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의 마지막 기회

<칼럼> 북한의 대미 고위급회담 제안을 보며 -백학순 백학순 | tongil@tongilnews.com 승인 2013.06.17 15:47:18 백학순(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북한이 어제 국방위대변인의 ‘중대담화’를 통해 미국에 대해 고위급회담을 제안했다. 국방위대변인은 “위임에 따라” ‘중대입장’을 국내외에 밝혔는데, 그 핵심은 미국에게 ‘고위급 비핵화 회담’을 제의한 것이다. 현재 한반도 및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 시작된 ‘대화 다이나믹스’의 맥락에서 볼 때, 앞으로 한미양국이 하기에 따라서는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이 자신의 핵심적인 목표와 이해, 입장을 이번처럼 명확히 밝힌 것은 최근에 없던 일로서, 우리사회에서 북한의 대미 대화제의의 의도와 진정성에 대한 논란과는 관계없이, 오랜만에 우리에게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국방위대변인의 중대담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중대담화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변함없는 의지이고 결심임을 다시금 내외에 천명”한다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이며 우리 당과 국가와 천만 군민이 반드시 실현하여야 할 정책적 과제”라고 했다. 그리고 북한이 생각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그 목표와 관련하여 북한 자신의 핵보유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자위적이며 전략적인 선택”으로서 “조선반도 전역에 대한 비핵화가 실현되고 외부의 핵위협이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중대담화는 또한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다룰 의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것은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없는 세계건설’ 문제”를 포함하여 “쌍방이 원하는 문제”인데, 그러한 의제들을 “폭넓고 진지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회담 장소와 날짜는 “미국이 편리한 대로” 정하도록 했다. 북한은 미국이 “전제조건을 내세운 대화와 접촉에 대하여 말하지 말아야”한다면서 이번에 미국이 “차려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의 대범한 용단과 선의에 적극 호응해 나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중대담화는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하여 북한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하고, 자신의 핵보유의 이유와 성격, 그리고 핵보유 기간에 대해 또한 명확히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이 목표이며, 이 과정에서 핵보유는 일종의 ‘자위적’이며 동시에 ‘전략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핵무기와 핵무기 프로그램이 완전히 사라지고 미국 등 외부로부터 오는 핵위협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핵보유를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대미 대화제의는 지난 1개월여의 기간에 보인 북한의 적극적인 대화 국면에로의 전환 속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14일 일본 아베내각 위기관리특별담당고문 이이지마 이사오(饭岛勋)가 평양을 방문하여 북일 접촉이 시작됐고, 5월 22~24일에는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가 김정은 특사로서 베이징을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을 만나 ‘6자회담 등 각종 형식 대화’를 원한다고 했고, 6월 6일 남한에 대해 포괄적인 내용의 당국간 회담을 제의했으며, 어제 6월 16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미 고위급회담을 제의한 것이다. 필자는 지금 북한이 보이고 있는 대화 이니시어티브를, 지난 5월 29일 다른 곳에서의 칼럼을 통해, 김정은이 지난 반 년 동안 전쟁위험을 무릅쓴 ‘기 싸움’을 하면서 나름대로 추구했던 목표와 연결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내일신문, 신문로 칼럼, “북한이 ‘본격적인 대화’에 나서는 이유”). 김정은은 지난 반년 동안 세 가지 목표를 추구했는데, 이는 첫째, 국내외적으로 ‘강력한 지도자상像)’을 확립하고, 둘째,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며, 셋째, 한반도 전쟁 위기고조를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에 ‘대화와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김정은은 위의 세 가지 목표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단하고 5월 20일까지 해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모두 끝나자 바로 대화국면으로 전환함으로써 ‘세 번째 목표’ 달성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김정은 미중정상회담과 한중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중국, 남한, 일본 등 국제사회와 ‘대화’를 시작하여 군사안보 및 외교 분야의 ‘오래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또 경제를 살리는 데 유리한 대외환경의 조성에 나섬으로써, ‘김정은 시대’의 생존과 발전의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코자 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북한의 ‘대화 추구’가 단순한 기술적 차원의 임시변통이 아니라 전략적 차원에서 김정은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려는 전략노선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편, 북한이 2013년 중국과 면밀한 입장 조율을 통해 이처럼 본격적인 대화노선을 들고 나오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치에 충격을 주고 있는 상황은 1972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대 초 국제사회의 데탕트는 북한에도 영향을 미쳐 김일성은 1970~1973년 매년 비공개로 중국을 방문했으며, 이를 통해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중국과 함께 대처하는 공동전략을 모색했던 것이다. 이 결과 ‘중미관계 개선을 남북관계 개선으로 연계’해 나가는 전략을 채택했던 것이다. 1972년 2월 역사적인 닉슨의 중국방문으로 미중정상회담이 열려 ‘상하이 코뮈니케’가 나왔으며, 결국 미중 국교정상화가 이뤄졌다. 닉슨의 중국방문 전후에 있었던 북중간 한반도문제 관련 입장 조율과정을 잠깐 살펴보자. 키신저가 1971년 7월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고, 모택동은 주은래를 평양에 보내 키진저와의 회담 결과를 김일성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으며, 김일성은 대미요구 8개항을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에 전달해달라고 부탁했고, 중국은 그해 10월 베이징을 방문한 키진저에게 북한의 8개항 요구를 전달했다. 그해 11월 초에 김일성이 직접 베이징을 방문하여 키신저의 반응을 청취했으며, 1972년 1월에는 박성철 부수상이 닉슨의 베이징 방문 직전에 베이징을 방문하여 최종 입장을 조율했다. 상하이 코뮈니케 발표 직후인 3월에 주은래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에게 회담 결과를 설명했으며, 김일성은 중국이 중미회담에서 보여준 한반도에 관한 특별한 관심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발전은 결국 그해 7월 7.4남북공동성명을 낳았다. 이제 중국이 1972년 국제사회에 등장하여 40년이 흘렀고, 이제 미국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질서를 짜면서 이번 달 초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중미정상회담에서 ‘신형 대국관계’의 개막을 선언했다. 동아시아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신형 대국관계’라는 것이 ‘대결과 충돌’이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한 협력’으로 서로 윈윈하자는 것이고, 지금 북한이 이러한 국제정치의 변화의 맥락 속에서 중국과의 면밀한 공조를 통해 한국과 미국에 전면적인 대화제의를 하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1972년에 7.4공동성명이 나왔듯이, 이번에 새로운 남북관계를 구축하는 2013년식 남북공동선언을 만들어 냄으로써 한반도문제의 주인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동아시아정치에서 지금 시작된 ‘대화 다이나믹스’에서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행위자로 남는 것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실로 청와대와 우리정부가 거대하게 굽이치고 있는 동아시아 정치의 변화와 그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마침 오늘 17일 오바마 미대통령이 G8 정상회담차 북아일랜드를 가던 중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양국 정상의 대화의 내용이 북한의 비핵화 대화제의를 적극 수용하여 한미동맹공조가 한반도에서 분열적이고 대결적이 아니라 문제해결적이고 평화증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내용이기를 바란다. 한미양국이 그 방향으로 적극 협력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반드시 살려낼 수 있기를 희망하여 마지않는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다. 통일부 자체평가위원장,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국회 외교.통상 및 통일분과 상임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서울-워싱턴포럼 사무총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북한연구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민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김대중평화센터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 권력의 역사: 사상.정체성.구조』 (2010) 등의 단행본과 “북한정치에서의 군대: 성격.위상.역할” (2011)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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