 문제에서 상당한 수준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으며,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기로 완전한 합의를 이뤘다’고 강조했다(한국일보 6월 10일 인용)” 보라. “미국과 중국이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은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수구보수언론은 구체적인 조치까지 완전한 합의를 이룬 것처럼 의도적 오보를 내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6자회담을 비롯한 대화의 필요성을 설득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호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지금 긴급하게 필요한 것은 되도록 조속히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닐런은 "현 시점에서 우리는 대화 재개에 필요한 실질적 내용에 관한 약속을 북한에서 보지 못하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프레시안 6월 10일 정욱식 칼럼 인용)”
6자 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화, 즉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입구를 열고, 그 과정에서 북미 대화 등 다양한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동시, 새로운 동북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중국의 제의, 내지 중재를 거부하고 미국이 선비핵화를 내세우며 판을 깨려 할 것인가? 12-13일 우리는 그 여부를 보게 될 것이다. 한반도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리 운명은 우리가 직접, 우리 힘으로 결정, 주도해야 한다는 동서고금의 진리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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